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01015615-LYM임현정 – A Year Out…In the Island – Enterone, 2003

 

 

진부하지만 여전히 듣기좋은 노래들

첫사랑 가수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앨범 제작단계부터 주목을 받아온 3집에 비한다면 이번 3년만에 나온 그녀의 새 앨범에 대한 언론과 대중들의 반응은 조용하다. 하긴 상업적인 면에서 보면 이제 ‘첫사랑의 가수’ 운운하는 것은 너무 진부해 보일 테고 기대와 달리 3집에서는 ‘첫사랑’ 만큼이나 뜬 노래도 없으니 딱히 홍보할 밑천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국내에 ‘몇 안되는’ 여성 모던 록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도 이젠 옛날 얘기다. 때문에 그렇게 조용히 다시 우리게 다가온 임현정의 음반은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매니아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데뷔한지 7년이 다 됐어도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신인가수의 앨범처럼 새롭다. 다만 전작이 이 가수가 그 가수라며 호들갑을 떨었다면 이번 4집 앨범은 ‘이런 가수 어때요?’하고 조용히 건네주는 것 같다는 점이 다를 뿐.

소속사를 엔터원으로 옮기고 발표한 그녀의 4집 앨범은 여전히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답게 앨범제작에 대부분을 직접 담당했으며 1집 때부터 함께 작업해온 신윤철(기타), 민재현(베이스), 강수호(드럼)등의 최고 수준급 세션 역시 빠지지 않았다. 앨범제작 기간이 길어진 만큼 전작들에 비해 많은 곡(히든트랙을 포함해 총 15곡)을 들려주려 한 흔적도 눈에 띤다(예상치 못한 피아노 연주곡까지 담았다).

그런데, 막상 앨범을 들어보면, 전작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단, 항상 따라 다니던 ‘여성 모던록 가수’라는 그녀의 닉네임이 무색할 정도로, 전작들에선 주류를 차지하며 그녀의 음악 스타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록 스타일의 곡들이 이번 별로 없다. 물론 정통 록 사운드가 아니라 현악기 연주를 가미해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나(‘CAFFEINE’)이나, 브라스 연주를 통해 ‘재지’한 느낌을 강조한(‘건전가곡’) 곡들이다. 그 대신 스윙감 넘치는 뮤지컬넘버 같은 ‘A Shining Spring Song’이나 피아노 반주 위에 스피릿츄얼(Spiritual)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코러스가 가미된 ‘땅 끝에 선 나’처럼 흔히 떠올리는 임현정의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또한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전 3집에서와는 다르게 이번 앨범은 다소 어둡다. 가사 역시 1·2집에서처럼 어두움이 결의에 찬 표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침잠하며 우울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별다른 기교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절제된 그녀의 보컬이나 현악기, 피아노 연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코러스의 비중을 한층 강화시킨 클래시컬한 편곡은 차분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 마저 자아내며 이번 앨범의 특징적인 면을 이룬다. ‘인연’, ‘Corpse Flower’, ‘사랑이 진 그 자리에 추억이 핀다’같은 곡들이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다운 낭만적인 대중적 감각이 돋보이는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재회’같은 곡도 있으나, 앨범 전체의 정서를 지배하진 못한다.

만일 그녀를 ‘모던 록 가수’나 ‘첫사랑의 가수’로만 기억한다면 이번 앨범은 다소 의외의 앨범일 수 있다. 그것이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녀의 새로운 면을 느낀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정작 임현정 자신은 그 결과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하다. 여지껏 발표한 앨범을 살펴보면 임현정 음악의 매력은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있다. 물론 그 자유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내진 않지만, 노래를 만드는 탁월한 대중적인 감각은 주류적인 스타일만으로도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대중의 눈높이에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한계라 볼 수 있지만 애써 그 이상의 평가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이번 앨범 역시 독창적인 시도는 아니다. 이번 앨범을 듣고 혹자는 이상은의 음악을 연상할 수 있으며 아니면 김윤아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음악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못된다. 비록 진부한 스타일이더라도 하나 하나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그녀의 재능을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전체를 놓고 보자면 아직 그것들이 다소 중구난방으로 들린다는 점은 이번 앨범에서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20030426 | 김승익 holy3j@hotmail.com

6/10

수록곡
1. Caffeine
2.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3. Rainbow (+♡+)
4. 재회 (Radio Ver.)
5. 인연
6. Corpse Flower
7. A Shining Spring Song
8. 건전가곡
9. 회상
10. 진심
11. 사랑이 진 그 자리에 추억이 핀다
12. 섬
13. 땅끝에 선 나
14. 기도 (연주곡)
15. 재회 (Original Ver.)
16. Bonus Track (Bohemian’s Wal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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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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