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chell Akiyama – Temporary Music – Raster Norton, 2002 일시적인 음악, 일시적인 정체성 원래는 서양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그 품질 면에서 서양 제국들을 일찌감치 추월해 버리거나, 적어도 동등한 경지에 올라 ‘역수출’을 하게 된 품목은 단지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음악에서는 무엇보다도 전자음악이 그렇다. 독일의 탠저린 드림, 그리스의 반젤리스, 프랑스의 장 미셸 자레 등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면서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와 1980년대 이후 뉴 에이지에 전자음을 통해 ‘동양의 혼’을 심어놓은 일본 음악인들로는 홀스트(Holst)의 고전 음악 “행성 조곡 (The Planets Suite)”을 재해석한 토미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류이치 사카모토, 그리고 “비단길 조곡” 시리즈의 키타로가 대표적이다. 전자음악은 특히나 장인 전통을 중시하는 문화와 뚜렷한 친화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독일은 예나 지금이나 두말할 필요 없는 전자음악의 강국이고, 일본 또한 과히 손색없는 생산력을 보여준다. 위에 거명한 선구자들에 이어 1990년대 들어서면서 등장한 켄 이시이, 덴키 그루브, 요시노리 스나하라, 테츠 이노우에, 스스무 요코타, 노부카즈 타케무라 등은 테크노/하우스에서부터 앰비언트, 글리치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방위에 걸쳐 국제적인 두각을 나타냈다. 전자음악에 관한 한 일본은 서양 열강과 더불어 ‘종주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역수출 경향은 이미 일본에서 완성된 최종 생산물(로서 음반 및 음악인)에 그치는 것일까? 혹 일본의 전자음악 전통이 이민 2세대 이후의 음악인들에 의해 서양, 특히 북미에 재토착화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경우는 없을까?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 특집에서 소개 또는 언급된 바 있는 유지 오니키(Yuji Oniki)와 션 레논(Sean Lennon)의 음악에서 쉽사리 감지할 수 있는 J-pop의 영향력과 흡사한 어떤 연관이 전자음악계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그리 무망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미첼 아키야마(Mitchell Akiyama)라는 이름과 마주쳤을 때 대번에 든 생각은 ‘그러면 그렇지’ 였다. 아키야마는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토론토 태생이다. 아시아계에 관한 고정관념에 부합하게도 고전 및 재즈 피아노 정규 교육을 받았고, 오테커(Autechre)와 블랙 독(Black Dog)을 접하면서 전자음악에 빠져들었다고 전해진다. 비록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긴 하지만, 테크노의 발상지인 북미 전자음악의 본고장 디트로이트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토론토는 지역 레이브 씬과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공동체가 잘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좋은 동네에서 제대로 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정작 음악활동을 시작해 본거지로 삼은 곳은 대학을 다녔던 퀘벡 주의 몬트리올이다. 1999년 [Intr_Version]을 CDR로 자체 제작해서 동명의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이래, 그는 솔로 활동 외에도 주변의 동료들인 토마스 지르쿠(Tomas Jirku), 아쿠펜(Akufen) 및 국경 너머 미국의 조슈아 트레블(Joshua Treble), 수텍(Sutekh) 등과 왕성한 공동 작업을 벌이면서 유럽의 원조 글리치/랩탑 테크노에 상응하는 북미의 유파를 일으키는 데 한 몫을 담당했다. 이처럼 눈에 띄는 활동 덕분인지 그의 후속 작품들인 [Hope That Lines Don’t Cross](2001)과 이제 살펴볼 2002년 최근작은 상대적으로 북미 인디 록 유력지들의 주목을 꽤 받은 편이지만, 막상 돌아온 평은 대개 냉랭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그의 음악은 ‘심심하다’는 건데, 구체적으로는 평이한 비트, 독일 밀 플라토(Mille Plateaux) 레이블 산하 음악인들과의 지나친 유사함 등이 지적된다. 이런 평가와 비교가 얼마만큼 공정한 것인지는 음악을 듣고 곰곰이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의 정규 음반들을 시대 순으로 늘어놓고 들어보면, 일단 분명해지는 점은 명시적인 비트의 비중이 점점 감소한다는 것이다. 오테커의 영향이 다분한 데뷔작에서 들을 수 있었던 베이스와 드럼 머신의 난도질하는 듯한 비트는 두 번째 앨범에 이르면 다소 얌전하게 순화되었다가, 본작에서는 대부분 배경으로 후퇴한다. 단순 반복적인 도입부의 드럼 비트가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리듬 패턴으로 발전하는 “Big Sur”나, 무겁고 느린 베이스가 분위기를 장악하는 ”Arterial”, 실제 드럼 세트에 비유하면 크래쉬 심벌 쯤에 해당할 파열음 비트가 돋보이는 “Intravene” 같은 곡들도 있지만, 그 나머지에서 일정한 비트의 역할은 미미하다. ”Thaw” 같이 아예 정전기 소리만을 배경으로 하거나, “Alonge”처럼 다양한 타악기 샘플들을 무작위적으로 들리도록 집어넣는 수법은 아닌 게 아니라 오발(Oval)을 비롯한 밀 플라토 소속 음악인들이 이미 많이 써먹은 것이다. 즉, 전자음악의 은어를 빌어 말하자면 아키야마의 음악은 좁은 의미의 테크노로부터 멀어짐과 동시에 앰비언트에 보다 가까워진다.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얼굴 없는 음악’인 전자 음악, 그것도 식별 가능한 비트 패턴을 중시하지 않는 앰비언트 계열의 경우는 독자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늘 따르게 마련이다. 작곡, 구성이나 텍스쳐를 통해 누구의 음악인지를 알아내길 기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쪽에 전문적인 청취자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중에게 인지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새롭고 독창적인 ‘소리’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것인데, 그런 운은 언제 누구에게나 따르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의 혁신인 ‘글리치 사운드’가 앰비언트적인 스타일에서 시작해서 점차 테크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도 정체성 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밀 플라토의 컴필레이션 [Clicks & Cuts Vol. 3](2002)는 유럽 쪽의 최신 경향이 다시 비트를 부각시키면서 일반 청중들에게 좀 더 호소력을 띠는 쪽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북미에서는 한편으로 키드 606(Kid 606)이 기관단총 비트와 펑크 록의 태도를 랩탑 컴퓨터에 불어넣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디엔텔(Dntel)은 보컬과 팝 멜로디를 칙칙거리는 잡음 위에 실어 놓는다. 이렇게 본다면 아키야마의 앰비언트적인 접근은 ‘시대의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키야마의 음악은 품질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정체성/독창성의 문제 때문에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제넘은 제안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서두에 언급한 일본적 혹은 동양적 전자음악의 전통을 참고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카모토나 키타로 같은 이른바 에쓰닉 퓨젼(ethnic fusion)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다른 발상법으로부터 독특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키야마가 얼마나 ‘모국’의 문화에 친근한지, 그런 쪽에 관심이 있기나 한 지 알 길이 없는지라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자명하지만. 20030319 | 김필호 antoedipe@hanmail.net 6/10 수록곡 1. Big Sur 2. Thaw 3. Arterial 4. Rain No Water 5. Tied To The Mast 6. Alonge 7. Intravene 8. Sun No Heat 9. Empecher L’Ocean 10. Temp.est Past 관련 글 록에서 일렉트로니카로 : Intro – vol.5/no.05 [20030301] The Postal Service [Give Up] 리뷰 – vol.5/no.05 [20030301] Out Hud [S.T.R.E.E.T D.A.D] – vol.5/no.05 [20030301] Radian [Rec.Extern] – vol.5/no.05 [20030301] Midwest Product [Specifics] – vol.5/no.05 [20030301] Lali Puna [Scary World Theory] – vol.5/no.05 [20030301] Add N to (X) [Loud Like Nature] – vol.5/no.05 [20030301] Notwist [Neon Golden] – vol.5/no.1 [20030101] Enon [High Society] 리뷰 – vol.5/no.06 [20030316] Xiu Xiu [A Promise] 리뷰 – vol.5/no.06 [20030316] Icu [Chotto Matte A Moment!] 리뷰 – vol.5/no.06 [20030316] Meg Lee Chin [Piece And Love] 리뷰 – vol.5/no.06 [20030316] Mitchell Akiyama [Temporary Music] 리뷰 – vol.5/no.06 [20030316] Cornelius [Point] 리뷰 – vol.5/no.06 [20030316] 관련 사이트 미첼 아키야마 인터뷰 http://www.montrealmirror.com/ARCHIVES/2002/082902/music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