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n Duul – Psychedelic Underground – Metronome(MLP 15.332), 1969 반(反)음악적, 반(反)문명적 광기의 사이키델리아 잘 알려진 바대로 아몬 뒬은 캔(Can), 파우스트(Faust)와 함께 영국에 독일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을 알린 대표 주자이다. 그들은 그곳의 청자나 평론가들에게 독일 록 음악의 정체성을 확실히 각인시켰으며, 이것이 영미 록 음악과 구별되어 ‘크라우트 록’이라 불리우게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몬 뒬은 ‘독일’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에 무관심했고, 이를 자신들의 음악과 연관짓는 것조차 탐탁치 않아했다. 그룹의 멤버인 크리스 카레르(Chris Karrer)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독일 록이 영국에 비해 수 년 뒤쳐져 있었으며, 그들은 독일 외 다른 지역 그룹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당시 영국 평론가들은 자국의 록 그룹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창조력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이제 새로운 록을 개척할 가능성은 오히려 독일 그룹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분명 많은 영국 그룹들이 이미 7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매너리즘의 조짐을 나타냈고, 하위 문화 특유의 감성과 혁신적 태도는 사회 분위기의 변화, 새로운 창작의 원동력 부재, 대중 추수의 유혹과 타협으로 서서히 감퇴해 갔다. 이에 비해 여러 독일 록 그룹들은 여전히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미적 감수성, 실험에 대한 의욕을 지녔으며, 작가 중심의 창작 방식을 고수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것은 오르(Ohr), 필츠(Pilz) 등의 마이너 레이블이다. 이러한 토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의 독창성과 새로운 형식에의 가능성을 영국의 평자들은 제대로 간파한 것이다. 아몬 뒬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좌파적 의식을 지니며 공동체 생활을 하던 이들에 의해 조직된 그룹으로, 중심 멤버는 빈 출신의 싱어 라이너 바우어(Reiner Bauer), 드러머 페터 레오폴트(Peter Leopold), 베이시스트 울리히 레오폴트(Ulrich Leopold) 그리고 바이올린, 색소폰, 기타를 담당한 크리스 카레르였다. 그룹의 이름은 집시의 태양신인 아몬(Amon) 그리고 터키의 달의 여신 뒬(Duul)에서 따온 것인데, 이에 대해 카레르는 “독일의 민족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앵글로-아메리칸 풍의 음악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두 문화권에서 이름을 차용한 것”이라 덧붙인다. 1968년 그룹은 에세너 존타크 페스티벌(Essener Sonntag Festival)에 참가하기 직전 아몬 뒬과 아몬 뒬 II(쯔바이)로 분열되는데, 주된 이유은 극좌적 정치 성향의 멤버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갈등 때문이다. 정치성보다는 음악성을 중시했던 카레르와 페터 레오폴트가 그룹을 탈퇴한 후 팔크-유 로그너(Falk-U Rogner), 존 바인치얼(John Weinzierl), 레나테 크나우프(Renate Knaup), 데이브 앤더슨(Dave Anderson), 쉬라트(Shrat)를 영입해 따로 아몬 뒬 II를 결성한 것이다. 1969년 이 두 그룹은 각기 다른 레이블을 통해 데뷔하는데, 아몬 뒬은 앨범 [Psychedelic Underground]를 메트로노메(Metronome) 레이블에서, 아몬 뒬 II는 리버티(Liberty) 레이블에서 [Phallus Dei]를 각각 발표한다. 아몬 뒬의 데뷔 앨범 [Psychedelic Underground]는 3일 동안 녹음된 그룹의 세션 중 일부를 발췌해 담은 것으로, 지금까지도 논쟁의 소지가 많은 작품이다. 그 주된 이유는 본 작이 표면적으로 그리 ‘음악적’이지 않으며, 그 양태가 음악사적 흐름에서 상당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짜임새, 구조, 연주력 등 형식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 비평 기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록음악이나 현대 음악의 역사적 흐름에서 상당히 일탈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미학적 기준에 준거하여 그 가치나 의미를 판단해야 될지 꽤 난감한 경우에 속한다. 단순한 코드와 반복 비트로 일관하는 일렉트릭 기타 음과 원초적인 비트로 가득한 곡들은, 일부 청자와 평자들에겐 음악적으로 단련되지 않은 아마추어 연주인들에 의한 ‘난장’의 결과물 정도로 폄하될 소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전후 맥락을 살펴 볼 때 이런 시도가 이전 현대음악의 성과나 의미를 의식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앨범에 담긴 원초적 단순성, 성긴 소리들, 협화음과 통상적 선율로부터의 이탈, 노이즈 같은 요소들이 서양 음악 형식에 대한 전위적 태도에 따라 의도된 것이라곤 보여지지 않는다. 아몬 뒬 II로 이탈한 카레르가 본 작에 대해 “가짜”이며, 음반에 대해선 “사지 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혹평할 정도로, 당시 많은 아티스트들은 본 작을 별 성의 없이 만들어진 ‘괴상한 작품’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그 형식적 허술함 그리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엉성한 연주와 조악한 사운드 속에서 서양 예술에 대한 하나의 도발적 안티 테제를 발견한다. 또한 결과론적으로 이 같은 반(反)음악적 태도, 로-파이(lo-fi)적 사운드, 노이즈에 대한 친화성은 이후 펑크나 포스트 록의 이디엄에 근접해 있다. 결국 아방가르드를 지향할 의도도, 그것을 본격적으로 할 능력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들의 음악은 록 음악사 속에 재배치되면서 자연스럽게 ‘당시’의 아방가르드가 돼버린다. 예컨대 첫 곡으로 실린 “Ein Wunderhubsches Madchen Traumt Von Sandosa”는 장장 17분 동안 반복 비트의 제의적 드럼 연주, 단순 코드의 일그러진 기타 사운드, 결코 편하게 들리지 않는 노이즈 음향, 의미를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점철된 곡이다. 이는 마치 무아지경 상태의 사람들에 의한 이교도적 제의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동시대 일부 크라우트 록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반이성적이고 반서양적인 감성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성향은 네 번째 곡 “Im Garten Sandosa”에서 절정에 다다르는데, 가히 아몬 뒬 음악의 정수를 압축하고 있는, 본 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꼽을 만하다. 또한 “Der Garten Sandosa Im Morgentau”에서 각 파트간의 상호 관계를 무시한 독립적 즉흥은 마치 복수의 영상이 서로 중첩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앨범의 커버 아트의 이미지와 서로 부합한다(본 앨범의 커버 아트는 초기 크라우트 록의 ‘초현실’ 그리고 ‘사이키델릭’이라는 두 가지 핵심 이디엄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곡의 도입부는 아몬 뒬 II의 데뷔 앨범인 [Phallus Dei]에 실린 “Dem Guten, Schoenen, Wahren”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데, 아마도 아몬 뒬 II가 이전에 녹음된 세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따와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클래식 음악 등 미리 녹음된 음원을 재생 편집하거나 테입의 주행 속도를 바꾸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시간에 대한 절대적 관념을 일그러뜨리는 효과를 유발한 마지막 곡 “Bitterlings Verwandlung”도 주목할 만하다. 의도적인진 모르겠으나, 이를 통해 그들은 구체음악의 방법론을 계승하면서 현대 샘플링 음악의 원시적 형태를 제시한 셈이다. 일부 평자는 아몬 뒬과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그리고 프랭크 자파(Frank Zappa)와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반복 비트와 사운드의 질감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작품, 예컨대 [White Light / White Heat]의 동명 타이틀 곡이나 “Sister Ray”와 유사하게 들리긴 하지만, 아몬 뒬의 곡에 비한다면 이는 나름대로의 짜임새와 정제된 연주 패턴을 지니고 있다. 자파 음악의 경우 역시 언뜻 들으면 괴팍하고 엉뚱하지만, 사실 촘촘한 텍스처와 한치의 빈틈없는 연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몬 뒬의 작품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본 작은 새로운 형식 미학을 의도적으로 모색한 것도, 대중 추수의 상업적 기획의 결과물도 아니며, 장인적 연주를 들려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선명한 코드는 바로 ‘반(反)문명’이다. 이에는 당시 그들이 공동체적 삶을 통해 추구하던 문명 이전 평등 사회에 대한 갈망이 반영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아몬 뒬에 대해 ‘정치적’ 또는 ‘좌파적’이라는 수사를 덧붙이지만, 음악만 놓고 본다면 이러한 수사가 적합할 만한 즉물주의적 성향은 그리 나타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본 작은 지극히 ‘히피적’이고 그 중에서도 급진적이다. 그들은 히피적 태도에 기초한 반문명적 음악의 난장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듣는 이들이 ‘정신적’으로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이 과연 듣는 이에 대한 효과를 얼마나 고려하면서 이 앨범을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분명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제공한다. 존 케이지(John Cage)는 현대 음악을 대하는 청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이해’보다 ‘경험’이라 한 바 있는데, 본 작에 대해서도 이는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20030526 | 전정기 sirio2222@hanmail.net 6/10 보족 : [Psychedelic Underground]는 이후 1970년 미국에서 [Amon Duul]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으며, 이후 독일에서도 [This Is Amon Duul], [Minnelied]라는 앨범명으로 각기 1973년 그리고 1981년 재발된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본 작은 1969년 3일 동안 행해진 세션의 일부를 담은 것이다. 그 음원 중 일부가 데뷔 앨범과 마찬가지로 메트로노메 레이블에서 발매된 [Collapsing : Singvogel Ruckwarts & Co](1969) 그리고 바스프(BASF) 레이블에서의 더블 앨범 [Disaster](1972)에 실려 있으며, 나머지는 1984년 스위스 레이블 타임 윈드(Time Wind)에서 [Experimente]라는 더블 앨범으로 편집되어 뒤늦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71년 오르(Ohr) 레이블에서 발표된 앨범 [Para Dieswarts Duul]은 앞서 언급된 앨범들과는 달리, 1970년에 녹음된 별도의 음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 1년의 시간적 간극이 있을 뿐인데도 본 작은 동일 그룹의 작품이라곤 믿어지기 힘들 정도로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어쿠스틱한 사운드, 명상적인 분위기, 차분하고 정갈하면서도 정교한 리듬 파트, 유려한 연주, 깔끔한 녹음은 제의적 광기로 가득한 전작과 확연히 대비된다. 이러한 변화가 어떠한 연유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치 않다. 이후 그들은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도, 매체에 등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수록곡 1. Ein Wunderhubsches Madchen Traumt Von Sandosa 2. Kaskados Minnelied 3. Mama Duul und Ihre Sauerkrautband Spielt… 4. Im Garten Sandosa5. Der Garten Sandosa Im Morgentau 6. Bitterlings Verwandlung 관련 글 Intro: 초기 크라우트 록 개괄 – vol.5/no.7 [20030401] Ash Ra Tempel [Ash Ra Tempel] 리뷰 – vol.5/no.10 [20030516] Guru Guru [UFO] / [Hinten] 리뷰 – vol.5/no.10 [20030516] Amon Duul [Psychedelic Underground] 리뷰 – vol.5/no.10 [20030516] Amon Duul II [Phalus Dei] 리뷰 – vol.5/no.10 [20030516] Can [Monster Movie] 리뷰 – vol.5/no.11 [20030601] Kraftwerk [1] 리뷰 – vol.5/no.11 [20030601] Tangerine Dream [Atem] 리뷰 – vol.5/no.11 [20030601] Embryo [Opal] 리뷰 – vol.5/no.11 [200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