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30061448-0508lovepeace_6th사랑과 평화 – Acoustic Funky(얼굴보기 힘든 여자) – 킹(KSC 5009A), 1995

 

 

부풀려진 담론의 혜택에서 벗어난 ‘복고시대’

1996년에 개봉된 [정글 스토리]라는 영화를 혹시 기억하시는지? 지금은 “오 필승 코리아” 혹은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더 익숙한 가수 윤도현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당시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남조선에서 록을 한다는 것’을 고찰하겠다는 야심찬 시도였던 이 영화는 평단의 약간의 주목을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철저히 참패했다. 물론 잘 만든 영화가 시장에서 실패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문제는 영화 자체에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가 기획될 수 있던 배경은 역으로 수많은 ‘문화’에 대한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던 당대의 풍경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서 록의 ‘반항적’ 이미지가 지식인들에게 매혹적인 소재로 포착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서 단순한 한 무명 록 밴드의 이야기 이상의 것들을 요구했던 것이리라.

물론 이렇게 바깥에서 불어 온 바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태지나 N.EX.T와 같이 상당한 대중적 성공을 거둔 록 음악인들이 분명 존재했고, 록 음악이 일정 정도 시장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활동이 뜸했던 중견 록 음악인들, 예를 들어 봄여름가을겨울이나 한영애, 들국화 같은 이들이 간만의 신보를 발표할 수 있던 여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혹은 신중현이나 산울림 같은 ‘거장’들의 컴필레이션이나 트리뷰트 음반들이 봇물을 이룬 사례와도 연관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전작 이후 3년만에 6집 앨범 [Acoustic Funky(얼굴보기 힘든 여자)](1995)를 발표한 사랑과 평화 역시 이러한 ‘돌아온 노병들’의 대열에 합류한 밴드이다. 앨범의 부제로 달려 있는 ‘Acoustic Funky’는 이 앨범의 제작방식에 있어서 시퀀싱 혹은 더빙으로 사운드의 여백을 메꾸지 않고, 라이브처럼 멤버들의 리얼한 연주를 살린 것에 대한 이들 나름대로의 자부심의 표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마치 ‘립싱크 시대’에 대한 비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하간 이러한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음반은 사랑과 평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훵크와 퓨젼 재즈의 향연에 가깝다.

솔직히 발매될 당시에 들었던 노래는 몇 번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흘러 나온 “얼굴 보기 힘든 여자” 정도였다. 꽹과리로 시작한 도입부에 이어 민요조라고 해야 할지 트롯 풍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를 키보드 멜로디, 그리고 이를 이어받는 사랑과 평화 특유의 훵키한 스타일의 기타와 베이스 라인은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마치 다른 두 곡을 ‘물리적으로’ 붙여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 이는 곡 중간에 간간이 등장하는 태평소와 같은 악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금 들으니 이러한 은근슬쩍 넘어가는 구성이 그럭저럭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성공적인 국악과 훵크의 퓨전이라고 불러도 될 것인가?

평가 자체가 자꾸만 망설여지는 이 곡은 일단 논외로 두더라도, “착각하지 마”, “Pretty Woman”, “키 작은 아가씨” 등에서 들을 수 있는 이들 특유의 훵키한 사운드의 완성도는 출중하다. “착각하지 마”와 같은 곡을 예로 들면, 계속 밑바닥에 깔린 반복적인 피아노 연주를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이어지는 훵키한 베이스 라인과 기타 연주가 듣는 이들을 한시도 들썩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운드의 빈 공간에는 항상 불쑥불쑥 기타나 베이스 연주 혹은 코러스가 끼어든다. 두드러지게 화려한 솔로는 결코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의 곡 속에서 연주 자체는 완벽할 정도로 꽉 찬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꽉 찬 사운드’는 심지어 “이별 후기”와 같은 블루스 풍의 곡들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인데, 다만 이 곡을 비롯한 “새로운 시작”, “이별까지도”와 같은 발라드들의 경우 그 성과는 약간 평가가 엇갈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재즈 풍의 발라드 “이별까지도”에서의 최이철의 목소리, 특히 고음역에서의 지나치게 긴장된 톤은 곡이 가진 차분한 멜로디와 충돌하며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새로운 시작”의 경우에도 이철호 특유의 소울 풍의 창법이 노래의 멜로디와 무언가 엇나가는 듯한, 중간에 이질적인 요소가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혹시 이는 “Pretty Woman”의 이철호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한국어의 발음과 거리가 먼 것 같은 그의 창법과도 연관지을 수가 있을까?

이러저러한 불평을 뒤로 하더라도 이 앨범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평화의 탁월한 연주실력은 여전하고, 당대에 발표된 여타의 다른 ‘광의의’ 록 음악인들의 앨범들에 비해 모자랄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는 무언가 허전하게 들렸거나, 혹은 그들을 위한 청중을 찾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왜일까. 물론 ‘돌아온 노병’들의 음악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신선함으로 느껴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록 음악이 일종의 새로운 트렌드처럼 포장되던 당대의 문화적 풍토 또한 이에 한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복고시대”라는 제목과 가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지속하는 쪽을 택했다(그리고 그것이 당연했다). 록 음악을 젊은 세대의 반항, 일탈과 같은 이미지와 함께 포장시킨 당대의 분위기에 편승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다. 같은 해에 발표된 삐삐밴드의 “안녕하세요”에 등장하는 “잘 가세요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가사처럼 결국 ‘복고시대’의 인물들은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다. 20030423 | 김성균 niuuy@unitel.co.kr

7/10

수록곡
1. 착각하지 마
2. 새로운 시작
3. 얼굴보기 힘든 여자
4. 추억속의 집
5. 이별 후기
6. Pretty Woman
7. 이별까지도
8. 키작은 아가씨
9. 이별은 한번만
10. 복고시대
11. 내가 꿈꾸던 세상
12. 너를 느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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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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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rouploveandpe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