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와 음악의 미래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전세계의 음악산업은 깊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황은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의 산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진행된 음악산업의 과도한 인수합병과 다양한 여가산업의 발달로 인한 음악의 상대적 지위 하락은 이것의 중요한 요인들로 지적될 만하다. 여기에 지난 10여년간 지속되어 온 스타 기근 현상과 뚜렷한 트렌드의 부재 역시 음악산업의 불황을 부채질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현재의 난관에 대한 음악산업 내부의 진단은 오직 단 하나의 요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하다. 바로 MP3다. MP3가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그들은 이를 음악산업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보고 강경하게 대응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냅스터와 오디오 갤럭시를 초토화시키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그들의 이러한 대응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파일 공유 서비스는 조금도 움츠러들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고 음반 판매고는 급락에 급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미국 음반시장의 통계는 음악산업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할만하다. 200만장 이상 판매된 멀티 플래티넘 앨범의 숫자는 전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1000만장 이상의 다이아몬드 앨범도 딕시 칙스(Dixie Chicks)의 1999년작 [Fly] 하나만을 배출했을 뿐이다. 기대를 모았던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2000년작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dog Flavored Water]는 600만장 선에 턱걸이하는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이와 맞먹는 숫자의 사람들이 이 앨범을 다운로드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다운로드 회수를 음반 판매고에 직결시킬 수는 없지만 MP3가 이 앨범의 판매부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 동안 음악산업은 파일 공유 서비스를 봉쇄하는 것 외에도 불법복제의 방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1년에 발매된 나탈리 임브룰리아(Natalie Imbruglia)의 [White Lilies Island]는 최초로 복제방지 기술이 도입된 음반이었고,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의 신작 앨범 [Scarlet’s Walk]의 프로모션 CD는 휴대용 플레이어에 밀봉된 상태로 각 언론사에 배포되었다. 아날로그 방식의 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이어폰 역시 잭에 단단히 부착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재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러한 노력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 듯하다. MP3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그 동안 뜨겁게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MP3는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MP3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상관 없이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절멸시킬 수도 없는 하나의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MP3에 관한 모든 논쟁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한 기반 위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MP3가 지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공짜라는 것에 있다. MP3 예찬자들은 이런 저런 근거를 들면서 그것을 옹호하지만 MP3의 가장 큰 매력이 여기에 있다는 점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MP3를 상품화하려는 음반업계의 시도가 번번히 실패에 그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단돈 10원이라도 부과되는 순간 MP3는 그것의 고유한 매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MP3의 반대자들은 그것의 열악한 음질을 문제 삼아 MP3를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MP3 이용자들에게 음질은 음악을 무료로 얻는 것에 비하면 충분히 희생할 수 있는 대가다. 사실 MP3와 음반 사이의 음질차는 어느 정도 훈련된 귀로만 식별이 가능한 미세한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MP3 이용자들에게 그것은 그리 큰 희생이라고 볼 수도 없다. MP3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논제 중 하나는 그것의 장단점이다. MP3 이용자들은 그것의 장점을 나열하면서 자신의 MP3 사용을 정당화하고 음반 소비자들은 그것의 단점을 거론하면서 음반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MP3와 음반 사이의 선택은 각각의 장단점에 대한 합리적 판단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습관과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큰 것 같다. 특히 세대 차이는 음반 소비자와 MP3 이용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작용한다. 20대 이하의 연령층이 MP3 이용자의 대다수를 형성한다면 30대 이상은 아직도 음반을 선호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력의 차이나 인터넷 기술의 차이 등에서 일차적으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음반에 대한 이들의 상이한 태도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애당초부터 음반을 사서 듣는 일이 습관화된 사람에게는 MP3로 듣는 음악이 영 음악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음반으로 음악을 들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음악감상을 했다는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음반을 듣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서도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이들에게 음반은 음악을 듣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삶의 일부분이며 감정적 애착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반면 MP3로 음악에 맛을 들인 사람에게 음반은 단지 선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MP3 이용자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와 양이다. 이들은 최신 음악을 얼마나 빨리 입수하고 다양한 음악을 얼마나 많이 접하느냐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관심이 가거나 화제가 되는 음악은 모두 들어 봐야 직성이 풀리고 때로는 남들이 모르는 영역을 탐사하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웬만큼 부유하지 않은 이상 이런 식의 음악 습관을 음반만으로 지탱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와 성향으로 인해 MP3 반대자들의 주장이 MP3 예찬자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열렬한 MP3 옹호자라도 가끔씩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문제는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공짜로 얻게 된다면 뮤지션들은 이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음악을 해서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된다면 앞으로 도대체 누가 음악을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현재의 상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음악은 결국 끝장나 버리지 않겠는가?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한 것은 음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음악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은 음악인들이 계속 건재를 유지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음반의 미래에 대해서는 장담하기가 어렵다. 만일 그것이 녹음된 음악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다만 우리는 그것에 더 이상 돈을 지불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MP3와 관련해서 음악산업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당장 나타나는 음반 판매량의 감소 보다 ‘음악을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다’는 관념의 확산이다. 이러한 관념의 확산은 장기적으로 음악산업의 미래에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결정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MP3 이용자의 대부분이 10대-20대의 젊은 층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우려는 단순히 우려로만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젊은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20-30년 후가 되면 음악의 무료 이용이 정당하고도 보편적인 사회 통념으로 확립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음반이 절대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현재의 음악문화에서 음반이 없는 현실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음악은 음반 없이도 수천년간 존재를 유지해 왔다. 음반이 상용화된 것은 지금부터 100년도 채 되지 않았고 대중화된지는 이제 겨우 50여년에 불과할 뿐이다. 이 점에서 음반은 음악의 존립을 위한 절대적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음반이 사라진 시대에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 중 하나는 음반이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음악문화가 공연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음악산업의 만성적 불황 속에서도 현재 공연 분야만은 변함없는 호황을 거듭하고 있다. 2003년 8월 29일로 예정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런던 공연 입장권은 150파운드(약 30만원)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단 30분만에 매진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아직도 공연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인정 받기 보다는 새로운 음반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공연 중심의 음악문화에서는 음반과 공연의 이러한 관계가 역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무료로 제공되는 음원이 공연을 홍보하는 수단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각 아티스트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음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이 기본적으로 쇼의 요소를 강하게 함축한다는 점에서 공연 중심의 음악문화는 신곡보다 대중에게 친숙한 과거 명곡들의 재활용을 위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이러한 환경에서는 창조성이 더 이상 최우선의 가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음악인들이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인 중에는 스튜디오에서의 작품활동에만 전념하는 레코딩 아티스트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음악은 대중문화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높은 수요를 지닌다. 방송, 영화, 광고 등의 음악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인들은 현재도 이런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음반 활동이 없어진 상황에서는 이들 분야가 그들의 주된 활동영역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광고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매체로 떠 오른다. 클래쉬(The Clash)의 유일한 차트 1위 곡이 리바이스 광고에 삽입된 “Should I Stay Or Should I Go”였던 것처럼 어떤 음악이 광고에 삽입됨으로써 대중적으로 히트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고는 그것이 홍보하는 상품 이상으로 뮤지션들의 음악을 홍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크게 환영할 만하다. 광고에 사용된 음원을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게 한다면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브랜드 인지도를 갑절로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월마트의 판매거부 조치로 [In Utero] 앨범의 디자인과 곡명을 수정해야 했던 너바나(Nirvana)의 사례에서 보듯 음악에 대한 기업의 개입은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을 강하게 내포한다. 그러나 음악인들의 수입원이 음반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기업의 금고로 옮겨간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가 생존의 당위성을 넘어서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MP3의 등장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것은 오직 매체로서의 음반 하나 뿐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음반에 수입을 크게 의존하는 음악산업도 어떻게든 형태를 변경하여 계속 생존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들은 최근 아티스트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 단순히 음반의 제작 판매권 뿐만 아니라 공연과 관련상품에 대한 권한에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찌 되었든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는 문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일반 대중의 음악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많은 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우선 현재의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방식은 더 이상 타당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티스트들이 더 이상 앨범을 발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상은 철저히 개별 곡 위주로 이루어질 것이고 따라서 ‘역사적 명반’과 같은 수식어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삶과 음악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질 가능성이다. 음악의 독자성이 감소함에 따라 그것은 우리 인생의 배경음악이기 이전에 다른 어떤 것의 배경음악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음악은 처음부터 충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우리의 삶을 채워넣을 여지는 점점 더 작아지게 된다. 앞으로 우리는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DJ의 멘트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곡은 나이키 광고의 주제 음악입니다. 다음 곡은 청호 정수기 음악 보내드리겠습니다’. 20030330 | 이기웅 keew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