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13100825-mp3_1mp3를 듣는 게 진정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음악 팬들 사이에 민감한 주제를 형성한다. 그 중 특히 치열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mp3의 음질 문제다. 음질 면에서 mp3 (혹은 여타 디지털 음악 압축 형식)의 진정성을 문제시하는 측에서는 mp3라는 압축 기술이 결국은 원래 음향 정보의 손실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본적인 논지로 삼는 반면, 그 상대측은 그렇게 손실되는 정보가 (보통) 사람의 귀로는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극히 경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양쪽 다 그 자체로는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주장들이고, 많은 경우 논쟁은 결국 ‘주관적으로 느끼는 차이’에 대한 공방으로 흘러간다 — 한편에서는 자기가 실제로 차이를 느낀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게 허세거나 착각이라고 몰아부친다.

mp3와 ‘원본’으로서의 음반(편의상 CD로 통칭하기로 하자) 간의 음질 차이를 음향 그 자체의 물리적 특성이란 차원에서가 아니라 청취자의 감지 행위라는 차원에서 엄밀히 비교하려면, 일종의 실험실적인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ceteris paribus)라는 근대 경제학의 낯익은 가정이 실제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D와 mp3는 일단 각각의 디지털 신호가 디코드되면 정확히 동일한 음향 기기를 통해 똑같은 공간적 조건 속에서 재생되어야 하고, 각각은 균일한 지각, 청력, 취향을 보장할 수 있는 청자 (다시 말해 동일인물)에 의해 감상되어야 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무엇이 CD음향이고 무엇이 mp3인지 청자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상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니 엄숙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사실 이런 류의 절차는 이른바 ‘눈가리개 시험'(blindfold test)이라고 해서 전문 오디오 애호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길거리에서 흔히 벌어지는 콜라 시음 대회와도 별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런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해도 여전히 주관을 둘러싼 논쟁의 여지는 가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질문의 방향을 한번 바꿔 보자. 어느 편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왜 mp3의 ‘열등한 음질’이 논쟁거리가 되는가? 현재의 상황을 아날로그 음악 시대에 대입시켜 보면, CD는 비닐 음반(이른바 LP)에, mp3는 카세트 테이프에 각각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유는 그저 비유로 그칠 뿐이지만, 기능적 등가성이라는 면에서 이는 상당히 교훈적이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1970년대 말-1990년대 초까지, 카세트 테이프는 경제성, 휴대의 용이함과 공매체의 존재로 인한 녹음 및 편집 가능성 등등 여러 이유로 LP에 맞먹거나 그 이상가는 인기를 누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카세트 테이프의 열등한 음질인데, 지금의 mp3처럼 음질 자체가 첨예한 대중적 논쟁의 소재로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전문가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한번만 들어보면 카세트 테이프의 음질이 비닐 음반에 비해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전축으로 직접 녹음한 것이든 음반사가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것이든 간에, 테이프의 열등한 음질은 명명백백한 것이어서 음질과 관련된 ‘진정성’의 문제가 떠오를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20030513100825-mp3_2이 얘기를 뒤집어 보면, 우리는 mp3 음질 논쟁과 관련해서 하나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mp3의 음질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그것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거꾸로 너무 좋아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CD와 비교해서 mp3에 누구나 식별할 수 있을 만한 음질 차이가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논쟁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고, RIAA와 대형 음반사들도 형사 처벌 및 손해 배상 소송으로 소비자들을 을러메는 데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그저 옛날 카세트 녹음의 전성기때 관행을 답습해서 CD 껍데기 한구석에 ‘무단 복제는 음악을 죽입니다’라는 하나마나한 경고문을 끼워 넣는 데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mp3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에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발전하게 된 데는 음질의 열등함이 아니라 ‘우수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mp3 음질을 둘러싼 논쟁은 주관적 차이를 건드리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논쟁이 지나치게 가열되면 각자의 음악적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 등 다른 요소들까지 꼬이고 엉켜 들어가기 십상이다. 논쟁이 자주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것도 주로 그 때문일 텐데, 그런 ‘뜨거운’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우선 mp3의 진정성 여부를 둘러싼 음질 이외의 다른 문제들을 좀더 차분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창작자 자신이 인정(authorize)하지 않은 사본이라면 음질의 손실이 있든 없든 (즉 mp3든 아니면 복제 CD든) 그것을 진정한(authentic) 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서부터, mp3로 상징되는 음악의 디지털 정보화 및 무상 대량 공유가 과연 새롭고 ‘진정한’ 음악을 창작하는 데 얼마만큼의 기여/해악이 될 것인가 하는 실천적, 윤리적인 질문들까지 다양한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다. mp3의 등장이 어떤 맥락에서 우리의 아주 일상적인 음악 소비 행위에 ‘진정성’의 문제를 야기하는가는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볼만한 것이다.

예컨대 [weiv]나 다른 공공 매체에 기고하는 한 가상의 평자가 반드시 CD를 사서 듣고 음악평을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상황을 설정해 보자. 그런 원칙은 (1) CD가 공짜로 구할 수 있는 mp3보다 실제로 훨씬 낫게 들린다는 주관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2) 시간과 정열, 노력을 투자해서 음악을 만든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발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3) 인정된 ‘원본’으로서의 음반에 체현된 창작자의 권위(authority)를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만큼은 존중해 줘야 한다는 직업적 윤리의식의 소산이라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20030513100825-mp3_3일반 음악 소비자의 경우라면 CD 혹은 mp3를 선호하는 데는 위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저마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국에는 음악을 소비하는 습관적 방식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이들은 ‘제대로 된’ 음반을 좋은 음향 시설에서 들어야 비로소 음악을 들었다고 여기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원본이든 사본이든 하루 종일 ‘워크맨’이나 다른 휴대용 기기를 통해 헤드폰으로 듣고 즐기는 데 만족하기도 한다. LP와 카세트 테이프의 시절 이렇듯 서로 다른 음악 소비 양식들이 비교적 ‘평화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면, 오늘날 CD와 mp3를 둘러싼 격론은 알게 모르게 이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갈등을 부추기는 듯하다. 바야흐로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음악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음악을 듣는 것이 진정한 방식인가’를 따지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20030511 | 김필호 antieodipe@hanmail.net

덧붙이는 말:
1. 록 음악과 녹음된 음반의 진정성에 관한 통찰력 있는 미학적, 철학적 논의들은 얼마 전 번역되어 나온 테오도어 그래칙, [록 음악의 미학] 1, 2장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2. mp3 압축방식과 음질에 대한 기술적인 세부사항 및 사운드 시험 결과 등은 아래 관련 사이트란을 참조.

관련 글

mp3와 음악의 미래 – vol.5/no.8 [20030416]
‘밀렵꾼 예술’로서의 홈 테이핑과 공연 부틀렉: Introducing Bootleg Galore – vol.4/no.2 [20020116]

관련 사이트

한림대학교 멀티미디어 연구실: mp3의 역사와 압축방식
http://mcl.ee.hallym.ac.kr/Main_Content/research/2_audio_signal/index_html?choice=mp3_a

mp3와 CD 음질 비교 시험
http://home.t-online.de/home/320058274132/mp31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