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D2 – Deadringer – Definitive Jux, 2002 Time to Understand RJD2…Wanna Hear It? 뮤지션 이름은 R2D2의 대량생산형같고, 음반 제목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쌍둥이 괴담 영화와 똑같다. 멀리 스모그에 휩싸인 도시가 보이는 휑한 벌판에 피를 흘린 채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는 남자(RJD2 본인이다)가 찍힌 커버 사진은 스산하며, 발매 레이블은, 이런, 추상힙합의 명가(名家) 데프 젹스다. 첫곡 제목은 “The Horror”. 분위기가 이럴진대, 초현실주의적 아방가르드 SF 힙합 사운드가 탁자 위의 갓 끓인 커피까지 싸늘히 식혀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해서 누가 날 탓할 것인가? 무자비한 턴테이블 서커스가 난무하고 능지처참된 샘플 파편들이 구천을 떠돌며 신음하는 혼돈 속을 한 시간 남짓 헤맬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 과연 내 잘못일까? 아마 이는 RJD2가 2001년에 소량 한정판으로 제작한 프로모 리믹스 음반 [Your Face Or Your Kneecaps]를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오판이었을 것이다. 푸어보이 러버(Poorboy Lover)라는 이름으로 제작한 이 리믹스 음반은 유명 디제이들이 클럽에 배포하는 통상적인 리믹스 음반의 포맷을 띄고 있지만 애초에 그의 관심이 소울-훵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으로서, 길버트 오 설리반(Gilbert O’Sullivan)의 “Alone Again”마저 고전적인 소울 명곡처럼 들리게 할 정도로 훵키한 그루브를 끊임없이 토해내던 음반이었다. 이 리믹스 음반을 제작한 ‘가여운’ 백인 소년은 이듬해의 정규 데뷔 음반 [Deadringer]에서 ‘노래’에 가까운 직선적인 콜라주 작법과 그루브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화려하고 경이로운 추상힙합 사운드를 제조해냈다. 007 주제가처럼 펑 하고 터지는 혼 섹션과 묵직한 베이스 루프 위로 (더도 덜도 말고 007 영화만큼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싸구려 신서사이저 음과 LP 노이즈, 그리고 “It’s time, time, time to understand the horror / It’s time, time, time to understand the monster”라는 대사가 뒤엉키는 “The Horror”는 사운드 방법론에서 음반의 시작과 끝을 규정한다. 편안하고 명쾌한 구성은 조금씩 변주되는 주요 테마들의 면밀한 배치로 인해 집중력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사운드를 이루는 ‘천박한’ 소리의 조각들(이를테면 “Shot In The Dark”의 B급 느와르 영화 속 대사 같은 샘플들)은 그것을 애써 뒤틀고 치장하고자 하지 않는 솔직함으로 인해 품격을 획득한다. 샘플들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현란한 턴테이블의 기교도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확장된 형태의 리믹스 음반이자 극도로 정밀하게 제작된 클럽용 파티 음반, 동시에 기교 중심의 추상힙합이 잊고 있었던 근원적인 ‘무엇’, 즉 힙합이 뇌-귀가 아니라 귀-육체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음반이다. 사운드를 뜯어보려 폼잡기도 전에 그 황홀한 그루브가 오감을 자극한다. 발갛게 상기된 채 열락(悅樂)에 가까운 상태로 내달리는 “Good Times Roll Pt. 2″를 들어보라. 싱코페이션 리듬의 기타 소리와 상쾌한 스캣, 공중에 입맞춤하듯 쭉 뻗은 혼 섹션을 버무린 “Ghostwriter”는 또 어떤가. 솔로로 나서기 전 몸담았던 랩 그룹 메가헤르쯔(MHz)의 멤버였던 재키(Jakki tha Mota Mouth)는 청승맞은 코러스와 플룻 소리에 맞춰 “F.H.H.”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싱글로도 공개된 “June” 또한 메가헤르쯔의 카피라이트(Copywrite)가 보조하고 있다. 다만 이 ‘바닥’의 대부인 DJ 섀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둔탁한 드럼과 미니멀한 피아노 연주가 반복되는 “Chicken-Bone Circuit”는 초기 섀도의 B-사이드 싱글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며, “Smoke & Mirrors” 또한 그 솔직함에도 불구하고 섀도의 그림자를 미처 다 상쇄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점들은 최초의 흥분을 극복한 상태에서 애써 찾아낸 것이다. 그러니, 아무려면 어떤가, 라고 말하며 끝을 내련다. 정말 아무려면 어떤가. 우리는 정말 굉장한 소울-훵크-힙합 레코드를 손에 넣었는데 말이다. 2003041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수록곡 1. The Horror 2. Salud 3. Smoke & Mirrors 4. Good Times Roll Pt. 2 5. Final Frontier 6. Ghostwriter 7. Cut Out To FL 8. F.H.H. 9. Shot In The Dark 10. Chicken-Bone Circuit 11. The Proxy 12. 2 More Dead 13. Take The Picture Off 14. Silver Fox 15. June 16. Work 관련 글 컴퍼니 플로(Company Flow) vs. 데프 젹스(Def Jux) Cannibal Ox [The Cold Vein] 리뷰 – vol.5/no.8 [20030416] Aesop Rock [Labor Days] 리뷰 – vol.5/no.8 [20030416] El-P [Fantastic Damage] 리뷰 – vol.5/no.8 [20030416] RJD2 [Deadringer] 리뷰 – vol.5/no.8 [20030416] Mr. Lif [I Phantom] 리뷰 – vol.5/no.8 [20030416] Company Flow [Funcrusher Plus] 리뷰 – vol.3/no.9 [20010501] 관련 사이트 Definitive Jux 레이블 혹은 패거리의 공식 페이지 http://www.definitiveju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