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9041008-thethe더더(The The) – The The Band – Eizim/서울음반, 2003

 

 

2 + 2 = 5

[컬티즌]에 실린 더더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당시의 유행이었던 ‘듀엣’ 형태로 출발한 이 팀이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곡절 속에서 음악 활동을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세한 곡절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팀이 박혜경의 독립 후 활동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보컬 한희정을 맞아 내놓은 세 번째 음반 [The Man In The Street](2001)는 몇몇 좋은 곡들을 담고 있었음에도 어수선한 음반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무엇보다 당황스러우리만치 묵직했다. 솔로로 독립한 박혜경의 상업적 성공이 초기 더더가 선보였던 가볍고 화사한 모던 록 스타일의 가요를 답습한데 따른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나 베이스(이창현)과 드럼(김태종)을 영입하여 4인조 밴드 형태를 갖춘 뒤 발표한 네 번째 음반은 전작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물론 더 이상 아이러니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음반을 관통하는 정서는 안정감이다. 이는 음반을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전달하기 어려운 정서이다. 곡들은 팝의 관습적인 표현들에 순응하고 있고,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안정성은 거기서 나온다. 그러나 그 관습을 의식하는 것은 곡의 매력을 즐기고 난 뒤이며, 음반의 장점은 그것이다. 내적인 안정성은 곡들의 배치와 편곡에서 나온다. 대부분 미드 템포의 곡들임에도 적절한 배치를 통해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으며, 다소 무겁지만 세심하게 빚은 편곡은 곡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파열하는 코러스와 나른한 피아노 연주를 변조된 보컬과 병치시키는 “작은 새”에서도 그 안정감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그대 날 잊어줘”같은 곡에서 이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아마 이는 이 곡이 ‘한국식 모던 록’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도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In”과 겹겹이 쌓인 기타로 곡을 열어젖히는 “Save Me”는 음반에서 가장 뛰어난 곡임과 동시에 음반의 거의 모든 감정과 논리를 요약한다. 이 두 곡은 거칠게 달콤하고, 요란하게 내성적이며, 더하여 몽롱하고 아름다운 음률을 담고 있다. 또한 그것을 과장된 몸짓 없이도 요령있게 전달하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한 소리를 들려준다. 멜로디에 담긴 ‘가요’의 냄새는 재치있게 움직이는 기타의 묵향이 지운다. 곡들의 기타 운용과 전체적인 편곡 방향에서 브릿팝(BritPop)의 흔적과 ‘밝고 상큼한’ 가요를 만들었던 김영준의 전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곡 자체의 뛰어남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Save Me”에서 코러스를 마지막으로 반복하기 전, 고조되는 연주 속에서 살그머니 떠오르는 보컬은 홈 레코딩의 한계에 따른 음향 탓인지 몰라도 듣는 입장에서는 순간 홀린 듯한 감정을 빚어낸다.

더하여 눈에 띄는 것은 한희정의 존재감이다. 이는 단순히 창법이 변화했다거나, 혹은 작곡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표면적인 변화 이상의 것이다. [Bluedawn](2002)을 만들면서, 그녀는 무언가 배워 온 것이 분명하다. 홀로 만든 “뚜뚜뚜”나 김영준과 같이 만든 “Alice”에는 푸른 새벽의 느낌이 오롯이 담겨 있으며, 명확한 지시 대상 없이 감정의 중심 근처를 떠도는 가사와, 그에 부응하는 모호하고 여리되 또렷한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그 목소리는 “Tomorrow”에서는 애써 힘을 내려 하고, “작은 새”에서는 자학적으로 높이 울리다가도, 이내 예의 그 머뭇거리는 음성으로 돌아간다(“뚜뚜뚜”, “Alice”, “슬픔”). 음반을 듣다 보면 그녀의 존재가 음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주어진 곡을 따라가는 데 집중하던 지난 음반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점이다. “The End (2002)”는 태양의 정기를 듬뿍 머금은 발랄한 곡이 되었을 운명이나, 그녀의 목소리와 가사는 이 곡을 여우비 흩날리는 묘하게 더운 날의 상념처럼 만들어 버린다.

더 이상 박혜경이 있던 시절을 생각할 이유가 없는, 잘 만든 음반이다. 백화점식 모음집보다는 유기적인 ‘음반’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약점이 될 수도(‘단기대박’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강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음반의 ‘출신 성분’ 때문에 인디 팬들에게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동안 (밴드 이름이 영국 록 밴드와 같다는 점을 포함하여) 이들에 대해 비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이라면 이 음반을 통해 그들을 재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올 상반기의 가장 괜찮은 국내 음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20030627 | 최민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In
2. Save Me
3. 뚜뚜뚜
4. Tomorrow
5. 炤 笑
6. 그대 날 잊어줘
7. Alice
8. You
9. 작은 새
10. I Won’t Stop
11. The End (2002)
12. 슬픔
13. 그대 날 잊어줘 (Radio Edit)
14. hidde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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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 [The Man In The Street] 리뷰 – vol.3/no.12 [20010616]
머뭇거리지 않기, 돌아보지 않기: 한희정 인터뷰 – vol.5/no.13 [20030701]

관련 사이트
더더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etheb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