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인호(1952~ )와 조동익(1960~ )을 ‘vs’로 다룬다고 한다면 아마도 ‘엄인호 형님’이 뭐라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야, 나를 어떻게 동익이랑 같이 다루냐. 나이 차가 얼마인데…”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형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사람을 포함해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니 본인들에게나 독자들에게나 양해를 구합니다. 물론 굳이 연배주의 때문이 아니라도 약간의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차라리 들국화와 신촌블루스를 함께 다루든가, 어떤 날과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다루는 방법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밝게 비쳤던 순간’이라는 관점만을 취한다면 두 인물을 비교하면서 다룰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 순간은 1980년대 후반의 어떤 날일 것입니다. 1985년에 들국화가 마침내 ‘폭발’하고 한영애와 김현식과 하덕규(시인과 촌장)이 뒤를 이으면서 이들 모두의 거점이었던 동아기획이 장사가 잘 될 때입니다. 단지 장사가 잘 된다는 차원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로 혹은 무명으로 힙겹게 버텨 가던 사람들에게 ‘뭔가 되는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돌 때입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들국화가 그 꽃을 이루는 수많은 꽃술처럼 산산이 흩뿌려진 다음 공허감이 감돌았을 무렵이기도 합니다. 신촌 블루스와 어떤 날은 ‘포스트 들국화’라고 할 만한 시기를 장식한 대표적 두 그룹입니다. 두 그룹 출신 인물들은 동아기획 소속 음악인들과 밀접한 인맥을 맺고 있고 뒤에는 동아기획에서 음반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데뷔할 당시에는 동아기획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회고해 보면 이들이 음반을 발표하고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19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화려하고 다양하게 개화한 시기였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들국화에 의해 ‘종합’되었던 여러 가지 감성과 취향이 생산적으로 분열증식했다고나 할까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지 몰라도 엄인호와 조동익은 이 두 그룹의 리더였던 인물입니다. 이 둘은 정말 너무나도 대조적이라서 1980년대 후반 언더그라운드의 상이한 두 감성을 대표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엄인호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 모아 신촌 블루스라는 그룹을 상설적 프로젝트로 만든 반면, 조동익은 이병우와의 합작으로만 그룹을 지속했습니다. 엄인호와 신촌 블루스가 ‘라이브 액트(live act)’였던 반면 조동익과 어떤 날은 ‘스튜디오 정키(studio junkie)’에 가까웠습니다. 원색적인 욕망을 내장하고 있는 신촌 블루스의 ‘칙칙한’ 음악과 동화적 감성으로 포장된 어떤 날의 ‘정갈한’ 음악 사이의 차이는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블루스’와 ‘퓨전 재즈’의 차이라고 말하면 너무 팍팍하겠지만…

그런데 이 글의 제목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구요? 다름 아니라 엄인호와 조동익의 이전의 경력을 안다면 두 사람에게 후광(後光)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엄인호에게는 이정선이, 조동익에게는 (그의 친형인) 조동진이 이들 각자를 음악인의 길로 인도해 준 사람입니다. 이정선과 조동진이 스타일은 상이해도 ‘대부’ 같은 역할을 했음은 지난 번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두 인물이 ‘사단장’이었다면 엄인호와 조동익은 ‘연대장’ 같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군사적 비유는 이 글 이후에는 쓰지 않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들은 후광이 있든 없든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이미 충분히 확보한 음악인들이라는 점만 강조하겠습니다.

몇 년 동안의 영광스러운 시기 뒤로 두 인물은 자신의 솔로 활동과 더불어 수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을 챙기고 거두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모습이우리 눈에는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힘 내라’는 말을 전합니다. 이번 기획이 그들의 앞으로의 작업에 작은 힘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현재의 힘겨움이 게으름 탓이었다면 이 기획이 그 분들에게 조금의 질책이 되기도 기대해 봅니다. 은근히 그리고 감히. 20030705 | 신현준 [email protected]

P.S.
엄인호의 경우 인맥이 아니라 음맥(音脈)을 짚어 보면 신중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신중현은 나의 우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건 정당합니다. ‘막 기타의 거장’이자 ‘노래 못하는 가수’라는 점에서(오해를 피하자면 우리는 신중현과 엄인호가 ‘기타를 못 친다’거나 ‘노래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두 양반 모두 개성있는 분들이죠). 많은 여가수를 배출했다는 점도 포함시킬 수 있겠죠. 다른 점도 말하고 싶은데 지면에서 밝히기는 그렇군요. 이렇게 본다면 엄인호와 조동익의 차이는 ‘신중현과 조동진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의 기획이 ‘조동진 vs 이정선’으로 시작하다 보니 그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그다지 잘못된 관점은 아니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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