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16025828-eelsEels – Shootenanny! – Universal/Dreamworks, 2003

 

 

시들어감의 아름다움

일스(Eels)의 신작 [Shootenanny!](2003)를 들으며 묘하게 겹치는 음반이 있다. 바로 그랜대디(Grandaddy)의 [Sumday](2003)인데, 아마도 두 밴드 모두 각자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갖춘 음반을 발매했다는 점이 이러한 연상작용을 일으킨 원인일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Sumday]에 만족했다면, [Shootenanny!] 역시 만족스러울 것이다. 특히 [Shootenanny!]의 경우, 그간 일스가 점점 ‘팝송’으로부터 멀어져갔음을 생각해 볼 때, ‘왜 제2의 “Novocaine For The Soul”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법한 팬이라면 단숨에 반색할 만하다. 하지만 일스의, 아니 E의 진정한 재능은 팝송을 만들어내는 능력보다는 [Electro-Shock Blues](1998)에서 나타나듯, 다양한 장르 교배를 통해 들려주는 독특한 소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온 팬이라면 이 음반은 충분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일스 음악의 본류라 할 ‘낯설음’의 정서는 여전히 아련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음반의 첫 트랙 “All In A Day’s Work”의 블루스 기타와 브라스 섹션은 새로 산 스웨터를 쓸어 내리는 마냥 까슬까슬한 결을 유지하고 있으며, “Saturday Morning” 또한 캐치한 멜로디 라인을 뭉툭하게 디스토션을 건 기타 사운드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The Good Old Days”나 “Love Of The Loveless”, “Somebody Loves You”에서 드러나는 (그야말로 들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아름다운 선율과 “Dirty Girl”, “Rock Hard Times”, “Wrong About Bobby” 같은 흥겨운 로큰롤 트랙들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명확함’과 ‘긍정’의 정서를 보이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Shootenanny!]는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 나서기보다, 데뷔작 [Beautiful Freak](1996)부터 [Souljacker](2001)에 이르기까지 일스가 지나온 음악적 흐름들을 하나로 수렴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모습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위한 포석을 깔아두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벌여놓은 것들을 수습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통일시키는 것은 바로 E의 어눌하면서도 정감 어린 보컬라인일 것이다. 하지만 “Love Of The Loveless”나 “Fashion Awards”의 그 놀라운 훅에도 불구하고 [Shootenanny!]에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것은 E가 어느덧 음악을 지나치게 ‘편안한’ 자세로 대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창작자의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Electro-Shock Blues]와 같이, 진취적이면서도 과잉되지 않는 음반을 만들었던 일스가 이렇듯 편안하게 변해 가는 모습은 (당장 귀를 잡아끄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아쉬운 뒷맛을 남긴다.

결국 [Shootenanny!]에서 들려오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이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친숙함’에 있는 것이고, 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혹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노쇠함’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에서도 얘기했던 그랜대디가 [Sumday]를 발매하며 비켜갈 수 없었던 호오 양론의 대척점(對蹠點)이기도 했다. 따라서 일스 역시 이러한 평가의 갈림길에 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Shootenanny!] 보다는 [Electro-Shock Blues]가 일스를 더욱 잘 설명하는 음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hootenanny!]는 나른한 오후, 스스로도 모를 상념에 잠겨 어딘가를 멍하게 응시하는 그 순간을 위한 사운드트랙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것은 가벼운 통찰일 수도, 아니면 그저 찰나와도 같은 섬세함으로 위장한 공허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Numbered Days”의 아련한 아름다움은 아마도 잊기 힘든 순간을 제공할 것이다. 이 음반이 ‘평범해진 일스’를 용납할 만한 소리를 들려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일스는 여전히 일스만의 소리를 내는 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일스를, 그리고 E를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20030714 | 김태서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1. All In A Day’s Work
2. Saturday Morning
3. The Good Old Days
4. Love Of The Loveless
5. Dirty Girl
6. Agony
7. Rock Hard Times
8. Restraining Order Blues
9. Lone Wolf
10. Wrong About Bobby
11. Numbered Days
12. Fashion Awards
13. Somebody Loves You

관련글
Eels [Electro-Shock Blues] 리뷰 – vol.5/no.14 [20030716]
Eels [Daisies of the Galaxy] 리뷰 – vol.2/no.10 [20000516]
Eels [Souljacker] 리뷰 – vol.4/no.7 [20020401]

관련 사이트
Eels 공식 사이트
http://eels.artistdir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