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9094827-0507mantronixMantronix – Mantronix: The Album – Sleeping Bag, 1985

 

 

비트 마법사의 ‘최첨단’ 일렉트로 앨범

지금에 와서 댄스 클럽과 힙합의 상호교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겠지만, 적어도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백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댄스 플로어는 샘플링과 랩 중심의 힙합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1980년대에 올드 스쿨 일렉트로가 그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면, 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둘러싼 현재 지형은 또 다른 모양새를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맨트로닉스(Mantronix)는 당시 일렉트로의 최선봉에서 사운드 혁신을 주도하며 댄스 클럽을 지켜낸 극소수의 힙합 뮤지션 중 하나였다. 비록 그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 한 채 힙합 공동체를 쓸쓸히 떠나야 했지만 말이다.

맨트로닉스는 뉴욕 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프로듀서이자 디제이 커티스 맨트로닉(Kurtis Mantronik)과 엠씨 티(MC Tee)로 구성된 듀오였다. 일릭트로에서 엠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미약함을 감안하면, 커티스 맨트로닉이 사실상 이 그룹의 수장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자메이카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성장해 10대 중반에 뉴욕에 안착한 이 보헤미안은 음악을 독학하며 장르 경계의 무의미함을 일찍이 깨달은 듯 하다. 물론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의 “Planet Rock”은 그의 학습과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훗날 EPMD와 KRS-One을 거느리게되는 슬리핑 백(Sleeping Bag) 레이블 사장 윌 소콜로프(Will Socolov)에게 발탁된 맨트로닉스는 1985년에 “Fresh Is The Word”를 발표하며 마침내 뉴욕 클럽 가에 이름을 등록한다.

[Mantronix: The Album]은 “Fresh Is The Word”가 히트한 직후 발매된 맨트로닉스의 정규 데뷔 앨범이다. 요즘 기준에서 보자면 7곡이 들어있는 EP 규격의 음반이고 그나마도 곡간에 프로덕션 수준의 편차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반수의 곡이 1980년대 중반 뉴욕 일렉트로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고전들이기에, 구매 혹은 청취할만한 가치는 충분한 셈이다. 대부분의 트랙이 아프리카 밤바타가 “Planet Rock”에서 정립한 일렉트로 전형에 충실한 편이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진행된 일렉트로 사운드의 급격한 진보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실제로 커티스 맨트로닉이 이 데뷔 앨범 한 장으로 당시 뉴욕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로 입지를 굳혔다고 하니, 그 내용물은 분명 ‘최첨단’ 일렉트로 사운드를 담았을 것이다.

커티스 맨트로닉이 단숨에 일렉트로 귀재가 되었던 것은, 막 생산되기 시작한 SP-12 샘플러를 누구보다 먼저 마스터했던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힙합 뮤지션들이 애용하던 드러뮬레이터(Drumulater)나 LM1 같은 드럼머신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이 샘플러와 드럼머신 콤보는 그에게 보다 많은 창작의 여지를 제공했다. 물론 진보하는 테크놀로지의 원리를 올드 스쿨 힙합의 원형적인 태도와 훵크 질감에 녹여내는 특출한 재능이 없었다면 이 기계는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그는 샘플을 구태의연한 팝 ‘훅’으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디스코나 훵크의 흥겨움을 전자 음으로 환원하여 창조적인 리듬을 자유로이 직조해내는데 집중했다. 특히 “Bassline”은 힙합과 전자 음의 비트를 별다른 충돌 없이 자연스레 엮어내는 커티스 맨트로닉의 솜씨가 극대화된 일렉트로 ‘명곡’이다.

엠씨 티의 랩은 솔직히 별로 얘기할 게 없다. 어차피 직선적인 올드 스쿨 래핑의 전형을 보여주는 엠씨라면, 보이스 자체가 두드러진 개성이 없고 메시지가 불분명할 경우 그 호소력은 급격히 감소하기 마련이다. 물론 “Bassline” 같은 곡에서 엠씨 티의 비트를 타는 절제된 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흥겨움을 더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트랙에서 그의 투박한 ‘샤우팅’ 랩이 전면에 나섬에 따라, 오히려 커티스 맨트로닉의 비트가 뿜어내는 마력은 힘을 잃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일렉트로 훵크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주는 “Needle To The Groove”나 “Fresh Is The Word” 같은 곡은 엠씨 티의 랩을 적절한 수준에서 끊어주는 게 오히려 낫지 않았나 싶다. 한편 “Hardcore Hip Hop”은 제목과 달리 요즘 기준에서 생각하는 ‘하드코어’ 힙합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스크래치를 잔뜩 채워 넣은 일렉트로 전형의 트랙이니, 하드코어 힙합 팬이라면 유의해야 한다.

[Mantronix: The Album] 이후 커티스 맨트로닉은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 프로그래밍을 무기로 최고의 비트 마술사가 되었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사운드를 교묘하게 도입한 차기 작 [Music Madness](1986)가 연이어 성공하고 한편으로 저스트 아이스(Just Ice), 티 라 록(T La Rock) 등의 음반을 무난하게 프로듀스하면서 그와 맨트로닉스의 앞날은 거칠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메이저 레이블 캐피털(Capitol)로 이적한 1987년부터 음반 활동을 중단하는 1991년까지 5년여의 기간은 오히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변화하는 힙합 공동체의 요구와 비트 중심 댄스 음악에 대한 개인적 욕구를 적당히 중재한 앨범들은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고, 결국 엠씨 티 마저 그룹을 떠나면서 사실상 맨트로닉스는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비록 맨트로닉스는 쓸쓸히 활동을 접었지만,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디제이와 비트 대가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아 왔음은 분명하다. 테크노, 하우스, 마이애미 베이스, 빅 비트, 라가(ragga)에 이르는 자신의 전방위적 영향력에 스스로 고무되었는지 커티스 맨트로닉은 1998년에 독집 앨범 [I Sing The Body Electro]와 함께 뒤늦게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물론 일렉트로 리바이벌이 일어날 즈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다행히도, 일렉트로 원조답게, 시류에 편승하기보다 일단 장르의 새로운 진화를 위해 앞장서는 듯해서 보기 좋다. 아쉬운 것은, 일렉트로가 힙합 공동체를 떠났듯이, 커티스 맨트로닉 또한 힙합 특히 요즘의 미국 힙합엔 전혀 미련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전신 맨트로닉스만은 올드 스쿨 힙합 명인으로, 그리고 [Mantronix: The Album]은 일렉트로 고전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30301 | 양재영 cocto@hotmail.com

8/10

수록곡
1. Bassline
2. Needle To The Groove
3. Mega-Mix
4. Hardcore Hip-Hop
5. Ladies
6. Get Stupid “Fresh” Part I
7. Fresh Is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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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스쿨 ‘일렉트로(electro)’를 찾아서 – vol.5/no.6 [20030316]
Afrika Bambaataa [Looking For The Perfect Beat 1980-1985] 리뷰 – vol.5/no.6 [20030316]

관련 사이트
Cheeba Design의 Mantronix 소개 페이지
http://www.cheebadesign.com/leg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