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선의 15년만의 라이브 [Hand Made]

20030603104312-0511_leejungsun_live_01한국 대중음악에서 기타리스트의 계보를 살펴보자. 일렉트릭 기타에 있어서는 신중현이 서구의 록음악을 한국적으로 소화한 선구자였고 김수철이 그 뒤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일명 ‘통기타’라 불리는 어쿠스틱기타의 대표자는 누구인가? 일렉트릭 기타에 비해 어쿠스틱 기타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고수가 되기가 몇 배나 더 어렵기 마련이다.

1970년대에 통기타음악이 새로운 주류음악으로까지 부상했을 당시의 통기타의 고수는 김민기와 이용복이었다. 그러나 김민기는 정권의 압력으로 음악을 계속 할 수가 없었고, 이용복은 기타를 놓고 스탠다드 팝의 스타로 변화해 버렸다. 이때 언더그라운드에서 새로운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1974년부터 명동 카톨릭센터의 여학생회관인 “해바라기 홀”에서 주류의 통기타음악 스타들과 차별성을 주장하는 음악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멤버들인 이정선, 이광조, 김의철, 김영배 등은 매주 토요일 모여서 공연을 벌였고 이주호, 김영미, 한영애 등이 가세하면서 이정선의 ‘해바라기’ 그룹이 만들어진다.

당시에 참여한 기타 연주자들은 이후에 각각 제 갈 길을 걷는데, 김의철은 그 이후 외국에서 클래식기타를 공부하고 돌아와 클래식 기타 주법으로 통기타음악을 반주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김영배의 연주는 윤복희의 1992년 음반 [삶]에서 들을 수 있는데 일렉트릭 기타의 신중현처럼 서구의 통기타 주법을 한국적으로 소화하는 놀라운 연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김의철이 통기타음악 스타일을 벗어고 김영배는 활동이 거의 없었음에 비해 이정선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연주로 통기타 연주의 권위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통기타 음악이 저물었고 통기타 연주의 전문성도 일렉트릭 기타에 비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방송에 별로 출연하지도 않고 공연무대도 드물었는데도 그가 통기타의 권위자로 불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정선 기타교실] 이라는 통기타연주의 바이블을 1985년부터 출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80년대 초반에 통기타 연주에 몰두할 때만해도 통기타악보는 어렵게 구한 일본 악보가 아니면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타실력이 늘기가 어려웠고 고수를 지향하려면 녹음테이프를 듣고 그대로 카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청음력과 연주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악보를 쓸 수 있는 공부도 해야한다. 게다가 되감기와 재생을 수십 번씩 반복하다 보면 집에 있는 녹음기란 녹음기는 모두 작살을 내야하고 그에 따른 부모님으로부터의 수모도 감수해야 했다.

이 같은 시련과 수모를 겪고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을 때 내가 만난 것이 [이정선기타교실]이었다. 정말 가뭄 끝에 단비와 같은 것이었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 작살낸 녹음기가 너무 아까웠다. 내가 부산에서 이정선의 라이브를 처음 보았을 때가 1985년이었다. 통기타 하나만 들고 공연을 하면서 기타를 떡주무르듯 다루는 그의 솜씨에 어린 마음에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그 이후로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다.

20030603104312-0511_leejungsun_live_02이정선은 1989년 이후 교육계로 들어가 음악인의 후진양성에 주력했고, 1994년에 열 번째 음반을 발표한 것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음악활동을 갖지 않았다. 그런 이정선이 9년 만에 통산 11집인 새 음반 [Hand Made](2003)을 발표하고 15년 만에 갖는 이번 공연에서 어떻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무대를 꾸려나갈까 하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서 오는 음악적인 여유와 느긋함이었다. 이정선은 30대까지만 해도 강하고 날카롭고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해볼 만큼 해보았다는 듯 편안하고 절제된 연주로 변해있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곡이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이다. 이 곡은 이정선이 1985년에 발표한 7집 [30대]에서부터 일렉트릭 블루스로 전환하기 전까지의, 통기타 음악시기의 걸작음반인 [이정선 6 1/2](1981)에 수록된 곡이다. [이정선 6 1/2]의 버전이 강렬한 기타스트로크로 질주하는 전주로 시작됨에 비해 이번 공연에서는 느린 아르페지오로 여유있게 시작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강렬함과 화려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다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차분히 자신의 인생을 음미하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느린 블루스 풍이 제격이다. 이번에 발매된 11집은 거의가 느린 블루스 풍으로 되어있으며 “상실”에서는 이런 이정선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정선 –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 ([이정선 6 1/2])
이정선 –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 ([Hand Made])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정선의 국악에 대한 관심이다. 그는 1970년대 초반에 군악대에 입대하여 국악의장대의 연주를 접하며 국악을 익혔고, 1979년에 발표한 [풍선과 이정선] 음반에서는 “통영 개타령”을 멋지게 현대화한 모습으로 들려준 바 있다. 또한 1994년에서 1995년까지 MBC-TV의 [샘이 깊은 물]이라는 프로그램에 연주자로 출연하여 양악과 국악기로 혼합 편성된 악단의 연주를 편곡하면서 이런 실험을 더욱 진행한 바도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국악인 조주선을 초대하여 “고향길”과 “상사타령”을 들려주었다. 어쿠스틱 악기들로 편성된 양악반주에 판소리 음색의 보컬로 불러준 곡들은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보컬이 거친 느낌을 좀 더 자제하고 양악반주에 국악적 색채를 보충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듯 싶다.

이정선 음악에 또 다른 중요 변화는 그의 보컬 음색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정선 6 1/2] 까지에서 그는 나지막이 읊조리는 보컬과 더불어 강하고 힘찬 보컬도 들려주었는데 이제는 강하고 힘찬 보컬은 들을 수 없다. 그는 그리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는 자신의 얘기를 목소리를 눌러서 가라앉은 톤으로 들려준다. 이것은 그의 기타음색이 변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그가 동덕여대에서 가르치는 과목이 무얼까? 기타?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초보기타를 교양과목으로 가르치기는 하지만 주요 과목은 바로 보컬이다.

이정선의 기타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록은 무대를 위한 여러가지 배려에서 엿볼 수 있었다. 먼저 악기편성에서 기타 이외의 악기를 도입하더라도 어쿠스틱 음향에 최대한 어울리도록 배려했다는 점이다. 오르간은 키보드에다가 하몬드 오르간을 겸비하여 자연스러운 음색을 지향했다. 드럼은 재즈드럼의 연주방식을 사용하여 비트를 주면서도 전체의 연주를 압도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당연히 베이스도 어쿠스틱 베이스였다. 이정선은 무대위에 여러 대의 통기타를 갖다놓고 곡에 맞게 기타를 골라서 사용했다. 연주곡에서는 클래식기타를, 풍부한 울림을 주어야 하는 “우연히”와 같은 곡에서는 Martin 기타를 사용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곡들에서는 Yoddler라는 기타를 사용했다. 이것은 재즈에서 주로 쓰는 기타로서 울림통이 크며 f 모양의 사운드홀이 있어서 저음의 울림은 적어 여운이 적으며 선명한 소리를 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통기타만 가지고 강렬하고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던 젊은 시절에는 강한 음색을 지닌 Martin기타를 주로 사용했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음 하나하나에 몰두하는 쪽으로 그의 기타미학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20030603104312-0511_leejungsun_live_03전반적으로 공연의 분위기가 너무 쳐졌음인지 게스트로 ‘통기타리스트’라는 인터넷 통기타연주모임 회원들을 초대하여 “여름” “산사람” “뭉게구름” 등으로 앵콜을 선사하려 했으나 청중들은 그의 대표곡인 “섬소년”을 청했다. 그는 다시 클래식 기타로 바꾸고 느린 속도로 나지막이 불러나갔다. 역시 “섬소년”은 그의 대표적 명곡이었다.(나의 18번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가고 있는 요즘 수제품적인 어쿠스틱 연주는 찾아보기도 제 맛을 내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통기타연주자로서 이정선은 따스하고 맛깔스러운 어쿠스틱 음향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다. 간혹 전자악기를 혼합하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어쿠스틱 악기속에 녹여버린다. 평생을 도자기만 만든 사람만이 장인일까? 이정선은 어쿠스틱 음악의 장인이다. 그 역시 인간문화재로 보호되어야 한다. 20030525 | 김형찬 khc0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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