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1094728-song여행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영원한 꿈이다. 물론 여행사에서 ‘패키지’로 내놓은 상품을 구입하여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다니는 여행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다. 그런데 이 음반은 어떤 ‘가이드’가 ‘패키지’로 묶어서 내놓은 상품이다. 그렇다면 악몽일까. 솔직히 말해서 이런저런 허접떼기 같은 ‘편집 음반’에 질려 버린 21세기 초의 한국인들에게 또 하나의 편집음반은 악몽처럼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니다. 악몽이 아니라 꿈이다. 그건 아마도 가이드 자신이 여행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반 뒷면에 나온 가이드는 털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네 만두집 주인 같은 인상이 아니고, 그렇다고 고행의 방랑시인 같은 인상과도 조금 다르다. 인생에서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생을 달관하고 초극한 사람도 아니다. 프로필을 보면 ‘목사’라고 하는데 그가 이끄는 교회가 어떨지도 능히 짐작이 간다.

20030701094728-song319개의 트랙들은 듣는 이를 세계 각지로 인도해 준다.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비루하지만 정감 있는 선술집이, 러시아의 얼어붙은 땅들 가운데 있는 클럽이, 노르웨이의 백야를 지새는 야외가, 지중해 연안 도시에 있는 조그만 공연장이,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황량한 카페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강원도 대관령 자락과 전라남도 강진의 바닷가의 언덕배기를 떠올리게 하는 트랙도 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김두수와 그 자신이 직접 부른 “Danny Boy”와 “Wayfaring Staranger”다. 왜 외국의 민요나 팝송을 불렀느냐는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여행자에게 ‘국적’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자기만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테이프에 담아서 남에게 선물해 본 경험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 가이드가 여기에 기울인 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은 있지만 그걸 받아 보고 감동해 본 사람도 그럴 것이다. 만들어본 적도 없고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 음반을 들어보는 게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말이라곤 오직 이 말 뿐이다. Buy or Leave! 후자를 선택할 때는 ‘무리들이여, 안녕’이라고 말하면서 고고하게…. 20030629 | 신현준 [email protected]

P.S.
혹시나 ’30~40대 아저씨의 취향’이 담긴 음반이라고 거들떠 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봐 한마디만 거든다면, 마크 코젤렉(Mark Kozelek)이나 소프티스(The Softies)같은 ‘모던’한 존재들의 음원들도 있다. 여행자에게 나이나 세대가 무슨 필요가 있으랴…

수록곡
1. Ohio – Damien Jurado
2. Lovesong – Donovan
3. Waiting – Hungry Mind Review
4. La Luna – Bert Jansch
5. Das Lied vom Heuschreck – Bulat Okudshawa
6. Birth! School! Dole! Angst! – Edson
7. Caruso – Antonio Forcione & Sabina Sciubba
8. Den Signede Dag – Sigvart Dagsland
9. My Funny Valentine – Chapter 2
10. Y Una Madre(And a mother) – Savina Yannatou
11. Night – Alexander Ivanov
12. Anytime – Anywhere(원곡:알비노니의 아다지오) – Notis Mavroutis & Panagiotis Margaris(Noa Dori 노래)
13. Morning Cigarrette – Notis Mavroutis & Panagiotis Margaris
14. Danny Boy – 김두수
15. Dumani Partiro – Benito Merlino
16. Annie’s Song – Sunshine Club
17. Around and Around – Mark Kozelek & Rachel Goswell
18. The Beginning of the End – The Softies
19. Wayfaring Stranger – 임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