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30021455-B00008DZ0J_01_LZZZZZZZWhite Stripes – Elephant – Warner, 2003

 

 

록의 새로운 진화형?

쓸데없는 변명이지만, 화이트 스트라이프스(White Stripes)의 2003년 신작 [Elephant]에 대한 이 글이 완성된 리뷰 하나를 완전 폐기해 버리고 나온 것임을 밝히고 싶다. 원 리뷰에서 한 얘기인즉슨, “[Elephant]는 거장의 자세로 연주하는 원초적인 록이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는 록의 ‘정신’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묻혀 점차 변질되어 가는 록의 형식적 ‘원형’을 복원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도 새롭지 않은 음악적 소스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록의 ‘르네상스’를 예고하는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글을 다 써놓고 보니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란 생각이 들었다(이는 유례없을 정도로 만장일치인 해외 언론들의 띄워주기 성 리뷰를 접한 때문이기도 하다). 전작 [White Blood Cells](2001)의 비평적 성공을 통해 밴드가 획득한 지위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혹자는 뉴메탈(nu-metal)의 대립항으로써 –L.A.메탈(L.A. metal)의 대립항 그런지(grunge)를 구축했듯– 다소 억지춘향 식으로 형성된 것이 ‘거라지 리바이벌(garage-revival)’ 씬이라고 하지만, 평단이 그런지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록에 대한 복고적인 접근법 면에서는 그런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에 대한 이러한 찬사는 무언가 록에 대한 기존 시각이 상당 부분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뭉툭하게 튀어 오르는 기타 라인(기타의 가장 낮은 줄을 베이스 기타처럼 사용하고 있다)을 통해 만들어내는 유연한 그루브(groove)의 첫 곡 “Seven Nation Army”는 기존에 가져왔던 (투박한 록 사운드를 구사한다는) 이들에 대한 인상을 바꿔버릴 회심의 오프닝 트랙이다. 하지만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본판이라 할 휘몰아치는 사운드의 “Black Math”나 “The Hardest Button To Button”, (전작의 “Fell In Love With A Girl”을 연상시키는)”Hypnotise”, “Girl, You Have No Faith In Medicine” 또한 여전하다. 오히려 [Elephant]는 [White Blood Cells]와 비교했을 때 훨씬 지속적으로 강력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You’ve Got Her In Your Pocket”과 “Well It’s True That We Love One Another”를 제외하면 포크(folk)의 비중은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앨범 전체를 통틀어 잭 화이트(Jack White)의 보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또한 멕 화이트(Meg White: 드럼)가 마이크를 잡은 (살점을 모두 발라낸 건조한 블루스(blues) 사운드의) “In The Cold, Cold, Night”와 마지막 곡 “Well It’s True That We Love One Another”는 이 ‘수수께끼’의 듀오 밴드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Well It’s True That We Love One Another”의 가사를 보아, 둘의 관계는 ‘한 때의 부부 사이’가 맞는 듯하다). [Elephant]는 밴드의 음악적 야심과, ‘메이저 데뷔’에 대한 고려가 적절히 안배된 음반이다.

하지만 앨범을 관통하는 성격은 1970년대의 ‘하드록 거장’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트랙들을 통해 규정된다. “There’s No Home For You Here”는 전작의 “Dead Leaves And The Dirty Ground”와 비슷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화음을 강조한 압도적인 후렴구 덕에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Elephant]를 통해 들려오는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의 커버 “I Just Don’t Know What To Do With Myself”와, 7분을 상회하는 블루스/하드록 잼의 “Ball And Biscuit”이다. 노골적으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두 곡을 통해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는 ’21세기의 클래식 록’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분명히 [Elephant]는 ‘계산된 원초성’과 ‘예술가연 하지 않는 거장의 연주 방식’을 혼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바라보는 지금의 록 씬에 대한 시각과,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도적인지, 아니면 ‘록 숭배자’들에 의해 떠밀려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음악적 돌파구를 모색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듯하다. 나날이 표피적이고 말초적으로 변해 가는 현재의 록 씬에서 이들은 블루스/하드록의 근본적인 형식을 되새김질함으로써 새로운 록의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문제는 과연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그리고 이들이 현재 주도하고 있는 거라지 리바이벌 씬이 대세를 바꿀만한 무게감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그런 점에서 [Elephant]의 빌보드 앨범 챠트 6위 데뷔는 놀라우면서도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이는 음악이 함량미달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아니다. 즉,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현재 행하고 있는 ‘록 사운드에 대한 근본적 탐구’가 궁극적으로 씬에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인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다. ‘진정 록은 죽어 가는가’, 그래서 더 이상 록의 새로운 사운드 탐색은 소용없는 일인가, 이제 록이 개척하지 않은 분야는 과거의 유산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새로운 시각을 도출해 내는 것뿐인가? 과연 이들의 음악을 통해 들려오는 과거 지향적인 사운드는 죽어버린 줄 알았던 록의 화려한 피닉스 라이징(phoenix rising)인가, 아니면 한 시대를 풍미한 록이라는 괴물의 죽음을 알리는 단말마의 비명일 뿐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모두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의 음악이 씬에 미치는 파장력에 대한 평가는 사후(事後)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특히나 록의 변방국인 대한민국에서는).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록의 르네상스’를 운운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라면, [Elephant]를 통해 들려오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음악이 록의 미래에 어떤 새로운 좌표를 예시하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허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듣고 즐겨라, ‘이것은 단지 록일 뿐’이다. 20030511 | 김태서 uralalah@paran.com

8/10

수록곡
1. Seven Nation Army
2. Black Math
3. There’s No Home For You Here
4. I Just Don’t Know What To Do With Myself
5. In The Cold, Cold, Night
6. I Want To Be The Boy To Warm Your Mother’s Heart
7. You’ve Got Her In Your Pocket
8. Ball And Buiscuit
9. The Hardest Button To Button
10. Little Acorns
11. Hypnotise
12. The Air Near My Fingers
13. Girl, You Have No Faith In Medicine
14. Well It’s True That We Love One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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