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po3vm34iog5oienwoi3nfo

Radiohead | Hail To The Thief | EMI, 2003

 

Hail To The Fellas

[Kid A](2000)와 [Amnesiac](2001)이 불러일으킨 기존 팬들의 경악은 아무래도 라디오헤드(Radiohead) 본인들에게조차 상당한 부담이었던 듯하다. 앨범 발매에 맞춰 행해지는 인터뷰에서 밴드는 그들의 신작 [Hail To The Thief](2003)가 [OK Computer](1997)의 속편 격 앨범임을 부정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물론 2년 후, 밴드의 사운드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단서를 달아두기는 했다). 하지만 밴드의 극단적인 방향선회 음반 [Kid A]의 충격에 잊혀진 사실이 있음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OK Computer] 역시, 그렇게 ‘듣기 편한(easy-listening)’ 음반은 아니었다.

[Hail To The Thief]를 들으며 내린 결론 비슷한 것이라면, [Kid A]가 꼭 그렇게 [OK Computer]의 극한까지 가버린 기타 사운드에 대한 ‘앰비언트(ambient) 처방전’ 같은 음반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Kid A]와 [OK Computer]는 그 사운드 텍스트의 차이점만큼이나(혹은 이상으로), 내면의 소우주에 대한 ‘서사’와 음향의 ‘구조’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닮은꼴’인 음반이었다(따라서 용감(위험)하게 나는 [Kid A]를 ‘일렉트로닉 버전의 [OK Computer]’로 가정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에 위치하면서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두 음반의 사운드운용 사이에서 섬세한 조율과 절충을 행한 결과물로써 [Amnesiac]과 [Hail To The Thief]가 기능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Hail To The Thief]의, –[Amnesiac]의 절충주의 ‘버전 업’– 사운드는 첫 두 곡 “2 + 2 = 5″와 “Sit Down. Stand Up.”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Kid A] 이후 가장 구체적인 멜로디를 구사하는 두 곡은,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불안정한 ‘아날로그’ 전주와, 극단에 이른 감정의 내파를 보여주는 ‘디지틀’ 후렴구를 통해 록과 일렉트로닉의 절충을 이루어내고 있다. 주목할 점이라면 전자가 좀 더 기타 록적인 접근을 보이는 반면, 후자는 일렉트로닉에 가까운 문법을 사용한다는 점일텐데, 이는 단지 어느 쪽에 비중이 보다 실려있냐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관건은 “2 + 2 = 5″가 일렉트로닉의 요소들을 기타록의 범주에서 소화해 낸다는 것, 그리고 “Sit Down. Stand Up.”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디지틀 음향처럼 사용해 냈다는 점에 있다. 누구나가 ‘록과 일렉트로닉의 절충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운드. 하지만 이제껏 이 정도의 ‘화학작용’을 들려준 밴드는 흔치 않았다.

이어지는 “Sail To The Moon”은 전형적인 라디오헤드 표 ‘청승’ 발라드 트랙으로(실상은 아버지가 된 톰 요크(Thom Yorke)가 아들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한다), 그 잔잔한 파급력은 “No Surprises”나 “Pyramid Song”에 필적할 만하다. [Hail To The Thief]를 통해 특히 돋보이는 점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선택한 사운드 방법론에 대해 ‘확고한 신뢰’을 내비치는 밴드의 연주일 것이다. 파편화 된 가사와 ‘의식의 흐름’을 음향화(化) 한 듯한 연계성 없는 사운드의 변화를 안정적으로 조율해 내는 것은, 이러한 곡의 기저에 깔린 ‘자부심 강하’고 ‘활기찬’ 연주의 몫이다. “Backdrifts”나 “Go To Sleep” 등의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전자음에도 불구하고 [Hail To The Thief]가 ‘라이브가 가능한’ 록 음반으로 완성된 데는, 바로 이러한 ‘연주 우선주의’에 기반한 사운드 접근방식이 있을 것이다(“2 + 2 = 5″부터 “Go To Sleep”까지의 초반 다섯 곡은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밀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음반이 뒤로 갈수록 스스로가 제시한 이 숨막히는 사운드 텍스쳐 믹싱법에 짓눌리는 듯한 인상은 지우기 힘들다. 이후의 기타와 일렉트로닉의 절충을 시도한 사운드는 “Where I End And You Begin”, “The Gloaming”, “Myxamatosis”에서 드러나는 몇몇 참신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처음 두 곡의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강하며, 음반의 또 다른 한 축인 감상적인 어쿠스틱 트랙들(“We Suck Young Blood”, “I Will”, “Scatterbrain” 등) 역시 지나치게 축 늘어지며 초반부의 긴장감을 갉아먹는다(무엇보다도 후반부의 어쿠스틱 곡들은 상대적으로 훅(hook)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첫 싱글곡 “There There”의 에스닉한 퍼커션 리듬과 제의적인 어쿠스틱 사운드는, 곡의 불안정한 읊조림만큼이나 또렷한 인상으로 다가오며 후반부의 확실한 중심 축 역할을 해낸다. 또한 마지막 곡 “A Wolf At The Door”의 아날로그 질감 담뿍한 날 것 그대로의 기타 톤 위로 얹히는, 황량함과 절박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톰 요크의 보컬은 분열증적 정서를 한껏 확장시키며 음반의 ‘열린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전형적인 라디오헤드-클리셰(cliche) 사운드, 하지만 이쯤에선 누구나 [The Bends](1995)의 환영에 흠뻑 취할 만하다.

[Hail To The Thief]를 두고 밴드의 미학적 시도가 완성을 이룬 앨범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하고 있는(을) ‘록과 일렉트로닉의 절충’을 이렇듯 자기화 하여 끊임없는 진화를 모색해 가는 음반이라는 점에 [Hail To The Thief]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또한 이들은 분명 기타 사운드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지 않았다. 라디오헤드의 일렉트로닉으로의 방향 선회는 밴드의 성향 자체가 변화했다기보다, 전위의 최전방을 달리는 일렉트로닉의 ‘실험성’을 록에 접목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주류 록밴드 중에서 이들처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전위로의 진입’을 시도한 밴드는 없었다.

따라서 최근 밴드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는 “[Hail To The Thief]는 분명 [OK Computer 2]이다. 하지만 2년 후 우리의 음악은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라는 발언이 꼭 ‘이런게 듣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우리가 해줬으니 앞으로는 뭘 하던 간에 군말 없이 들어라’ 식의 오만으로 읽힐 이유는 없다. 오히려 위와 같은 말은, 드디어 라디오헤드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타 록에 도입하는 최적의 방식을 찾아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이는, 앞으로 발표할 음반이 또 다른 사운드 형식을 개척해갈 ‘진취적인’ 작업이 되리라는 밴드의 포부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합당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후의 밴드는 지금까지의 ‘사려 깊은 음의 조정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도전적인 개척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품어보기도 한다.

물론 이 말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고, 라디오헤드가 이러한 기대를 반드시 충족시켜줘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아마도) 지구상 최후의(혹은 현시점에서 유일한) 이 ‘예술가’ 밴드가, 전자음악에 빼앗겼던 록의 ‘실험성’을 다시금 표면으로 불러내고 있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라디오헤드가 [Hail To The Thief]로 이루어낸 대단한 성과이다. ‘정형화’의 함정에 빠진 줄 알았던 록이 아직까지는 ‘확장’의 여지가 남아있음을 이 음반은 증명하고 있다 .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록의 새로운 개척지는 남아있지 않다’고, ‘남은 것은 옛 영광의 파편을 곱씹으며 소멸의 순간만을 기다리는 일 뿐’이라고 자조할 필요도 없다. 아직은 ‘현재진행형’인 록의 증거물로서 [Hail To The Thief]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라디오헤드에게 경배를” | 김태서 [email protected]

 

Rating: 8/10

 

수록곡
1. 2 + 2 = 5
2. Sit Down. Stand Up.
3. Sail To The Moon
4. Backdrifts
5. Go To Sleep
6. Where I End And You Begin
7. We Suck Young Blood
8. The Gloaming
9. There There
10. I Will
11. A Punchup At A Wedding
12. Myxomatosis
13. Scatterbrain
14. A Wolf At The Door

* 링크 음원은 인터넷에 퍼진 [Haill To The Thief] ‘최종 음원’임을 밝힌다(CD는 복사방지로 인해 음원을 추출할 수 없음). 하지만 이 음원 역시 음반에 비해서는 상당히 거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관련 글
Radiohead [Pablo Honey]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The Bends] 리뷰 (1) – vol.2/no.21 [20001101]
Radiohead [The Bends]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OK Computer] 리뷰 (1) – vol.2/no.21 [20001101]
Radiohead [OK Computer]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Airbag/How Am I Driving?] EP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Kid A] 리뷰 (1) – vol.2/no.19 [20001001]
Radiohead [Kid A]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Amnesiac] 리뷰 (1) – vol.3/no.11 [20010601]
Radiohead [Amnesiac]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I Might Be Wrong: Live Recordings] EP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In Rainbows] 리뷰, 20080113
Radiohead [The King Of Limbs] 리뷰, 20110310

라디오헤드 신드롬의 정체 – vol.5/no.11 [20030601]
여섯 가지 가능성들: 새로운 두근거림을 향하여 – vol.10/no.3 [20080201]

관련 사이트
Radiohead 공식 사이트
http://www.radiohead.com
Radiohead 한국 팬 사이트
http://www.radiohead.pe.kr

 


“There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