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4030042-0513oneday2어떤날 – 어떤날Ⅱ(출발/덧없는 계절) – 서울음반, 1989

 

 

매혹적인 일상의 낯선 경험

고등학교 수업시간.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뒤에서 끼리끼리 수군거리고 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큰소리로 조용하라고 외치건만 ‘어떤 날’에는 오히려 전보다 더 작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낮은 소리를 듣기 위해 대화를 멈추고 모두의 시선은 ‘하나’로 고정되어 선생님의 나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런 ‘낯선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때론 낮은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어떤날이 들려주는 음악에는 작은 목소리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소리의 포착과 딱히 절정이 없는 곡 전개, 그리고 끝날 듯 말 듯한 애매모호함으로 청자를 낯설게 이끌어가는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 보폭이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쉽게 드러내지 않는 변화가 곡과 곡 사이의 간극을 채워서, 지금은 잊혀졌지만 모두가 지니고 있을법한 내면의 정서를 슬며시 건들 때면 세월의 흐름 따위는 부정형이 되어 들을 때마다 ‘어떤 날’이 되고 늘 그자리에 있었으나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는 사물은 새로움으로 다가선다.

이러한 관찰자적 그리움의 시점은 이미 그들이 현재적 “출발”에 서 있을 때부터 ‘회고’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는 “나는 낙오자야. 왜 날 죽이지 않지?”라고 말하던 90년대식 미래지향적 패배주의와는 다르게 “언젠가 잃어버렸던 내 마음”이나 “언젠가 눈이 없던 늦겨울”의 “잃어버린 먼 이야기들을, 찾고 싶은 먼 사람들을 내 작은 노래로 불러”볼 뿐, 몸소 찾아 나서려 하지 않는 소심함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한편으로는 음악에 과유불급의 당위성을 부여해 주니, 이것저것 많은 악기와 의미를 가(加)하기보다는 감(減)하여 여백을 남기는 것이 본연의 미학일 터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은 여기에서 다소 어슷하게 나간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가장 이질적인, 하지만 ‘우울한 굴 소년(Oyster Boy)’의 덩달아 즐거워하기 같은 첫 곡 “출발”은 충실한 네 박자로 가벼운 어깨춤을 자아내게 하며 오보에 연주로 차분히 시작되어 “아리랑”이 중간에 삽입된 “취중독백”은 후반부에 가면 비밥(bebop) 스타일의 재즈로 전환되는데, 재즈 밴드 야타(Yata)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임인건이 연주를 맡았다. 그 외에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당시의 ‘시대적 풍류’라 할만한 반짝거리는 신디사이저 음향이다. 거의 대부분 연주에 사용되어 되바라지게 들려오는 이 ‘최첨단 악기’는, 때로는 잉여적으로 들리기도 하거나 이따금 스스로 도취된 채 ‘정직한 위치’를 고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나름대로 다양성을 추구한 덕분에 같은 듯 다른 노래가 되니, 이 경우 각각의 곡들은 하나의 묶음으로 통일성을 지닐뿐더러 개별적인 세포를 부여받는다. 여전히 이병우가 회색도시를 쓸쓸히 바라볼 때 조동익은 어딘가를 그리움으로 동경하지만, 스스로를 절제하며 낮은 울림으로 듣는 이를 고통 없이 아름다운 과거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앨범표지에 실린 길게 뻗은 도로는 일상의 낯선 경험을 매혹적으로 종용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마지막 곡 “11월 그 저녁에”의 떨림과 함께 하는 단촐한 기타와 오보에는 “그런 날에는”에서 갖게 되는 이와이 순지(Iwai Shunji)식 ‘4월 이야기’의 설렘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만큼 차분하고 아련하다.

이쯤에서 “어떤날”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여기에서의 결론은 대략 이러한데, 어떤 날이란 모두 같은 날이면서 동시에 특별한 ‘하루’를 지칭하는 것 같다. 다만 막연히 ‘그날’로 기억되는, 언제인지 모를 ‘그때’라 하여도 다시 모든 날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즉 평범한 일상중 하나가 ‘어떤 날’일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생일이나 기념일처럼 매번 일정하게 돌아오는 것이 아닌 막연하게 기억되는 뜬구름 같은, 어제인지 아니면 오늘일지 내일일는지도 모를,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오직 ‘그것’인 ‘그날’들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의 ‘어떤 날’을 말해줄 차례이다. 20030516 | 이주신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출발
2. 초생달
3. 하루
4. 취중독백
5. 덧없는 계절
6. 소녀여
7. 그런 날에는
8. 11월 그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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