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03082534-0511jodongjin5조동진 – 조동진 5(새벽안개/눈부신 세상) – 킹레코드(KSC 6033 SA), 1996

 

 

세월의 풍화가 빚어낸 걸작

조동진에게는 늘 ‘과작의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정식 데뷔 이후만을 따져보아도 사반세기를 헤아리는 그의 음악 이력과 디스코그래피를 대조해보면, 그리고 ‘끝없는 허무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듯한 나직한 그의 독백이 곧 문학적 독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세간의 말이 허언은 아닌 듯 보인다. 1996년, 그러니까 4집의 긴 ‘항해’ 이후 6년 만에 출시된 5집 [새벽안개]는 현재로선 그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셈이다.

부클릿에 실린 그의 사진은 세속의 희노애락에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은 구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앨범은 바로 그의 그런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있다. 불혹의 세월을 지나 어느덧 천명을 알아가는 그의 모습. 그래서인지 앨범 [새벽안개]는 그의 전작들보다 한결 더 영적으로 들린다. 4집에서 비로소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하나기획의 스텝들은 이번 순례에도 충실한 도반으로 함께 하고 있다.

신서사이저의 불길한 인트로가 이끄는 타이틀곡 “새벽”은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그의 오랜 선호를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트랙이다. 전작들에서 간헐적으로 드러냈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감각은 새벽안개의 모호한 이미지와 어우러지면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느낌이다. 욕망이 부딪치고, 좌절하고, 궁벽한 사연들이 피고 지는 새벽, 도시의 혼돈을 그는 ‘길게 앓아누은 이 불면의 거리’로 드러내고 있다.

내면의 혼돈은 “넌 어디서 와”와 “어젯밤 비바람”의 통찰을 지나 “눈부신 세상”의 그야말로 빛나는 역설로 이어진다. 영롱한 아르페지오 위주로 조촐하게 꾸며진 이 곡은 절제의 이면에 담긴 팽팽한 열정, 허무의 심연에 잠긴 치열한 몸부림, 냉소에도 언뜻 묻어나는 따듯함을 짐작케 할 수 있는 곡이다. ‘눈물 없는 슬픔’과 ‘사랑없는 정열’의 반복만으로 역설의 깊이를 실현한 이 트랙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가해함’의 기원을 순례해 가는 앨범의 세계를 가장 간결하게 구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초기작(이라 함은 그를 포크 가수로 불리게 만든 익히 알려진 곡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간직한 “그날은 어디로”와 “우리 헤어져 멀리 있어도”의 명징함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이번 앨범은 모호함, 불가해함,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 또한 분명히 찾을 수 있다. 그의 음악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자의 관조가 느껴진다. 그의 관조가 처절한 응시와 내적 고민 끝에 나온 것임을, 느릿느릿하고 나직한 그의 발화가 오랜 방황과 분노로 빚어온 것임을 새삼스레 일깨워준 이번 앨범은 1990년에 발매된 4집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이를 능가하는 미덕이 있다. 그 미덕에 대해 굳이 묻는다면 음악적 뿌리와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실험과 모색, 그리고 삶의 흔적을 거부하지 않은 장인정신이라고 대답하겠다. 세월의 혹독한 풍화작용은 이렇게 청년의 여윈 내면을 중년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며 작품 하나를 남긴다. 허나, 이 앨범은 조용한 등장 만큼이나 조용히 사라져 갔다. 작가적 재능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온당하게 평가되지 못했던 그와 이 앨범의 운명은 그래서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30526 | 박애경 ara21@nownuri.net

10/10

사족: 추천곡은 따로 추린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인데, 이는 이 앨범 자체가 하나의 컨셉 앨범 같기 때문이다. 굳이 고른다면, 앨범의 기조를 드러낸 “새벽안개”, 그리고 가장 그다운(?) 정서랄 수 있는 “눈부신 세상”을 골랐다.

수록곡
1. 새벽 안개
2. 넌 어디서 와
3. 어젯밤 비바람
4. 그 날은 어디로
5. 눈부신 세상
6. 멀고 먼 섬
7. 바람 부는 날이면
8. 너의 아침
9. 우리 헤어져 멀리 있어도
10.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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