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의 ‘슈퍼 그룹’, 세 종의 전형을 연주하다 1970년대 그룹 사운드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앞면 표지에 적힌 ‘비둘기 그룹’이나 ‘Jimmy & 1/2 Dozen’이라는 글자가 어떤 그룹을 말하는지는 묘연하다. 이천행(기타, 보컬), 김지성(베이스, 보컬), 주홍식(키보드, 보컬), 윤봉환(드럼, 봉고), 손정택(트럼펫, 보컬), 도융(앨토 색서폰, 플루트), 한진동(트럼본)이라는 그룹의 라인업이 적혀 있다. 이들이 ‘비둘기 그룹’이다. 그렇지만 각 트랙별로 노래를 부른 사람의 이름이 별도로 적혀 있고 비둘기 그룹이 ‘반주’를 했다는 크레딧도 나와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 라이너 노트를 인용해 보자. 그룹의 트럼펫 주자이자 음반의 기획자인 김태웅(예명: 지미)의 말을 들어 보자. “10여 년 연예계 일각에서 무명가수를 키워 보기도 했고 인기 가수의 무대를 이끌어 보기도 했습니다만 실제 Record를 기획하기는 처음입니다. 듣기 쉽고 부르기 쉬운 곡이라야 좋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알고 있었으나 막상 외국의 Pop Song만을 취급하다가 국내 가요를 대하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랬듯이 그 동안 우의를 지켜온 연예계 동료들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 비둘기 가족은 새로운 영역(가요)에 감히 도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G.S. 계열에서 널리 기억되는 이천행군과 Recording 경험이 있는 김지성군, 그리고 보기 드문 하이톤의 미성을 지닌 손정택군이 함께 고생을 했읍니다. 무대에서의 저를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열과 정성을 다한 이 한 장의 Record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 기획: Jimmy(김태웅) 지미(김태웅)는 음악 감상실 시절부터 다운타운가에서 DJ와 MC를 맡으면서 팝 음악의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일종의 ‘프로젝트 음반’이다. ‘비둘기 그룹(혹은 비둘기 가족)’은 1980년대 후반의 ‘신촌 블루스’처럼 느슨한 조직체에 가깝다. 멤버들 역시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인정받는 인물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신촌 블루스와 유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손정택은 비스(The Bees) 출신이고, 이천행과 김지성은 딕 훼밀리(Dick Family) 출신이다. 특히 이천행은 1960년대 초중반부터 다크 아이스(Dark Eyes)를 이끌었던 한국 록의 1세대에 속하는 기타리스트다. 하지만 1970년대는 1980년대와 다르니까 비유는 비유로 그치자. 먼저 지적할 것은 앞의 지미의 언급에서 보듯 언더그라운드의 슈퍼 그룹인 이들이 ‘가요’를 연주한 음반을 제작하는데는 그리 오랜 경력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곡의 경우 그룹의 멤버인 손정택이 두 곡(“사연”, “기다리는 마음”)을 만들었지만 그 외의 곡들은 조상길, 이동근, 연석원, 엄진, 홍명의, 추긍수 등 그룹 외부의 인물들이 맡고 있다. 편곡의 경우도 추긍수, 신병하, 이종식 등 그룹 외부의 인물들이 맡고 있다. 연석원이 데블스 출신, 신병하가 사계절 출신, 이종식이 김희갑 악단 출신이라는 점에서 당시 그룹 사운드계의 하나의 인맥을 확인할 수는 있음과 동시에 ‘연주인은 연주, 작곡가는 작곡, 편곡가는 편곡’이라는 주류 대중음악계의 관습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안정적 편곡에 기초한 능숙한 합주다. 당시의 관점에서는 편곡이 깔끔하고 주류 가요의 관현악 편곡이 없어서 수록곡의 스타일은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그룹 전체가 노래와 연주에 참여한 “하얀 비둘기”와 “그리운 시절”같은 곡으로, 당시 통크(tonk)라고 불리던 셔플 리듬에 기초한 흥겹고 씩씩한 스타일로 음반으로 감상하기도 적절하고 댄스 플로어에서 연주되어도 적절할 양수겸장의 곡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는 대조적인 슬로우 록(slow rock) 스타일의 곡으로 “그리움”, “흰구름 먹구름”, “뭐라고 말할까요” 등이다. 특히 “흰구름 먹구름”은 딕 훼밀리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가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들어봤던 곡’일 것이다. 3연음에 기초한 느린 템포의 이 곡들 역시 앞의 곡과 마찬가지로 양수겸장의 곡들이다. 단, 댄스플로어에서는 춤추는 시간이 아닌 ‘블루스 타임’에 어울릴 곡들이다. 마지막 스타일은 8비트의 고고 리듬을 기초로 한 곡들이고, 그 가운데 “당신 곁에”와 “찾아온 당신”은 ‘트로트 고고’의 범주에 속할 만한 곡이다. 그리 오랫동안 손발을 맞추지 않아도 능숙한 합주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각 멤버들이 연주인으로서 기량이 출중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특히 “하얀 비둘기”와 “그리운 시절”에서 연주는 당시 ‘똘똘 뭉쳐서 연주하는 것’의 일인자인 데블스를 방불하는 수준이다. “사연”을 비롯한 몇몇 곡에서는 봉고가 추가되어 리듬감을 더욱 조밀하게 만든다. 이렇게 어떤 스타일이든 원만하게 소화해내는 연주인의 능력은 폄하할 것이 못 된다. 문제는 이런 연주력에 걸맞는 ‘작곡’은 아직 미진하다는 점이다. 이 음반에서도 두 곡을 제외한다면 ‘솔로 가수와 백 밴드’에 어울리는 곡이고 진정으로 그룹 사운드에 어울릴 곡은 두 곡에 머물고 있다. 또한 앞서 논했듯 이 두 곡도 그룹의 자작곡은 아니다. 그렇다면 ‘트로트 고고의 시대’에 대한 혐오는 단지 ‘록 그룹이 트로트를 했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을 스스로 창조하지 못했다’는 차원의 이야기다. 당시를 살았던 음악인들은 ‘그때는 그런 걸 감히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여기에는 적지 않은 진실이 담겨 있다. 그걸 보면 당시 젊은 음악 팬들의 정서는 ‘가요’를 무조건 경멸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류 가요가 아닌 가요’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건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사전검열의 위세에 눌려 ‘알아서 기는’ 상황이었다면.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의 유난히 ‘건전한’ 가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건전’ 같은 대한민국의 도덕을 거부하면서 살아온 인물들이 이렇게 건전한 척 하면서 살아가던 삶도 활동정지를 당한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힘들었을 것 같다. 20030324 | 신현준 homey@orgio.net 0/10 P.S. 1. 비둘기 그룹의 역사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래 신문 기사를 참고하라. 기자의 논지에는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비둘기 그룹의 전신인 ‘지미 김 그룹’이 탄생할 때부터 ‘프로젝트 그룹’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나이트 쇼계엔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는 작은 편성의 다목적 악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비절감과 쇼의 밀도를 높이자는 요청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추세. 살롱가의 이름난 재간꾼인 MC 지미(본명 김태웅)를 리더로 하는 5인조 ‘지미 김 그룹’의 경우 각 골 그룹의 리더급 멤버만 차출, 급조한 편성이 연예가에 적잖게 얘깃거리를 뿌리고 있다. 트리퍼스의 드러머 최태원(26), 비스의 김현배(28. 기타), 비스의 베이스 겸 리더 손정택(27), 허몽(27)이 바로 이들. ‘그룹으로 인기를 얻겠다는 게 아니라 노래와 코미디, 수준있는 연주로 훌륭한 들러리를 서겠다’고 웃겼는데 현재 명동 ‘오라오라’ 등에 출연 중”([일간스포츠], 1975. 3. 30.) 2. 이 음반에는 몇 개의 버전이 있다. 하나는 표지 뒷면에 손정택과 김지성의 사진이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지성과 이천행의 사진이 나온 것이다. 음반의 일련번호와 제작일자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초판, 후자가 재판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라인업은 초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재판의 경우 그룹의 라인업이 윤승칠(기타, 보컬), 손정택(베이스, 보컬), 윤준환(키보드, 보컬), 배광석(드럼, 봉고), 김태웅(트럼펫, 보컬), 조상길(앨토 색서폰, 플루트)로 바뀌어 있고 A면의 4번 트랙이 “바다”라는 곡으로 바뀌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트랙을 제외한 다른 트랙들의 레코딩 버전은 동일하다. 이유는 음반을 녹음한 직후 멤버들이 대거 탈퇴한 사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수록곡 Side A 1. 하얀 비둘기 – 비둘기 그룹 2. 그리움 – 김지성 3. 그리운 시절 – 비둘기 그룹 4. 난 꿈이 있다고 – 김지성 5. 사연 – 손정택 Side B 1. 행복 찾는 비둘기 – 손정택 2. 흰구름 먹구름 – 김지성 3. 찾아온 당신 – 손정택 4. 뭐라고 말할까요 – 이천행 5. 기다리는 마음 – 손정택 관련 글 ‘트로트 고고’와 건전한 그룹 사운드의 시대: 1976~1978 – vol.5/no.4 [20030216] 30년을 ‘돌풍’으로 살아가는 그룹 사운드 템페스트의 장계현과의 인터뷰 – vol.5/no.4 [20030216] 한국 대중음악의 ‘이론가’, 그 40년 동안의 실천들: 신병하와의 인터뷰 – vol.5/no.4 [20030216] 사계절 [사계절] 리뷰 – vol.5/no.4 [20030216] 장계현 [골든 앨범 ’77] 리뷰 – vol.5/no.4 [20030216] 윤수일과 솜사탕 [윤수일과 솜사탕] 리뷰 – vol.5/no.4 [20030216] 딕 훼밀리 [작별/또 만나요] 리뷰 – vol.5/no.4 [20030216] 최헌 [세월/오동잎] 리뷰 – vol.4/no.24 [20021216] 최병걸 외 [난 정말 몰랐었네/그 사람] 리뷰 – vol.5/no.6 [20030316] 최병걸 [Vol. 3(눈물 같은 비/떠나갈 사람)] 리뷰 – vol.5/no.6 [20030316] 조경수 [아니야/행복 찾는 비둘기] 리뷰 – vol.5/no.6 [20030316] 데블스 [너만 알고있어/사랑의 무지개] 리뷰 – vol.5/no.6 [20030316] 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윈드버드 http://www.windbird.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