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13092930-0515choyongpil6th84조용필 – 바람과 갈대/그대 눈물이 마를 때 – 지구(JLS 1201843), 19840209

 

 

호화 캐스팅과 진일보한 녹음 기술의 도입, 그러나 악수(惡手)

1983-84년 조용필은 아이돌 스타이자 슈퍼스타로 굳건한 인기의 반석 위에 서있었다. “나는 너 좋아”, “친구여”를 필두로 한 5집(1983)은 조용필의 믿을 수 없는 히트 행진이 롱런할 것임을 보증했다. 연말 KBS와 MBC 양대 방송국 가요제의 그랑프리도 당연히 조용필의 몫이었다. 이 무렵 1년에 한 차례 미국 순회공연을 벌이거나 팍스 뮤지카(Pax Musica) 같은 아시아적 공연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것과는 별도로, 일본 무대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며 한국과 일본 활동을 병행해 나갔다.

조용필의 공식 6집인 [바람과 갈대/그대 눈물이 마를 때]는 이처럼 조용필의 인기가 상한선을 치고 있을 무렵 나왔다. 우선 주목할 만한 점은 디지털 녹음 방식을 사용한 한국 최초의 음반이란 점이다. 바다 건너 일본 CBS-소니 레코드의 시나노마찌 스튜디오에서 디지털로 녹음되고 마스터 테이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초의 디지털 음반(CD) 상품화의 기회는 뒤로 미루어야 했다. 애초에는 지구 레코드에서 CD를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제반 여건이 미비했던 탓인지, 실제 음반은 아날로그 방식인 LP와 카세트 테이프(MC)로만 나왔다. 어쨌든 녹음 및 편집 과정에서나마 디지털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게 한 것은 조용필의 당대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라이너노트에는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디지털 녹음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음반을 ‘음악적으로나 사운드 면에서나 레코드 예술의 꽃’이라 적혀있다. 정말일까. 이 음반을 두고 ‘디지털 방식이 왜곡이 적어 훨씬 깨끗하고 선명한 음질을 담는다’거나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따뜻한 느낌과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는 투의 대립적인 주장을 논증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막귀’의 영역을 벗어나므로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음반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 음반 녹음에 참여한 위대한 탄생의 라인업은 5집과 거의 동일하다. 1983년 5월 NHK 홀 공연을 위해 구성된(그리고 정규 5집을 녹음한) 라인업에서 유상윤(키보드) 대신 김효국(키보드)이 들어왔고, 김석규(기타), 송홍섭(베이스), 이호준(키보드), 백천남(드럼)은 변동이 없다. 여기에 여덟 명의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의 첼리스트, 한 명의 (어쿠스틱)기타리스트와 앨토 색서포니스트로 구성된 일본인 세션진이 녹음에 참여했다. 조용필의 음반들을 쭉 들어왔던 사람들이라면, 이 일본인 세션진이 ‘성인 취향’의 수록곡들을 연주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음반에 곡을 제공한 작곡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조용필, 그리고 위대한 탄생의 멤버인 이호준, 송홍섭도 있지만, 1960년대를 풍미한 손석우와 이봉조부터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이범희까지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보다 전면적으로 ‘신구(新舊) 올스타’ 작곡가의 곡을 실었다는 말이다. 일본인 세션진이 가세한 머리곡 “바람과 갈대”(이봉조 작곡)와 “가랑비”(손석우 작곡)는 리얼 스트링이 고급스럽게 감싸며 기품을 느끼게 해주고, “내 입술에 그대 눈물”(정풍송 작곡)과 “무정유정”(백영호 작곡)은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세션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트로트의 맛을 준다. 하지만 그뿐이다. 듣는 이를 낚아채는 순간은 좀체 오지 않는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내부에서 만든 곡들은 어떨까. 이호준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적절히 삽입해 편곡한 “나그네 바람”(이호준 작곡)과 “정의 마음”(조용필 작곡)은 청장년층에 고루 호감을 얻을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역시 이호준이 작곡과 편곡을 맡은 “차라리 학이 되리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드라마 주제가에 어울릴 법한 극적인 곡이다. 이때까지 한껏 참아온 조용필의 열창도 코러스 부분에서 점증적으로 터지는데, 관습적이긴 하지만 조용필 보컬의 보편적 매력을 일깨운다. 내부에서 만든 곡 중 하나를 고른다면 “정말 모르겠네”(송홍섭 작곡)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음 앨범에 담긴 “여행을 떠나요”의 예고편 격이 된 “정말 모르겠네”는 로큰롤의 흥겨움을 만끽하게 하는데, 주거니 받거니 어우러지는 김석규의 기타와 이호준의 피아노 연주도 맛깔스럽다.

마지막으로 들어볼 부분이 하나 있다. 1980년대 히트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던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인 곡들 말이다. “그대 눈물이 마를 때”는 이들 콤비의 매끄러운 이른바 팝 발라드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다 이것이 조용필의 보컬과 자연스럽게 얽히지도 않는다. 반면 낭만적인 선율과 결별한 “눈물의 파티”는 신쓰팝 스타일의 차가운 리듬과 사운드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곡이다. 리듬에 초점을 맞춘 위대한 탄생의 연주는 물론, 특유의 가성을 섞어가며 강약을 다채롭게 조절하는 조용필의 보컬도 곡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눈물의 파티”가 히트한 이유는 그 때문일 듯하다.

정리하면, [바람과 갈대/그대 눈물이 마를 때]는 슈퍼스타의 음반답게 만들어졌다. 여러 세대를 모두 타깃으로 한 백화점식 곡 구성은 여전하고(예상 밖에 국악적인 곡은 없다), 같은 의도에서 곡 자체는 여러 시대를 풍미한 화려한 작곡가 군(群)에 주로 기대고 있다. 또 일본에서 디지털 신기술로 녹음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난 후 의외로 이질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소 튀는 곡들도 있지만, 상이한 요소들을 뒤섞은 구성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으로 일관적이란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이는 양면적이다. 곡들이 대체로 밋밋한 수준이라는 반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이 음반에 대한 반응은 별로 뜨겁지 않았고 (슈퍼스타의 음반치고는) 상업적인 실패작에 가까웠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이렇다하게 무릎을 칠만한 곡이 없다는 게 가장 컸겠지만, 백화점식 구성이 별다른 변화 없이 여섯 번째 반복된 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린다던가. 전형성이 연거푸 전형적으로 구사될 때 식상함은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위주로 곡을 만들고 역량을 집중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 음반은 결론적으로 조용필의 음반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과제로 남겼다. 이듬해 나온 7집 [눈물로 보이는 그대/들꽃]이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20030904 | 이용우 [email protected]

5/10

<추가>
1.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이 음반을 위해 곡을 제공한 작곡가들은 실제 수록된 수보다 많다. 누락된 작곡가들은 윤항기, 최종혁, 김홍탁, 문영일 등이 있다. 조용필의 곡도 원래는 두 곡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자세한 것은 다음 웹 페이지를 참고하라. http://www.ypc.pe.kr/articles/record/letter/letter17.htm
2. 이 음반의 디지털 제작 과정에 대해 라이너노트에 상세하게 적혀 있는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84년 1월 초에 1주일간 지구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16채널 멀티 녹음으로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를 만들어 음반의 가이드 라인을 완성했다. 이렇게 디지털 녹음에 대비한 ‘리허설’을 마친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CBS-소니 레코드의 시나노마찌 스튜디오에서 9일간 실질적인 디지털 녹음 및 마스터 테이프 제작을 완료했다. 즉 디지털 24채널 멀티 녹음기를 이용해 PCM 테이프에 노래와 연주를 수록하고, 이를 2채널 디지털 녹음기를 사용해 믹스 다운한 후, 디지털 편집기로 최종 마스터 테이프를 완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처럼 녹음부터 마스터 테이프까지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본문에 언급했듯 디지털 형태로 최종 음반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LP 제작을 위해 커팅 과정을 거쳐 마스터 원판을 만들었다.
3. 마지막에 실린 “서로 믿는 우리 마음”은 건전가요를 그대로 실은 게 아니라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직접 편곡 및 연주를 한 것이다. 1년 후 들국화가 데뷔 앨범에서 아카펠라 스타일로 충격적인 건전가요(“우리의 소원”)를 직접 연주한 것에 비하면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불완전하게나마 음반의 통일성에 관한 조용필의 자의식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수록곡
Side A
1. 바람과 갈대
2. 그대 눈물이 마를 때
3. 가랑비
4. 눈물의 파티
5. 내 입술에 그대 눈물
6. 나그네 바람
Side B
1. 정의 마음
2. 차라리 학이 되리라
3. 어떤 결정
4. 무정유정
5. 정말 모르겠네
6. 영원속으로
7. 서로 믿는 우리 마음(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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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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