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4042541-0513sinchonblues3신촌 블루스 – 신촌 블루스 III(이별의 종착역) – 동아기획, 1990

 

 

신촌 블루스, 엄인호 1인 체제로 변화하다

신촌 블루스는 자신들이 스스로 밝히듯이 밴드의 성격보다는 블루스를 좋아하는 음악인들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그런 만큼 발표하는 앨범들마다 참여하는 인물들과 음악적 색채가 조금씩 변화했지만, 이런 차이점은 일종의 변주에 가깝다(어떤 면에서, 잦은 멤버교체를 겪으면서 상당한 음악적 변화를 겪는 밴드와 비교하면 그 진폭은 그리 크지 않다). 즉 이들의 음악은 (어쨌든 이름에 붙어 있는) ‘블루스’라는 음악적 특성 속에서 사고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가능했던 까닭으로 신촌 블루스를 주도한 인물들, 즉 이정선과 엄인호의 존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정선의 이름은 [신촌 블루스 III(이별의 종착역)](1990)부터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이 앨범부터 엄인호는 신촌 블루스에 있어서 일종의 음악감독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구성원의 이런 변화는 음악적 색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선과 엄인호는 음악적 지향상의 차이점보다는 방법론적인 차이점(엄인호가 ‘일필휘지’ 스타일이라면 이정선은 상대적으로 ‘퇴고’에 집중하는 듯한)에서 구별되었던 인물들이며, 오히려 사운드에 있어서 이전까지의 음반들보다 더 안정감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안정감은 다시 생각하면 음악감독이 한 사람으로 통일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진 일일 수 있다.

2집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다른 개성의 음악인들의 한시적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강했던(예를 들어 봄여름가을겨울의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같은 수록곡들) 신촌 블루스는 이 음반에서 ‘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구심점’을 지닌 집단으로 변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혹은 이전에 참여했던 이정선이나 한영애, 김현식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사라진 까닭에(물론 김현식은 이 음반에 “이별의 종착역” 한 곡에만 참여하지만) 더욱 그렇게 들려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보다는 단일한 음악감독의 스타일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신인들이 중용된 것일까.

신촌 블루스의 멤버 구성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를 들라면 여성 보컬리스트의 존재일 것이다. 1집에서의 한영애, 2집에서의 정서용처럼 3집에서도 세 사람의 여성 보컬리스트가 참여하고 있는데, 간주 부분에 등장하는 빠른 템포의 재즈 풍 연주가 인상적인 “비오는 어느 저녁”에서의 정경화의 보컬은 그 당시에 인기를 끌었던 샘 브라운(Sam Brown)의 “Stop”을 연상시킬 정도로 고음역에서도 힘차게 뻗어나간다.

정경화뿐만 아니라 “그댄 바람에 날리고”에 참여한 이은미의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참여한 곡들에서는 종종 기타보다 브라스가 부각되거나 보컬의 절창이 두드러진다. 어떤 면에서는 이는 앞서 언급한 샘 브라운, 혹은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사라 본(Sarah Vaughan)이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같은 여성 재즈 싱어들이 당시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은근히 유행하고 있었던 점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반면 엄인호가 직접 보컬을 맡은 “나그네의 옛이야기”나 “향수” 같은 곡들은 전작의 “바람인가”처럼 엄인호의 허스키 보이스와 간간이 등장하는 엄인호 특유의 ‘막기타’ 애드립이 두드러지는 곡들이다. “나그네의 옛이야기”에서 엄인호의 중언부언하는 듯한 보컬 스타일은 그의 기타 연주처럼 항상 악보보다 늦게 등장하고는 서둘러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 곡 자체에서의 엄인호의 보컬은 멜로디와 잘 조우하지는 못한다는 느낌인데, 이는 그의 지나치게 개성적인 보컬이 때로는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동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수록곡들이 유지하고 있는 12비트의 느린 템포의 비감한 톤의 곡들에 비해 “향수”는 어느 정도 미드 템포로 흥겨움이 감돌기도 한다. 이 곡은 엄인호 자신이 비비 킹(B.B. King)의 “The Thrill Is Gone”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곡에 이어지는 “이별의 종착역”과의 대비일 것이다. (억지스러운 표현이지만) 전자가 가요화된 블루스라면 후자는 블루스화된 가요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특성은 전작에서도 “바람인가/빗속에서”와 “루씰”의 대비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전작까지만 하더라도 의도와 결과물이 묘하게 일치하지 못하는 느낌들이 존재했던 게 사실인데, “빗속에서”에 등장하는 조금은 과하다 싶은 보컬 코러스의 작위성이 마치 가요 멜로디에 무리하게 블루스의 감성을 접목시키려는 느낌을 주는 것에 반해, 비비 킹에 헌정한 “루씰”에 등장하는(어쩌면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의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떠올리게도 하는) 후반부의 기타 연주는 왠지 거장의 ‘재현’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3집 앨범의 결과물들이 안정되고 깔끔하게 들려오는 것 역시 자신이 하고 싶던 음악적 지향들이 좀더 적절한 언어를 찾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라는 성격에 나타났던 ‘균열’이 없다는 점이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도 없지 않다. 앞서 언급한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일관적인 특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곡의 진행이나 편곡에 있어서도 시원시원하다거나 명쾌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으나 전작까지 참여한 이정선의 ‘어디인가 비어 있는’ 스타일이 그리워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점은 그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부분이다. 또한 (되돌아보면) 신촌 블루스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라는 점도. 20030709 | 김성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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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1. 비오는 어느 저녁
2. 마지막 블루스
3. 나그네의 옛이야기
4. 비오는 날
5. 향수
6. 이별의 종착역
7.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
8. 신촌, 그 추억의 거리(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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