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n Dando – Baby I’m Bored – Bar None/Breat 2003 돌아온 탕아의 성숙한 목소리 에반 댄도(Evan Dando)라는 이름은 항상 음악 외적인 부분들에 의해 침식 당해왔다. 1980년대 중반 레몬헤즈(The Lemonheads)를 결성한 후 모국인 미국보다는 영국에서 우호적인 평을 받으며 활동하던 중,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의 물결에 (다소간은) 무임 승차한 듯이 비춰지기도 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레몬헤즈가 안정적인 바탕의 작곡 능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이다. 대중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It’s A Shame About Ray](1992)나 [Come On Feel The Lemonheads](1993) 같은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뛰어난 멜로디 감각과, 컨트리, 포크 등을 팝적인 감수성으로 풀어낼 줄 아는 에반 댄도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불안정한 밴드의 라인업과 (얼굴 값 하는) 에반 댄도의 어지러운 사생활 및, 끊임없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던 약물/알코올 문제는 레몬헤즈를 음악만으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드는 악재로 작용했다(하지만 이런 점이 그를 X세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1996년 [Car Button Cloth] 발매와 밴드의 해산 이후, 7년이라는 엄청난 공백기간을 뒤로하고(물론 2001년 소리소문 없이 발매한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Brattle Theatre/Griffith Sunset]가 있었지만) 발매한 솔로작이자 재기작인 [Baby I’m Bored](2003)는, 그 오랜 공백기를 보상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첫 트랙 “Repeat”는 마이너 키의 기타 사운드와 에반 댄도의 ([All Music Guide]의 평을 빌리자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목소리(achingly lovely voice)’를 통해 낯설면서도 친숙한 감상을 제공한다. 이어지는 “My Idea”와 “Rancho Santa Fe” 역시 기존의 작곡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한 층 성숙한 송라이팅 능력을 과시하는데, 이러한 안정적인 송라이팅 위에 얹히는 그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또한 비교적 평이한 구성의 앨범 내에서 이질적인 순간을 연출하는 “Waking Up”은 단연 음반의 베스트 트랙으로 꼽을 만한데, 불길하게 흐느끼는 배킹 보컬과 무표정하게 노래하는 메인 보컬 뒤로 깔리는 스타카토 건반연주는 –스미스(The Smiths)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대체로 3분을 채 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의 수록곡들을 통해, 에반 댄도가 목표로 한 것은 한 층 더 진지해진 포크 사운드에의 정진인 듯하다(레몬헤즈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컨트리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물론 전형적인 컨트리 사운드의 “It Looks Like You”가 있긴 하지만). [Baby I’m Bored]는 이제껏 그가 만들어낸 모든 음반 중 가장 내성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찌 보면 뻔한) ‘낯가림’의 정서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간 큰 굴곡을 겪어온 에반 댄도 자신의 인생이 충실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업템포의 싱글곡 “Stop My Head”조차도 이러한 섬세한 침잠의 정서는 그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개인주의적인 어쿠스틱 감수성이 충만한) [Baby I’m Bored]는 에반 댄도의 가장 ‘개인적’인 음반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렇듯 ‘충실하게’ 개인적인 사운드는 청자와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내는데 성공한 듯하다. 이제 에반 댄도가 다시 메인스트림의 중심 권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 음반은 더 이상 그런 것을 신경 쓰고 싶지 않게 만든다. 이토록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음반이 열렬한 대중의 환호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무슨 문제란 말인가.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꼭 앨범을 수백만 장씩 팔아치우는 고고한 스타들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Baby I’m Bored]는 증명해내고 있다. 20030527 | 김태서 uralalah@paran.com 7/10 수록곡 1. Repeat 2. My Idea 3. Rancho Santa Fe 4. Waking Up 5. Hard Drive 6. Shots Is Fired 7. It Looks Like You 8. The Same Thing 9. Why Do You Do This To Yourself 10. All My Life 11. Stop My Head 12. In The Grass All Wine Colored 관련 사이트 에반 댄도와 레몬헤즈 비공식 홈페이지 http://www.robertcrosbie.com/evanda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