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03082344-0511jodongjin4조동진 – 조동진 4(일요일 아침/당신은 기억하는지) – 서울음반(YBM SPDR 23), 1990

 

 

나는 여기 남아 다시 꿈을 갖기로 했다

조동진의 음악을 들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심상은 항상 동일하다. 언제나 같은 필체로 화폭에 오직 한 명의 여인만을 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익숙한 푸른 하늘이 있고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작은 강이 흐른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심상은 전원파의 ‘생활 속의 발견’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도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즉, 그의 음악에는 도시인이 가지는 동경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일관된 것은 심상뿐만 아니라 느릿느릿 읇조리는 듯한 창법과 담백하고 간결한 멜로디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느린 걸음으로 명상을 하는 듯한 음악만큼이나 그가 발표한 음반들 사이의 시간적 간격도 크다. 통산 네 번째 정규 앨범인 이 음반 역시 “제비꽃”이 수록된 3집이 발표된 지 5년이 넘는 시간적 간격을 두고 발표되었다.

4집의 수록곡들은 ’40대의 조동진’이 만든 곡들이다. 3집까지의 수록곡에 담겨 있었던 터질 것 같은 감성과 여린 느낌의 목소리는 4집 앨범에서는 많이 완화되었다. 노래를 통해 표현되는 감정의 굴곡도 완만해진 편이다. 그런데 이와는 상반된 느낌도 있다. 이 음반의 타이틀곡인 “음악은 흐르고”를 이전의 대표곡들인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등과 비교해 보면 분위기가 무겁고 쓸쓸하다. 이전의 곡들도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아 다소 심심한 느낌을 주었지만 이 곡은 한층 더 나아가 멜로디는 절정부에서도 아래로 처진다. 명상적인 심상은 주술적이라는 느낌마저 주고, 자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되 듣는 이를 울렁이게 만드는 그의 목소리는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다.

한편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시작된 앨범이기도 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조동진의 정규 앨범들 가운데 조동익과 이병우가 본격적으로 참여한 앨범이기 때문이다(참고로 조동익과 이병우는 당시 심야 라디오와 일부 매니아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어떤날을 결성하여 1989년에는 이미 두번째 앨범까지 발표한 상태였다). 앨범 전반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질감의 사운드와 베이스 연주는 조동익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며, 재즈풍의 영롱한 기타 사운드는 두 말할 것 없이 이병우의 솜씨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앨범을 시작하는 “일요일 아침”에서 축약되어 표현된다. 여기서 조동진은 하나의 움츠림도 없이 자신의 희망을 표현하듯 “나는 여기 남아 다시 꿈을 갖기로 했다”라고 말한다.

“그대 창가엔”에서는 조동익과 이병우가 주도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편곡이 한층 더 두드러진다. 당시 야심찬 신인이었던 김현철의 올갠 소리와 조동익의 디지털 드럼 프로그래밍이 어우러지고 오보에와 색소폰이 등장하며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당시 국내에선 들을 수 없었던 참신한 편곡의 시도이지만, 기존 팬들로부터는 조동진의 담백한 목소리를 지나치게 화려하게 수식한다는 불만도 있을 법한 곡이다. 물론 “저문 길을 걸으며”, “당신은 기억하는지”,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1991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조동진의 시집이 발간되었다) 등의 곡에선 조동진의 예전 스타일이 잘 간직되어 있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곡은 “항해”다. 강력한 톤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등장하는 것도 의외지만, 더 의외인 것은 이 곡이 조동진의 곡들 가운데 보기 드문 ‘송가(anthem)’풍의 곡이라는 점이다. ‘나’와 ‘너’만 존재하던 그의 세계에서 ‘우리’라는 주어가 가사에 등장하고 이전에 없었던 웅장하고 비장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어떤 풍경과 상황이 그를 개인적 서정주의에서 잠시 벗어나 ‘정치적’이기까지 한 이 곡을 부르게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앨범의 통일성을 해친다고 볼 수도 있지만 199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그의 ‘다짐’을 읽을 수 있다.

돌이켜 본다면 이 앨범은 조동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과도기적 작품이다. 서정미가 담긴 조동진의 가사와 곡은 여전하지만 조동익과 이병우 등 젊은 음악인들의 참여가 사운드를 밝고 세련되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도기적이라는 평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변화가 있는 그의 예술적 궤적의 한 단면일 뿐이다. 즉, 그의 작품은 언제나 과도적이며 또한 ‘최근작이 최고작’이었고 이 앨범도 이런 일반적 평가에서 예외는 아니다. 20030528 | 이정남 yaaah@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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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일요일 아침
2. 저문길을 걸으며
3. 당신은 기억하는지
4. 그대 창가엔
Side B
1. 우리같이 있을 동안에
2. 음악은 흐르고
3. 물을 보며
4.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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