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13105631-blur-thinktankBlur – Think Tank – EMI 2003

 

 

최고의 팝 음반

[Blur](1997)부터 간과되기 시작한 것이 있다. ‘블러(Blur)는 팝 밴드’라는 사실 말이다. 블러는 단 한 번도 팝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브릿팝(BritPop)을 버린 [Blur]가 로파이(lo-fi)한 기타 노이즈를 전면에 부각시켰든, [13](1999)이 일렉트로닉(electronic) 사운드를 도입해 기타 중심의 작곡 구조를 해체시켰든, 블러는 인상적인 선율과 화성, 그리고 ‘팝 안에서는 모든 장르가 경계를 갖지 않는다’는 신념에 충실한(달리 말해 록의 ‘진정성’ 같은 것은 애초부터 신경 쓰지 않는) 완전한 팝 밴드였다. 따라서 블러의 신작 [Think Tank](2003)에 대해 ‘블러의 이전 사운드로의 회귀’니 하는 말들은 지금까지 이들을 오해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 이것이 블러에 대한 첫 번째 오해다.

블러는 분명히 데이몬 알반(Damon Albarn: 보컬)의 밴드였다. 혹자는 [Blur]가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의 레코드’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작곡 크레딧에 그의 이름이 올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기타 사운드가 블러의 음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두고 밴드의 주도권이 데이몬 알반에서 그레이엄 콕슨으로 넘어갔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억측일 뿐이다(사실 [Blur]는 데이몬 알반의 취향이 미국 인디팝/록 쪽으로 옮겨간 점에 충실한 음반이었다). [Think Tank]의 레코딩 초기 단계에서 그레이엄 콕슨이 기타 사운드의 축소를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고 밴드를 뛰쳐나간 사실은, 밴드의 주도권이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었는지를 확인시키는 일례일 뿐이다(“Battery In Your Leg”는 그가 참여한 마지막 곡이며 나머지 트랙들의 기타는 데이몬 알반의 연주이다). 물론 사운드 메이커로서의 역할과 밴드 구성원 간의 ‘화학작용(chemistry)’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블러에서 그레이엄 콕슨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 이것이 블러에 대한 두 번째 오해다.

따라서 [Think Tank]는 기존 블러의 노선에서 급격한 방향 선회나 단절이 이루어진 음반은 아니다. 이는 앨범이 발매 이전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데이몬 알반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고릴라즈(Gorillaz)의– 경박한 힙합/댄스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사운드라는 의미이다. 노먼 쿡(Norman Cook, 혹은 팻 보이 슬림(Fat Boy Slim))이 프로듀싱한 “Crazy Beat”와 “Gene By Gene”을 놓고 고릴라즈의 사운드를 운운하는 것은 게으른 비교일 뿐이다. 그렇다고 “Out Of Time”을 비롯한 몇몇 곡(“Caravan”, “Moroccan Peoples Revolutionary Bowls Club” 등) 때문에 중동음악을 적극 도입했다고 얘기하는 것도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Think Tank]는 런던과 모로코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Think Tank]가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이 음반이 ‘팝에 대한 다른 접근방식을 택했던 [Blur]와 [13]의 사운드를 계승하면서도 드디어 그것을 ‘블러식’ 팝송 안에 담아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첫 곡 “Ambulance”부터 이러한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앰비언트(ambient) 풍의 퍼커션 리듬이 주도하는 도입부를 지나 점차적으로 층을 쌓아가는 사운드를 구사하는 이 곡은, 기존 블러의 작곡 패턴에서 가장 복잡한 구성을 취한 듯 보이지만 사운드 위에 얹히는 데이몬 알반의 보컬 라인에 의해 확실한 구심력을 갖추고 있다. 언뜻 듣기에 평이한 로파이 사운드를 구사하는 “Good Song”이나 재즈의 즉흥연주적인 작법을 구사한 “On The Way To The Club”과 “Jets”, 그리고 “Out Of Time”의 컨트리 기타 위에 얹히는 중동 풍의 현악 연주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앨범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까닭은 이러한 잘 잡힌 보컬의 선율이 있기 때문이다(아마 [Think Tank]를 [Parklife](1994)와 비교하는 이유 역시 이에 있을 것이다).

음반의 총괄적인 제작을 맡은 벤 힐러(Ben Hillier)의 안정적인 사운드 메이킹이 빛이 발하는 가운데, 노먼 쿡이 참여한 “Crazy Beat”와 “Gene By Gene” 또한 주목할 만하다. “Song 2″를 연상시키는 기타 사운드와 팻 보이 슬림의 ‘춤추기 좋은’ 전자비트가 기분 좋게 결합한 “Crazy Beat”, 그리고 “Girls & Boys”나 “On Your Own” 같은 블러의 황금 댄스곡 계보를 잇는 “Gene By Gene”은 [Think Tank]를 통해 들려오는 가장 흥겨운 순간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일렉트로닉적 요소가 블러의 사운드에서 벗어나지 않는, 즉 체화된 형태로 완성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13]의 윌리엄 오빗(Willam Orbit)이 만진 –그레이엄 콕슨을 의식한 듯한 가사(“But I hope I see the good in you/Come back again/I just believed in you”)의– “Sweet Song”은 “To The End” 이후 가장 아름다운 블러의 발라드 송이다.

하지만 수록곡의 개별 완성도를 떠나(혹은 포함하여) [Think Tank]의 가장 큰 의미는 ‘좋은 훅(hook)의 팝 음반’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이러한 사운드의 훅이 기존 팝의 영역 안에서 취사선택한 것이 아니라, (앰비언트나 일렉트로닉, 재즈의 연주 방식 등 팝의 문법 안에서 다소 이질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팝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팝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허물기 위한 시도의 결과가 팝의 영역에서 탈피하는 것이 아닌 팝의 영역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지금의 팝 씬에서 [Think Tank]와 블러가 갖는 의미가 있다(과연 블러 이외의 누가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 풍의 싸이키델릭 사운드 “Brothers And Sisters”를 ‘팝’이라는 영역 안에서 사고하고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인디 씬에 이러한 팝 사운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움직임은 있지 않았냐고 묻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맞다, 인디 씬에까지 시야를 넓히면 이는 그리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음악이 갖는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블러가 메인스트림 밴드라는 사실이 절대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블러가 메인스트림 팝 계에 계속해서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Think Tank]는 1991년 [Leisure]로 데뷔한 이후 12년의 시간 동안 블러가 계속해 온 팝 실험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음반이자, 지금껏 단 한 번도 ‘음악적으로는’ 실패하지 않았던 밴드의 능력을 재차 증명한 음반이기도 하다. 비록 대중적 영향력이 예전만은 못할지라도 블러가 목표로 한 음악적 성취가 [Think Tank]를 통해 다시 한 번 이루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가 밴드를 뛰쳐나갔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음악이며, [Think Tank]는 이를 훌륭히 입증하고 있다. 20030508 | 김태서 uralalah@paran.com

9/10

수록곡
1. Ambulance
2. Out Of Time
3. Crazy Beat
4. Good Spng
5. On The Way To The Club
6. Brothers And Sisters
7. Caravan
8. We’ve Got A File On You
9. Moroccan Peoples Revolutionary Bowls Club
10. Sweet Song
11. Jets
12. Gene By Gene
13. Battery In Your L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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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ong”

관련 사이트
Blur 공식 사이트
http://www.blur.co.uk/si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