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7080404-0506devils77데블스 – 너만 알고있어/사랑의 무지개 – 지구(JLS 1201258), 1977

 

 

‘올드 스쿨’ 소울/훵크 그룹 사운드의 멋진 백조의 노래

‘소울 그룹 사운드’ 데블스가 남긴 네 장의 음반 가운데 네 번째 음반이다. 그 가운데 세 번째 음반은 히 화이브의 오래된 레코딩과의 합본이기 때문에 ‘독집 앨범’으로는 세 번째 음반이다. 물론 이 음반의 경우도 두 트랙은 데블스가 아닌 다른 그룹의 레코딩을 ‘끼워 넣은’ 것이라서 온전한 의미의 독집 앨범은 아니다. 즉, 데블스라는 이름으로 남긴 레코딩으로는 이 음반이 마지막이다. 물론 그 뒤에도 이런 저런 레코딩이 있었고 ‘무대’에서는 데블스라는 이름으로 연주하는 그룹이 존재했지만 ‘독집 앨범’에 가까운 형태의 음반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이처럼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비장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데블스의 음악은 여전히 흥겹다. 음반의 앞면과 뒷면의 첫 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너만 알고 있어”와 “사랑의 무지개”는 ‘데블스 사운드’의 전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성숙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너만 알고 있어”의 경우 와와 이펙트를 건 기타가 그루브 넘치는 인트로를 당기면 트럼펫과 테너 색서폰의 대선율이 화답한다. 트럼펫과 테너 색서폰의 앙상블은 까칠까칠한 질감을 형성하면서 질펀한 분위기에 긴장감을 선사한다. 후렴 부분에 들어서면 드럼 패턴이 달라지면서 그루브를 고조시키는 점도 또하나의 감상 포인트다. “사랑의 무지개”도 유사한 구성을 가진 곡이지만 당김음이 강한 멜로디의 보컬 코러스를 통해 또다른 감흥을 던진다. 뭐랄까 악기나 목소리가 나설 때 나서고 물러설 때 물러서면서 탄탄한 구성을 선사해주는 곡이다. 물론 스텝이 저절로 밟히는 곡이다. 이 곡들을 작곡하고 기타를 연주한 김명길이 몇 년 뒤 이은하의 “밤차”(1978)나 “아리송해”(1979)의 편곡을 맡은 사람이라는 정보를 전달하면 ‘아하’라는 감탄사가 나올만한 곡들이다.

물론 이는 데블스의 소울 사운드의 공식같은 것이다. 녹음 여건의 미비함 탓인지 사운드가 다소 불만족스러웠던 이전 앨범(이른바 ‘철창 앨범’)에 비해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스테레오 효과를 살리면서 이들이 라이브 무대에서 보여준 입체적 사운드를 ‘아쉬운 대로’ 들려주고 있다. 이들이 멀티트랙 레코딩을 제대로 이용한 음반을 남기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쉽다.

나머지 곡들도 즐길 만하다. 느린 템포 위에 록 스타일의 기타 라인과 열창이 등장하는 “내 마음 아는가”와 슬로우 록 리듬의 발라드 “너를 생각하며”는 적당한 취기에 들으면 딱 좋을 곡이다. 뒷면으로 넘어가면 헤비한 리프에 이어 유행가풍의 가창(조용필풍의 가창?)이 등장하는 “이제는 나도”, 그리고 장조의 두왑풍의 코러스와 단조의 주 선율이 대조를 이루는 “그 마음 알겠어요”도 나름의 맛을 내뿜는다.

그렇지만 이 음반에서 가장 놀라운 트랙들은 앞면과 뒷면의 네 번째 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신고산 타령”과 “뱃노래”다. 다름 아니라 민요를 그룹 사운드 식으로 편곡한 것이다. “신고산 타령”에서는 트럼펫이 푹푹 찔러주고 와와 기타는 깔짝거리고 베이스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긴박한 무드를 만들어내다가 간주 이후에는 색서폰 솔로를 통해 재즈의 무드마저 자아낸다. 편곡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아마도 한 사람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편곡이 아니라 각 멤버가 스스로 알아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편곡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뱃노래”에서는 키보드의 불길한 음에 느릿느릿 부르는 노래가 나오다가 셔플 리듬과 함께 한바탕 굿판을 벌이는 무드로 발전한다. 두 곡에서 아쉬운 점은 2분을 조금 넘는 연주시간에 그쳤다는 점 뿐이다. 이런 실험이 더 이상 개화시킬 기회가 더 이상 없었다는 더 큰 아쉬움을 예외로 한다면.

과찬이라고? 그걸 평가하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찬사나 비난은 늘 상대적이고 상황적인 것이다. ‘대중의 정서’와의 조우가 오직 트로트와의 접목밖에 없다는 강박에 시달릴 무렵 데블스는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감과 동시에 소울과 민요와의 조우라는 대안도 슬며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솔로 가수와 그의 백 밴드’라는 그룹 사운드의 변화에 편승하지 않고 멤버 전원이 똘똘 뭉쳐 응집력있는 사운드를 냈다는 점을 추가한다면 이런 과찬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올드 스쿨’이라는 표현이 ‘구닥다리’가 아니라 ‘고전’이나’ 전범’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20030324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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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너만 알고 있어
2. 내 마음 아는가
3. 너를 생각하며
4. 신고산 타령
5. 소녀의 마음 – 트리오 로만티카
Side B
1. 사랑의 무지개
2. 이제는 나도
3. 그 마음 알겠어요
4. 뱃노래
5. 그 말을 해야지 – 트리오 로만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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