20030813101028-0515choyongpil_kimtrio

김대환과 김 트리오 – 드럼! 드럼! 드럼! 앰프 키타 고고! 고고! 고고! – I.N.기획/아세아(ALS 0004), 19720310

 

조용필과 김대환의 감추어진 야사(野史)

조용필을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른 ‘오빠’로만 알고 있는 젊은 세대라면 이 음반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욱이 그가 ‘국민가수(?)’이기 한참 전에 록 뮤지션이었고 그것도 보컬리스트가 아닌 기타리스트였으며, ‘나이트클럽’과 생음악 살롱, 미 8군 등을 주무대로 연주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조용필의 이미지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노래 잘 하는 대중가수로 각인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김 트리오의 리더인 김대환 쪽으로 시선을 옮겨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세서(細書)의 달인이자 재즈 드러머, 타악기 연주자로 알려진 김대환이 격렬하게 로킹한 드러밍을 구사하는 모습이라니. 대체 어떻게 이런 조합이 가능했을까.

‘야사’에 의하면, 1970년까지만 해도 조용필은 ‘무명 신인’에 불과했다. 소공동에 자리한 레인보우 클럽에서 김대환과 조우하지 않았다면 향후 음악 여정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김대환은 조용필이 바비 블랜드(Bobby “Blue” Bland)의 “Lead Me On”을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의 ‘천부적인’ 노래와 감각적인 기타 연주를 듣고 함께 활동할 것을 제의했다. 여기에 아이들(Idols)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최이철이 가세해 김 트리오의 초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Are You Lone Some Tonight”이나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 등을 연주하며 고급 나이트 클럽과 생음악 살롱 등 밤무대에서 활약했다. 최이철의 탈퇴 이후에는 이남이가 가입해 ‘슈퍼 트리오’의 면모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이 스타 밴드가 선보인 음악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이들은 레코딩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 리뷰의 대상인 음반 [드럼! 드럼! 드럼! 앰프 키타 고고! 고고! 고고!](1972)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증거물일텐데, 본작은 김대환이 I.N.기획에 전속 계약을 하면서 기념으로 만든 음반이다. 소수의 수집가들에게만 존재가 알려진 채 오랫동안 빛을 못 보다가 최근에 ‘발굴’된 비운의 음반이기도 하다. 기대와는 달리 조용필의 보컬은 들을 수 없다. “사랑의 자장가(원곡은 존 바에즈의 “Geordie”)”, “Get Back”, “Time of the Season” 등 유명 팝송을 ‘경음악’으로 담은 음반이기 때문이다.

음반에서 흥미로운 점은, 록 기타리스트로서의 조용필의 모습과 자유분방한 김대환-강태환의 연주가 이루는 ‘부조화 속의 조화’일 것이다. 조용필은 비교적 원곡의 선율을 충실히 따르는 기타 연주를 구사한다. 음반의 주인공이 김대환이기 때문인지 기타 연주는 대체로 현란한 장식보다는 안정감을 보여주며, 이따금 오버드라이브(“꿈을 꾸리”)를 걸거나 퍼즈(“마음대로 해라”) 톤을 구사하는 대목을 제외하면 크게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비교적 아티큘레이션(또렷한 음 표현)을 중시하는 연주라 할 수 있겠다. 김대환의 회고에 따르면 조용필은 같은 기타리스트인 최이철과 주도권을 놓고 상당한 신경전을 펼쳤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기타리스트로서의 조용필은 분명 보컬리스트 조용필만큼 ‘화려’하거나 독보적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반대로 김대환과 강태환의 연주는 루바토로, 질풍처럼 내달린다. 김대환의 연주는 말 그대로 ‘거장적’이며 그 아니면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수려한 즉흥 솔로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마음대로 해라”에서처럼 탐탐과 심벌을 난타하는 장시간의 솔로를 펼치다가,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그대로 곡의 후반 합주로 몰고 가는 풍광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흡사 버디 리치(Buddy Rich)의 원맨 쇼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록과 재즈의 경계에 얹힌 무념무상의 드러밍이라는 점에서는 진저 베이커(Ginger Baker)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주로 주(主) 선율을 연주하는 강태환의 색소폰 역시 다르지 않다. 강태환에 의해 선율은 종종 비틀리고 변형되며, 순간적으로 ‘번쩍’하는 솔로잉도 종종 선보인다. 흡사 레일을 따라 적정 스피드로 잘 달리다가 순간순간 레일 밖으로 벗어나거나 급박한 속도로 내달리는 육상 선수처럼, 초반부에 기타 파트와 앙상블을 그런 대로 이루다가도 곡이 절정에 치 닫으면 드럼과 함께 격렬하게 내달리곤 한다.

문제는, 김 트리오가 주로 클럽 무대에서 연주하는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클럽은 춤추는 곳이지 음악 ‘감상’실이 아니다. 춤을 추려면 템포가 규칙적이어야 하며, 당김음이나 ‘아방가르드’한 연주는 맥주병 날아오기 십상이다. “Rain” 중반부에서 템포와 화성이 이지러지며 등장하는 ‘프리’한 연주는 듣는 이에게 ‘굉장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김대환의 드럼은 종종 다른 파트를 앞질러 내달리거나 홀로 도취되어 폭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강태환의 색소폰 역시 다단하고 불규칙한 연주이긴 마찬가지다. 비교적 변칙이 적고 ‘착실’한 축에 속하는 조용필-이남이의 연주와 비교할 때 김대환-강태환의 돌출은 치명적이다. 연주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다른 파트와의 조화나 음악의 수용층의 면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모르긴 해도, 당시에 클럽에서 이런 ‘기묘한’ 음악을 연주했다가는 내쫓기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김대환의 전속 계약 ‘기념’ 음반이기 때문에 내용물의 통일성이나 촘촘한 밀도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지 모르지만, 음반 전체적인 연주 파트간의 부조화나 편곡상의 언밸런스한 면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 때문일까. 본 음반은 발표 후 소리소문 없이 사장되어 지금은 기백만원을 오가는 ‘전설적인 희귀 음반’이 되었고, 이후 김 트리오는 서서히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다. 후일담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조용필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국민가수(!)’로 등극했고, 최이철-이남이는 ‘사랑과 평화’를 거치며 또 한번 화려한 시절을 보낸 뒤 현재는 각자의 음악 세계를 묵묵히 구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음반에서 광폭한 ‘프리’ 연주를 들려준 김대환-강태환 두 사촌 형제의 현재 모습이다. 김대환은 록 드럼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고, 프리 재즈 드러머에서 타악기의 마에스트로, 그리고 세서 작가로서 ‘예인’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강태환 역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정상급의 프리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김 트리오의 이 음반은 멤버들의 장래를 어느 정도 예시했던 셈이 아닌가…20030801 | 배성록 [email protected]

0/10

<부연>
1. 음반의 라인업은 조용필(기타)-이남이(베이스 기타)-김대환(드럼)으로 이루어졌다. 색소폰은 강태환, 건반은 김종화가 세션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이 음반에 남긴 음악은 박력 있는 록 음악도 아니고 격조 있는 재즈 음악도 아닌 ‘묘’한 형태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본다면 완성도를 떠나 ‘희소가치’는 있는 음반인 셈이다.
2. 본 음반 발표 후 김대환은 매니저로 한발 물러나고, 키 보이스 출신의 이성이 드러머로 가입했다. 물론 ‘김’이 빠진 김 트리오는 얼마 안 가서 해체했고, 조용필은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며 곧 다가올 전성시대를 예비했다.

수록곡
Side A
1. 꿈을 꾸리
2. 마음대로 해라
3. 라피오챠 (Lapiogga)
4. 사랑은 오직 하나 (I Only You Love)
5. 비 (Rain)
Side B
1. 사랑의 자장가
2. 빛나는 성좌 (Aquarius)
3. 굳 바이 (Good-bye)
4. 돌아오라(Get Back)
5. 계절 속의 사랑 (Time of the Season)

관련 글
조용필의 로큰롤 오디세이: ~1984 – vol.5/no.15 [20030801]
대중가수의 표면, 로커(rocker)의 이면: 조용필과의 인터뷰 – vol.5/no.15 [20030801]
프리 음악의 대가, ‘보컬 그룹의 추억’: 김대환과의 인터뷰 – vol.5/no.15 [20030801]
발군의 베이시스트, 감각적 프로듀서: 송홍섭과의 인터뷰 – vol.5/no.8 [20030416]
‘자존심’ 드러머, 드러머의 자존심: 이건태와의 인터뷰 – vol.5/no.15 [20030801]
한 슈퍼스타의 35년의 경력에 대한 우중기념식: 조용필 ‘The History’ 공연 리뷰 – vol.5/no.17 [20030901]
조용필 [스테레오 힛트 앨범 제 1집]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영 사운드 [너무 짧아요/긴 머리 소녀]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님이여/어디로 갔나요]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잊을 수 없어/그 사람은 어디에]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포크가요 베스트 10(a.k.a. 조용필 데뷰집)]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1집 [창 밖의 여자/단발머리]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2집 [축복(촛불)/외로워 마세요]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3집 [미워 미워 미워/여와 남]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4집 [못 찾겠다 꾀꼬리/비련]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5집 [산유화/여자의 정/한강]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6집 [바람과 갈대/그대 눈물이 마를 때]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7집 [눈물로 보이는 그대/들꽃] 리뷰 – vol.5/no.15 [20030801]
조용필 18집 [Over The Rainbow]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조용필 연합 팬클럽 ‘PIL 21’
http://pil21.com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
http://choyongpil.net
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http://www.choyongp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