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 – 조동진 1(행복한 사람/불꽃) – 대도레코드(DASP 79001), 1979 감각의 탄생 1970년대 말 “행복한 사람”을 히트시키면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조동진이 한국 포크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포크의 전성기 내내 주변인의 위치에만 머물렀던 그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 것은 어떤 점에서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음악을 시작한 지 10여 년에 달하도록 그는 한번도 자신의 독집 앨범을 출반하지 않았고 하다 못해 옴니버스 음반에 참여해 노래를 부른 적도 거의 없었다. 이 시기 그의 이력은 동방의 빛에서 세컨드 기타를 쳤다는 것과 몇몇 가수들에게 노래를 만들어줬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김민기, 송창식, 김정호, 이장희 등 기라성 같은 송라이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는 이렇다 할 히트곡 하나 만들지 못했고 음악적으로 널리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가 고은의 시에 곡을 붙인 “작은 배”가 시인의 혹평을 면치 못했다는 것은 당시 그의 처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김광희가 작곡한 “세노야”와 김민기가 곡을 쓴 “가을편지”는 시인의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조동진이 일찌감치 재능을 빛내지 못한 이유는 그의 유유자적한 성격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감정의 굴곡도 없이 물 흐르듯 완만하게 진행되는 그의 작곡 스타일은 당시만 해도 매우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게다가 조금만 힘을 빼도 싱거워지고 조금만 감정을 불어넣어도 혼탁해지는 극도의 예민함은 그의 노래에 대한 표현을 더욱 어려운 것으로 만들었다. 김세환(“행복한 사람”), 양희은(“작은 배”), 서유석(“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면”), 송창식(“바람부는 길”), 이수만(“다시 부르는 노래”) 등 당대를 주름잡던 가수들이 그의 작품에 손을 대어 보았지만 이 중 성공작으로 간주할만한 것을 집어들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 곡들은 1979년에 발표된 조동진의 데뷔 앨범 [행복한 사람/불꽃]을 통해서야 비로소 숨겨진 진가를 한껏 드러낸다(“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면”은 이 앨범에서 “긴긴 다리 위에 저녁 해 걸릴 때면”으로 제목이 바뀌어서 수록되었다). 조동진의 노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결국 원작자인 조동진 자신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조동진 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흔히 그것의 단순성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의 음악은 단순함을 표현 방식으로 삼는 음악이지 그것을 본질로 하는 음악은 아니다. “긴긴 다리 위에 저녁 해 걸릴 때면”의 불협화음이나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의 잦은 템포 변화, 그리고 “흰 눈이 하얗게”의 단음정 활용 등 그의 음악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파격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파격은 포크 음악이 빠지기 쉬운 천편일률적 곡 진행을 피하도록 만들며 동시에 통상적인 작법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조동진의 음악은 보기 보다 훨씬 복잡하고 세밀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음악이 표방하는 단순함은 “꽃반지 끼고”나 “모닥불” 같은 노래들의 자명하고 초보적인 단순함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단순함인 것이다. 마치 간결한 선을 통해 복잡한 심상을 드러내는 수묵화와 같이 불필요한 장식과 꾸밈의 배제를 통해 도달한 그의 단순함은 그 내면에 지극히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조동진의 음악세계는 1세대 포크 음악에서 흔히 발견되는 두 가지 편향, 즉 ‘우리 것’에 대한 강박과 해외 사조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모두 극복한 그만의 독자적인 것이다. “작은 배”의 탬버린 리듬이 상여소리를 연상케 하고 “흰 눈이 하얗게”의 멜로디가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은 있지만 앨범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유사성은 단지 우연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정적이고 단순하고 조용한 세계는 언뜻 선(禪)의 경지에 맞닿아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나 그의 음악에서 불교철학에 대한 명시적인 참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가 발을 들여놓고 있는 곳은 한국 동요의 이면에 깔린 비애의 세계인 듯하다. 순수하고 청징하면서도 그 내면에 깊은 아픔을 간직한 “반달”이나 “오빠생각”의 정서는 조동진 음악의 감수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적지 않다. “바람부는 길”, “작은 배”,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흰 눈이 하얗게” 등의 곡들은 동요적인 세박자 진행의 간결함 속에서 깊은 감정적 파장을 일으키는 그의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작품들이다. 동요가 조동진 음악의 내면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 외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들 수 있다. 그의 음악 경력이 후기로 향할수록 그 색채가 점점 옅어지는 감은 있지만 초창기 음반들에서 나타나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간과하기란 쉽지 않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겨울비”와 “불꽃”, 그리고 2집 음반에 실린 “어둠 속에서” 등은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그의 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트랙들이다. 물론 이 곡들을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복잡한 짜임새와 심각한 분위기는 포크 성향의 다른 곡들과는 뚜렷하게 변별되는 특성을 나타낸다. 그에게 있어서 프로그레시브 록은 하나의 장르로서가 아니라 분위기와 느낌의 음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음악에서 언제나 감지되는 신비로운 느낌과 격조 높은 분위기는 바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섭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행복한 사람/불꽃]은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조동진이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싱어 송라이터로 부상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는 단지 그가 이 앨범을 통해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는 점 뿐만 아니라 ‘조동진’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흐름이 이 앨범에서 발원했다는 의미도 아울러 내포한다. 조동진이 이 앨범을 통해서 일깨운 것은 이전까지의 한국 음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이다. 따로 또 같이의 1집과 2집이 극적으로 예시하듯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음악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기준은 바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들국화나 어떤날 등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모더니스트들을 결합하는 정체성 역시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는 감각적 동질성에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앨범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음악을 제시한 주역들이 ‘구시대’ 음악의 대표자들인 동방의 빛이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의 가장 새로운 음악을 창안한 사람들이 1970년대의 음악계를 주름잡던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점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연속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참여자들의 면모(음악계를 떠난 강근식의 ‘우정출연’)나 앨범의 구성(절반 가량이 과거에 이미 발표된 곡) 등을 감안할 때 이 앨범을 조동진의 ‘야심작’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실제로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앨범은 ‘거리에 나앉게 된’ 조동진이 전세금이라도 마련해볼 요량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는 이후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등 내놓는 앨범마다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히트 메이커’가 되었고 나아가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거목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의 시발이 된 이 앨범은 이러한 역사적 가치에 걸맞게 음악적으로도 대단히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행복한 사람”이나 “겨울비” 등은 이미 불멸의 명곡으로 일컬어지고 있고 나머지 곡들도 팬들의 각별한 사랑을 공유하고 있다. “저 멀리 저 높이”의 강요된 낙관주의가 다소 고립된 느낌을 자아내고 “다시 부르는 노래”의 피아노 선율이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트집을 잡을 수는 있지만 앨범 전체의 탁월함에 비춰볼 때 이런 것들에 큰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다. 단지 참가자들의 광고음악적 배경을 드러내는 ‘나나나~’ 여성 코러스가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게 거슬린다는 점만은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조동진은 1986년에 이 앨범을 다시 녹음해서 발표한 바 있다. 원작이 발표된 지 7년 만에 녹음된 새 버전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변화를 보여준다. 녹음기술의 발달로 사운드는 풍성해졌으며 그의 연륜을 반영하듯 전반적인 템포는 느려지고 음악의 느낌은 부드러워졌다. 편곡에 있어서는 오리지널 버전의 면모를 거의 그대로 되살리고 있지만 문제의 ‘나나나~’ 코러스나 “다시 부르는 노래”의 피아노 등은 다행스럽게도 대체되거나 배제되었다. 새 버전의 가장 큰 이점은 “언제나 그 자리에”와 “그림자 따라” 두 곡이 새롭게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대단한 명곡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동진 음악의 기본에 충실한 곡들로서 들어볼 가치는 충분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몇몇 이점에도 불구하고 새 버전은 오리지널 버전을 관류하던 팽팽한 긴장감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 추천하기는 어렵다. 외적인 사운드나 편곡을 개선하는 것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젊은 조동진의 고뇌와 분노와 비애와 희망이 응축되어 있는 오리지널 버전의 음악은 조동진 스스로도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20030522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0/10 수록곡 Side A 1. 행복한 사람 2. 겨울비 3. 긴긴 다리위에 저녁해 걸릴때면 4. 바람부는 길 5. 작은배 Side B 1. 불꽃 2.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3. 흰눈이 하얗게 4. 저멀리 저높이 5. 다시 부르는 노래 관련 글 조동진 vs 이정선: ‘한국형’ 싱어송라이터의 두 개의 초상 – vol.5/no.11 [20030601] 기나긴 기다림, 짧은 만남 그리고 긴 여운: 조동진과의 인터뷰 – vol.5/no.11 [20030601] 조동진 [조동진 1(행복한 사람/불꽃)] 리뷰 – vol.5/no.11 [20030601] 조동진 [조동진 2(어느날 갑자기/그)] 리뷰 – vol.5/no.11 [20030601] 조동진 [조동진 3(슬픔이 너의 가슴에/제비꽃)] 리뷰 – vol.5/no.11 [20030601] 조동진 [조동진 4(일요일 아침/당신은 기억하는지)] 리뷰 – vol.5/no.11 [20030601] 조동진 [조동진 5(새벽안개/눈부신 세상)] 리뷰 – vol.5/no.11 [20030601] 조동진 [Best Collection] 리뷰 – vol.2/no.6 [20000316] 배리어스 아티스트 [꿈] 리뷰 – vol.5/no.11 [20030601] 엄인호 vs 조동익: 후광보다 더 밝게 비친 언더그라운드의 두 불빛 – vol.5/no.13 [20030701] 한영애 vs 장필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여성적 측면 – vol.5/no.14 [20030716] 관련 사이트 하나뮤직 공식 사이트 http://www.hanamusic.co.kr/ 조동진 비공식 사이트(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http://www.jodongjin.com/ 조동진 다음 카페 사이트 http://cafe.daum.net/chodong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