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01044654-0511-kingbrittKing Britt – Adventures In Lo Fi – BBE/Rapster, 2003

 

 

제3종 근접조우

필라델피아 출신 프로듀서/디제이 킹 브릿(King Britt)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애초에 뉴욕의 재즈 힙합 트리오 디거블 플래닛(Digable Planets)의 디제이로 판에 뛰어든 그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은 거의 좌충우돌 격이다. 자신의 밴드 실크130(Sylk130)과 함께 발표했던 [When The Funk Hits The Fan](1998)과 [Re-Members Only)(2001)가 1970년대 훵크와 1980년대 댄스 음악들의 흥겨운 재조합이었다면, 그의 또 다른 핵심 작업인 스쿠바(Scuba) 프로젝트는 근사하게 정련된 딥 하우스(deep house)를 표방한다. 물론 근년의 [Philadelphia Experiment Remixed](2002) 앨범에서 확인되듯이, ‘아프로테크(afro-tech)’나 ‘브로컨 비트(broken beat)’ 같은 최신 댄스 음악 트렌드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는다. 여타 다양한 댄스 리믹스 작업들까지 고려한다면, ‘춤출 수 있는’ 음악이라면 일단 무조건 건드려보는 것 같다. ‘킹 브릿’이란 이름을 온갖 인디 댄스 음악 레이블 음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지난 4월에 발매된 [Adventures In Lo-Fi]는 킹 브릿이 디거블 플래닛 시절 이후 거의 10여 년만에 내놓은 힙합 앨범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간의 킹 브릿 프로젝트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힙합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모처럼 랩을 잔뜩 채운 음반을 내놓은 것에 대해, ‘금의환향’이라고 호들갑을 떨거나 혹은 ‘돌아온 탕아’라고 비아냥거릴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저, 다양한 댄스 음악을 주무르며 축적된 킹 브릿의 출중한 프로듀싱과 디제잉 솜씨를 이제 ‘정통 힙합’을 통해 본격적으로 만끽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실크130의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Adventures In Lo-Fi]는 컨셉 앨범이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지만, 노예제도가 성행하는 고향별을 탈출해 지구에 불시착한 인간(흑인) 형상의 외계인 ‘브라더(the Brother)’가 겪는 낯선 경험과 정착 과정이 앨범의 전체 줄거리다. 존 세일즈(John Sayles)의 컬트 고전 영화 [The Brother From Another Planet](1984)을 뼈대로 킹 브릿이 무려 22개의 연대기적인 사운드 트랙을 만들고, 10여명의 내노라하는 언더그라운드 실력파 엠씨들이 저마다 개별 트랙에 살을 붙였다. 동향의 만능 재주꾼 리치 메디나(Rich Medina)가 브라더로서 짬짬이 1인칭 내레이션을 하는 가운데, 바하마디아(Bahamadia), 콰지모토(Quasimoto), 버터플라이(Butterfly), 캐피탈 에이(Capital A) 등 ‘지구인’ 엠씨들이 그와 차례로 조우하며 맛깔 나는 라임솜씨를 뽐낸다.

앨범 제목과 달리 킹 브릿의 사운드 프로덕션은 ‘로파이(lo-fi)’와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거칠고 직선적인 소리는 철저히 배제된 채, 오히려 사이 파이(sci-fi) 영화 컨셉에 걸맞은 입체적인 공간감과 풍성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샘플링된 피아노나 베이스 루프를 두터운 비트로 둘러치고, 거기에 선명한 엠씨들의 목소리를 덮어서 균형을 맞추는 킹 브릿의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특히 브로컨 비트나 누 일렉트로 등 최근의 레프트필드(leftfield) 댄스 음악들을 차용하면서도 이를 무난한 힙합 리듬으로 변주시키거나, 무거운 비트보다는 매끈한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우는 곡 전개방식은 최근의 언디 힙합 프로덕션에서는 흔치 않은 작법들이다. 이 앨범이 ‘감상용 힙합’으로 나무랄 데 없는 것은 바로 최신 일렉트로니카와 힙합을 별 충돌 없이 조합해 근사한 그루브를 추출하기 때문이다.

앨범 전체를 흐르는 일관된 컨셉과 사운드 프로덕션 하에 각 트랙은 다양한 변주를 취한다. 킹 브릿은 개별 엠씨들의 개성을 극대화하면서 소울, 훵크, 재즈, R&B에 이르는 다양한 흑인 음악 요소들을 최신 댄스 리듬에 적절히 녹여낸다. 레이디 알마(Lady Alma)가 천상의 목소리로 포문을 연 뒤(“Theme To The Cosmic View”) 바리톤 음색의 ‘브라더’ 리치 메디나가 막 도착한 지구의 첫 인상을 기술하고 나면(“Planetary Analysis”), 드디어 엠씨들의 본격적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경연이 시작된다. “Transcend”를 통해 첫 주자로 나선 여걸 바하마디아가 그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다. 그녀는 운전 도중 막 지구에 착륙한 브라더와 우연히 하지만 운명적으로(“by chance, by fate”) 조우하는 과정을 화려한 라임으로 묘사한다. 바하마디아 특유의 힘있는 목소리와 군더더기 없는 부드러운 플로우의 랩을 살리기 위해 킹 브릿은 간결한 비트를 쓰되 여유 있는 라이브 베이스 연주를 보강해 환각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옛 동료 버터플라이와 함께 한 “The Sound” 역시 만만치 않은 곡이다. 디거블 플래닛 시절을 연상케 하는 이 트랙은 브라더가 한 소녀와 클럽에 들어가 세 개의 방을 거치며 유희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킹 브릿은 곡을 각기 다른 분위기의 사운드로 정확히 삼분해 공간이동 효과를 살린다. 넵튠스(Neptunes) 스타일의 흥겨움, 환각적인 오프비트, 그리고 하프 샘플과 건반 중심의 편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100 BPM 안팎의 속도를 시종일관 유지해 일관성을 부여하는 재치를 보여준다. 물론 스네어 드럼과 베이스 샘플이 콰지모토의 재치 있는 래핑을 유도하는 “Spaces”, 스쿠바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R&B 하우스’트랙 “Apollo Creed”도 수작이다.

가장 튀는 트랙은 플로리다 출신 엠씨 릴너스 주첵(Rilners Jouegck: Dacered Onnle)이 참여한 “Emotional Quotient Deringer Of Chiek Anta Diop”일 것이다. 제목처럼 릴너스 주첵은 복잡한 워드 플레이(word play)와 독특한 라임으로 마치 그 자신이 외계인인 듯한 인상을 주는데, 킹 브릿은 엠씨잉과 충돌하지 않는 간결하고 풍성한 사운드로 시종 공간감을 부여한다. 특히 래그타임(ragtime) 향취의 복고적인 피아노 샘플링은 엠씨의 목소리와 근사한 조화를 이룬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Foreigner No Longer”는 데고(Dego)를 연상케 하는 브로컨 비트를 힙합 속에 녹여낸 트랙이다. 베이스 샘플과 라이브 베이스가 반복적으로 뒤섞이며 ‘칙칙폭폭’거리는 리듬을 만들고, 브라더 리치 메디나가 전체 이야기를 정리한다.

[Adventures In Lo-Fi]는 풍성하고 화려한 사운드로 무장한 앨범이다. 아마도 킹 브릿은 그간 프로듀서/디제이로서 축적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모두 쏟아 부은 듯 하다. 하나의 컨셉과 그에 부합하는 사운드 프로덕션으로 일관된 틀을 짜고, 개별 트랙에 다양한 소리와 개성 있는 엠씨를 투여해 듣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사실 킹 브릿의 전력으로 보건대, 이 앨범이 BBE 레이블의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시리즈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킹 브릿이 G4 랩탑으로 마무리한 사운드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지워버릴 정도로 듣기 좋은 힙합이다. 물론 힙합 앨범치고는 너무 깔끔하고 풍부한 사운드가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 특히 미국 대도시에 대한 관찰과 풍자는 기존 힙하퍼들에겐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신 일렉트로니카와 흑인 음악의 유산을 여유롭게 포용하며 세련된 힙합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킹 브릿의 이번 프로젝트는 박수를 받을만하다. 그가 당분간 댄스 믹스 작업은 지양하고 힙합 프로덕션에 집중하길 원하는 것은 아마도 나만의 바램은 아니리라. 20030527 | 양재영 cocto@hotmail.com

8/10

수록곡
1. Theme To The Cosmic View
2. Planetary Analysis (feat. Rich Medina)
3. Transcend (feat. Bahamadia)
4. Spaces (feat. Quasimoto)
5. Emotional Quotient Deringer Of Chiek Anta Diop (feat. Rilners jouegck: dacered onnle)
6. Apollo Creed (feat. Will Brodie)
7. Observation #1
8. Caught Out (There) (feat. Capital A)
9. The Sound (feat. Cherrywine)
10. Rise And Vibe (feat. Dice Raw)
11. Superstar (feat. Ivana Santilli)
12. Next Plateau (feat. Capital A)
13. Cobbs Creek (Great Skate remix) (feat. Pos & Trugoy)
14. About Face (feat. Mosez Gunn)
15. Observation #2
16. Stay Free (feat. Grand Agent)
17. Depth (A Poet Named Life remix) (feat. Rob life)
18. NuConcepts (feat. Kai Chi)
19. Observation #3
20. Che Sara Sara (feat. Miss Saigon)
21. Love’s Time (feat. Lady Alma)
22. A Foreigner No Longer (feat. Rich Medina)

관련 사이트
King Britt의 공식 페이지
http://www.kingbrit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