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01045129-0511-deftonesDeftones – Deftones – Maverick/Warner, 2003

 

 

힘없는 돌파

데프톤스는 뉴 메틀 시대의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가 되고 싶은 것일까? 첫 싱글이자 음반 발매 전 인터넷을 떠돌아다녔던 “Minerva”는 스미스(The Smith)와 큐어(The Cure), 디페시 모드(Depeche Mode)를 숭배한다는 멤버들의 ‘믿거나 말거나’성 고백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곡이었다. 스티븐 카펜터(Stephen Carpenter)의 얽히고 설킨 기타는 은은한 중동풍의 음계 속에서 거칠고 우아하게 움직였으며, 자연산 인더스트리얼 보컬 치노 모레노(Chino Moreno)는 [White Pony](2000)의 자학적 사악함을 넘어선 무언가를 들려줄 수 있다는 듯 노래했다.

뉴 메틀-포스트 그런지. 아마도 지구 최후의 ‘사내들’ 음악. 가벼운 스크래치와 적당한 힙합 다운비트, 미들 템포의 랩과 격렬한 샤우팅, 빈 드럼통을 두드리는 듯한 기타 리프, 인라인 스케이트용 자학과 힐리스 운동화용 분노. 최근 이 스타일은 차트에서의 좋은 성적이 우려스러울 만큼의 음반들을 거침없이 양산하는 중이다. 콘(Korn)의 [Untouchables](2002)는 충실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판매고 대신 열렬한 실망을 거둬들였고, 사람들은 곧 나온다는 프레드 더스트(Fred Dust)의 신보보다는 그가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에게 무슨 심보를 품었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고딕을 배스킨 라빈스 광고처럼 바꾼 에바네신스(Evanescence)나 학원폭력물처럼 장황하고 뻔한 린킨 파크(Linkin Park)에 이르면 ‘위기’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는데, [White Pony]가 준 오싹한 감동을 잊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데프톤스의 신보가 이 난국을 타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법하다. 하여, 셀프 타이틀과 장미에 파묻힌 해골 커버를 내걸고 나타난 데프톤스의 신보는, 되풀이하건대, 뉴 메틀 시대의 앨리스 인 체인스 같다. 앨리스 인 체인스처럼 어둡고, 앨리스 인 체인스의 셀프 타이틀 음반처럼 실망스럽다.

전형적인 데프톤스 스타일로 문을 여는 “Hexagram”은 기타 피드백과 구분이 안 가는 경지까지 이른 치노의 보컬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아마 그는 현재의 록 보컬 중 가장 감성적으로 울부짖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뿐이다. 데프톤스의 이전 음반 어딘가에서 분명히 듣고 또 들었던 리프와 패턴이 반복된다. 반복이 문제가 아니라 반복처럼 들린다는 것이 문제이다. “Needles And Pins”는 한발 더 나간다. 이것은 아무리 들어도 “My Own Summer (Shove It)”의 ‘alternative take 1’이다. “Good Morning Beautiful”은 “Minerva”의 여운을 채 즐길 틈조차 주지 않아서 원망스럽다. “Lotion”과 “Elite”의 계보에 놓일 수 있을 “When Girls Telephone Boys”에서 치노는 힘에 부친 듯 노래한다. 연이어 터지는 기타 노이즈가 피곤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음반을 끝까지 들을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밴드도 이 점이 걱정스러웠을까. “Battle-Axe”부터 음반은 낮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와 더불어 데프톤스만의 독특한 사이키델릭도 힘을 얻는다. 데프톤스의 음악에는 항상 불을 머금고 꾼 꿈 같은 환각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는 여타 뉴 메틀 밴드들이 갖고 있는 외향적 공격성과 차별되는 부분이었다. [Matrix Reloaded OST](2003)에 미리 공개된 “Lucky You”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전자음을 사용하면서 칠 아웃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최근의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 떠오르는 것이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점을 떠나서 이 곡은 늘어질대로 늘어진 음반 후반부의 산만함 속에서 또렷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음반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Bloody Cape”와 “Anniversary Of An Uninteresting Event”, “Moana”로 이어지는 곡의 배치는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래서 “Lucky You”와 더불어 분명 새로운 시도인 “Anniversary Of An Uninteresting Event”는 정말로 ‘uninteresting’해진다.

이러한 생각이 과민반응일 수도 있다. 데프톤스는 여전히 최고의 밴드 중 하나이며, 이 음반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뤄왔던 음악적 성과들을 잊지 않고 있고, 더하여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보인다. 아직은 익숙치 못한 것 같은 전자음의 사용을 제외한다면 사운드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최상급이다. 그러나 마돈나의 신보 또한 그러했다. 그 음반에 좋은 말을 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이 음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데프톤스의 신보는 우리가 이들에게 걸었던 기대를 만족시키기에는 모자라다. 이 음반은 몇 번씩 튀겨낸 묵은 닭고기 같다. 20030529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5/10

수록곡
1. Hexagram
2. Needles And Pins
3. Minerva
4. Good Morning Beautiful
5. Deathblow
6. When Girls Telephone Boys
7. Battle-Axe
8. Lucky You
9. Bloody Cape
10. Anniversary Of An Uninteresting Event
11. Moana

관련 사이트
데프톤스 공식 사이트
http://www.defto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