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30061843-0508lovepeace_3rd사랑과 평화 – Vol. 1(노래는 숲에 흐르고/울고 싶어라) – 지구(JLS 1202154), 1988

 

 

사랑과 평화의 달콤새큼한 재기

1979년은 사랑과 평화의 해였다. 1978년 말 발표한 데뷔곡 “한동안 뜸했었지”가 히트하고, 이어 발표한 “장미”와 “(뭐라고 딱 꼬집어)얘기할 수 없어요”가 연속 안타를 치면서, 사랑과 평화는 나이트 클럽 무대/쇼의 ‘간판’으로 단숨에 등극하며 ‘밤의 황태자’가 되었다. 낮에도 TV와 라디오에 부지런히 출연하며 떠오르는 스타임을 보여주었다. 1979년 한 해에만 외국곡 커버 연주음반 [Disco]를 시작으로, 정규 2집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어요]에 이어, 연말의 캐롤 음반 [크리스마스 캐롤집]까지 무려 세 장의 음반을 발표한 것은 당시 사랑과 평화의 인기를 방증하며, 그 인기의 견인차가 된 (앞서 열거한) 히트곡들이 하나같이 ‘댄서블’한 업템포 넘버였던 것은 상징적이다.

1979년이 사랑과 평화에게 ‘돌파’와 영광의 해였다면, 1988년은 성공적 재기의 해였다. 이는 그 사이 그 사이 이들의 활동이 여의치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물론 1980년 대마초 사건으로 그룹이 와해된 후, 어렵게 다시 나이트 클럽가에 복귀하였고 1982년 앨범 [넋나래](태양음향)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넋나래]가 비정규 앨범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사랑과 평화에게 1980년대(정확히는 1988년 이전까지) ‘비정규’의 연대기나 다름없었다. 김광민, 정원영, 문영배 등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가기도 한 반면 사랑과 평화의 리더 최이철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재적하기도 하는 등 사랑과 평화의 1980년대는 불안정했다. 지구레코드와 계약하고 내놓은 앨범 [Vol. 1(노래는 숲에 흐르고/울고싶어라)](1988)가 공식 복귀작이자 정규 3집으로 간주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귀는 일단 성공적인 재기로 부르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사랑과 평화의 재기를 견인한 것이 이들의 장기이자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훵키한 혹은 디스코 풍의 업템포 넘버가 아니라 발라드였다는 점이다. 이건 크게 히트한 “울고 싶어라”가 발라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빠르고 흥겨운 곡들은 대부분 B면으로 쳐져 있다. 그나마 “불의 나라”는 최이철의 초기 경력을 엿볼 수 있는 강렬한 록 스타일의 곡으로 예외적인 느낌을 주고, “젖은 눈길은”, “나비의 꿈”, “나그네” 정도가 앞선 1, 2집의 연장선의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곡들 역시 “한동안 뜸했었지”나 “(뭐라고 딱 꼬집어)얘기할 수 없어요” 같은 예전 히트곡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점잖다. 1980년대 영미 신쓰팝이나 퓨전 재즈 스타일의 그림자가 짙은 이 곡들은 흥겨우면서 세련된 느낌은 주지만 적나라한 춤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예외라면, A면에 실린 흥미로운 연주곡 “한문과 한글”이다. 이 곡은 퓨전 재즈와 민요풍을 오가는 기타 연주와 리듬이 뒤섞인, 말 그대로 ‘퓨전’ 음악으로, 상이한 스타일의 결합이 흥미와 재미를 주는 곡이다(도입부에 잠시 핑크 플로이드([The Wall])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나온다).

말하자면 차분한 분위기의 곡들이 음반의 알토란에 해당한다. 그런 곡들이 A면에 전진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새삼 들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음반의 문을 여는 타이틀 곡 “노래는 숲에 흐르고”와 “작은 손 모두 모두워”는 마치 1980년대 미국 R&B 여가수의 곡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고, “겨울바다”와 “어머님의 자장가”는 동시대 신촌 블루스의 음악들과 맥을 같이 하는 블루스 가요이다. 앞의 두 곡은 그 동안 최이철의 노래가 얼마나 과소평가 받아왔는지 증명한다. 최이철이 보컬리스트도 아니고 일반적 기준에서 뛰어난 가창력의 보유자도 아니지만, 곡 분위기에 안성맞춤으로 가성을 섞어가며 구사하는 흑인적인 질감의 노래는 다른 이들의 어떤 기교도 무색하게 한다. 음악적으로 이 곡들은 이전과 비교하면 이들이 한층 ‘어덜트’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재즈와 블루스를 자양분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런 편곡과 연주를 들려준다.

그리고 B면 첫 곡으로 이 음반의 ‘결정적 장면’인 “울고 싶어라”가 나온다. 사실 이 곡은 음반에서 유일하게 이남이가 작사·작곡·노래를 도맡은 곡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앞서 보았듯 이 음반의 전체적인 인상은 “한동안 뜸했었지”와 “장미” 시절과 거리가 먼, 차분한 정조(情調)이기 때문이다. 이남이의 질박한 노래가 매력적인 “울고 싶어라”는 울고 싶을 정도로 힘겹지만 툭 토로하면서 툴툴 털어버리는 지혜로움이 담겨 있다. 물론 이는 TV에 출연했을 때 보여준 이남이의 코믹한 이미지와 쇼맨십, 그리고 마침 열리던 ‘5공 비리 청문회’와 관련한 풍자적인 시의성이 어필하면서 ‘대박’이 되었지만.

1988년은 사랑과 평화에 성공적 재기란 열매를 주었지만 그 열매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울고 싶어라”와 이남이 개인에 집중된 관심과 인기로 이남이는 스타가 되었지만 사랑과 평화는 어색해졌기 때문이다(이남이의 백밴드 혹은 들러리로 오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결국 이남이는 솔로 가수로 독립하고, 사랑과 평화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장기호, 박성식을 영입해 그룹을 재편했지만 다시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이남이와 사랑과 평화 모두 그 이후 다시는 성공의 열매를 맛보진 못했다. 말하자면 이 [Vol. 1(노래는 숲에 흐르고/울고 싶어라)]는 사랑과 평화에게 마지막 성공으로 기억되는 음반이다. 20030428 |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8/10

<부연>
1. 1960-80년대 최대 음반사였던 지구레코드는 다른 음반사에서 음반을 낸 가수/그룹이더라도 자사에서 처음 음반을 내면 종종 ‘1집’이나 ‘Vol. 1’ 같은 문구를 삽입해왔다. 다른 음반사는 마이너이고 그래서 셈할 필요가 없다는 심리일까. ‘지구레코드 전속 1집’ 식으로 적으면 관행상으로도 논리상으로도 문제없지만, ‘Vol. 1’ 식의 불친절한 문구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많다. 사랑과 평화의 3집도 음반 커버에 ‘Vol. 1’이라고만 적혀 있어서 1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지구에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이 문구가 사랑과 평화가 아니라 음반사에서 임의로 붙인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2. “어머님의 자장가”는 1978년 사랑과 평화의 데뷔 음반에 담긴 바 있다. 또 “겨울바다”는 1982년 [넋나래] 음반에 실린 바 있다. “겨울바다”는 1991년 밀리언셀링을 기록한 김현식의 유작 [Vol. 6(내 사랑 내 곁에)]에 김현식 보컬 버전으로 실려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3. 이 음반의 라인업은 최이철(리드 기타, 리드 보컬), 이남이(베이스, 보컬), 한정호·최태일(키보드), 이병일(드럼)이다.
4. 이 음반이 대체로 차분한 느낌을 주고 사랑과 평화 특유의 훵키한 맛이 덜한 것은 1, 2집에서 듣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는 연주를 들려준 김명곤(키보드)과 주요 곡을 써준 이장희의 부재를 절감하게 한다.

수록곡
Side A
1. 노래는 숲에 흐르고
2. 작은 손 모두워
3. 겨울바다
4. 한문과 한글
5. 어머님의 자장가
Side B
1. 울고 싶어라
2. 불의 나라
3. 젖은 눈길은
4. 나비의 꿈
5.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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