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엄인호와 조동익을 한번에 다루면서 두 사람 사이에 나이차가 좀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재판이군요. “어느 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라는 가사가 있듯이 여자 나이를 공적 지면에 밝히기는 꺼려집니다. 그저 한영애와 장필순 두 여성 아티스트 사이의 관계는 엄인호와 조동익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말씀만 전합니다.

그런데도 두 여성 아티스트는 종종 같이 언급됩니다. 그건 아마도 이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를 거치면서 경력의 절정기를 누렸고 그래서 ‘대표적 여성 아티스트’로 손꼽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한 웹진도 그렇고, 모 대중음악 평론가도 그렇고 한영애와 장필순을 이상은과 더불어 ‘3대 여성 아티스트(혹은 스타일리스트)’ 식으로 꼽는 일이 많습니다. 단, 이상은은 1980년대에 ‘아티스트의 경력’으로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으니 이 글에서는 제외하겠습니다. 이 기획의 컨셉트와도 맞지 않고…

그런데 이 기획의 컨셉트가 무엇이었던가요… 조동진과 이정선이라는 ‘대부’가 시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한영애와 장필순을 다루면서 대략 이 기획이 잠정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동진’과 ‘이정선’은 하나의 음악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강물이나 산맥과 비유할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이자 줄기입니다. 한영애와 장필순은 이런 흐름과 줄기의 여성적 측면(female side)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게 이미 독자적 세계를 확립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이들을 조동진(조동익)과 이정선(엄인호)라는 뿌리(혹은 줄기) 위에서 피어난 꽃처럼 취급하는 것이니까요. 다들 알 듯 한영애도, 장필순도 다른 사람의 곡을 노래하는 가수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나아가 음반과 공연 등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음악인이 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만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가 대중음악을 한다는 것은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이상을 꿈꾸기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주류 대중음악’은 여전히 이런 관행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1960~70년대 무언가 의미 있는 도전을 시도했던 여가수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197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양희은 정도만 생존해 있다고나 할까요(그렇지만 양희은은 여전히 ‘가수’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뭐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제가 생물학적 여성은 아닙니다만 주변을 훑어보면 20대 후반 이후의 여성의 삶이란 고달프고 힘겨워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여성’이라는 범주로 게토화시키는 것 자체가 그릇된 기획일 것입니다. 독자들이 이런 범주화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획은 이들의 잘 알려진 시기보다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그래서 ‘노래 잘 부르는 여자’로 멋도 모르고 이리저리 노래부르던 시절의 이야기에 대해 많은 비중이 할애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음반 리뷰에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차제에 인터뷰에 응해 준 한영애, 장필순 두 언니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20030716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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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한영애 팬 사이트: 코뿔소
http://www.hanyoungae.net
장필순 팬 사이트
http://jangpillsoon.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