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03111012-0511_leejungsun_11이정선 – Hand Made – 서울음반(SRCD 3693), 2003

 

 

생각이 많아도 말을 아끼고

얼마 전 신촌블루스의 공연에서 게스트로 참여한 이정선의 모습은 많은 옛 팬들에게 반가운 것이었다. 1994년에 발표한 [Ten] 앨범 이후 음악적 활동이 뜸했던 그가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반가움에 이어서 그는 최근 9년만에 신작 [Hand Made]를 발표하는 동시에 자신의 음악인생 30년을 기념하는 동명의 콘서트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신보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새로움보다는 익숙한 것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그것이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에서는 오히려 낯선 것이기 때문이라도. 그리고 [Hand Made]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번 공연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상실”이나 “살다보면, 언젠가는”과 같은 간결한 넘버들에서도 드러나듯이, 신보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에서 ‘일렉트릭’한 음들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물론 간간이 해먼드 오르간이 쓰이기는 하지만, “난 오늘”이나 “상실”과 같은 곡들에서 건반의 쓰임새는 곡의 진행에 대한 보족적 역할이고, 대부분의 곡들은 어쿠스틱 기타만을 중심으로 해석된 블루스나 재즈곡들이다. 현악을 비롯하여 사운드의 빈 공간을 메우려는 시도 또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어쿠스틱한 편성은 전작 [Ten]으로부터 시작된 약간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정선의 음악적 기조는 여전하다.

그는 1985년에 발표한 [이정선 7집(30대)] 이후 블루스를 중심에 둔 일렉트릭 사운드로 음악적 방향성을 전환한 바 있는데, 그럼에도 그가 연주한 블루스풍의 곡들, 예를 들어 “건널 수 없는 강”이나 “외로운 사람들”의 주된 선율은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진행된다. 다만 [Ten] 과 [Hand Made]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면 세션 편성이 ‘록 밴드’의 느낌이 사라지고 사운드 자체가 간소화되었다는 점이다. 즉 ‘변화’라는 용어보다 ‘안정감’ 쪽으로 더 다가가는데, 본격적으로 블루스 록을 도입하기 직전의 음반인 [이정선 6 1/2집(그대 마음은/답답한 날에는 여행을)](1981)에 실렸던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을 리메이크한 버전을 원곡과 비교해 보면 이러한 안정감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러한 원인은 분명 이정선의 허스키한 보컬 톤과 읊조리는 듯한 창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건널 수 없는 강”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일렉트릭 기타는 한영애와 같은 샤우팅 창법의 보컬에 더더욱 적절히 조우하는 것인데, 그의 보컬의 특이함은 동시에 “뭉게구름”이나 “여름”과 같은 ‘건전한’ 노래들에서도 무언가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다. 신작에 실린 “난 오늘”의 멜로디는 어떻게 들으면 재즈 뮤지컬의 삽입곡처럼 느껴지지만 이정선의 보컬로 인해서 상당히 힘이 빠진 넋두리처럼 들리기도 하며, 70년대에 자신이 불렀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항구의 밤”이나 재즈풍의 “상실”, 심지어 우순실의 노래가 연상되기도 하는 “생각이 많아도 말을 못하고”같은 연주곡마저도 어디인가 허전한 구석을 던져준다.

이를 쉽사리 ‘연륜’이라는 부분으로 연결시키면 무책임할까? “상실”의 가사에 등장하는, 묻혀가는 일상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모습에 대한 창작자의 자기성찰이 유달리 가슴에 와 닿지 않더라도, 센티멘털한 아코디언 멜로디에 이어지는 보사노바풍의 “그 모습” 역시 무덤덤하기만 한 곡이더라도, 직접적인 감정의 호소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현 듯이 듣는 이의 감정을 스쳐 지나가는 쪽이 이정선의 매력이라고 본다면 이 음반은 여전히 그 미덕을 가지고 있으며, [Hand Made]의 절제됨 역시 그의 음악적 색깔에 부합하는 것이로 여길 수 있다. 20030528 | 김성균 niuuy@unitel.co.kr

8/10

수록곡
1. 살다보면, 언젠가는
2. 상실
3. 항구의 밤
4. 너의 이름
5. 난 오늘
6. 빗속에 서있는 여자
7. 그 모습
8. 아픔
9.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
10. 생각이 많아도 말을 못하고
11.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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