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6033112-0506review_ddaro2따로또같이 – 그대 미움처럼/별조차 잠든 하늘에 – 대성음반(DAS 0116), 1984

 

 

커텐을 젖힌 기억 속의 1980년대

따로또같이의 두 번째 음반은 이 팀의 역사에서 과도기적 위치를 점한다. 이 말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경계에서 포크와 록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음반’이라는 평을 얻는 1집에서 “그리운 얼굴”의 인상깊은 노래를 남긴 전인권이 탈퇴한 상태로 제작한 음반이자, 훗날 감성적인 작곡과 목소리로 이름을 얻은 강인원이 참여한 마지막 음반이라는 의미다(이 음반 이후 따로 또 같이는 나동민과 이주원의 듀오로 활동하게 된다). 더하여 최성원과 허성욱의 참여가 1집에 이어 들국화와의 다소 느슨한 연관성을 엮어냄과 동시에 (역시 느슨하다 해도) 들국화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는 결과론적인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하나 더 있다. 나는 지금 ‘밴드’나 ‘그룹’이라고도, ‘듀오’나 ‘트리오’라고도 하지 않고 ‘팀’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 팀이 (1970년대의 기준으로 볼 경우) 직업적 세션맨을 대동한 포크와도, 자급자족형의 밴드도 아니었다는 소리다. 여기까지를 ‘객관적’ 평가라 한다면, 이 음반이 당시로서는 무척 신선한 포크 사운드를 담았던 음반이라는 평가와, 당시 통기타 지망생들의 교과서와도 같았던 음반이라는 평가는 ‘당대적’ 평가다.

즉, 이 음반은 ‘1980년대 대학생 취향의 가요’라고 규정되는 몇 가지 특징을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다시 말해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와 ‘블루지’한 일렉트릭 기타 라인, 건조하게 툭툭 떨어지면서도 강한 울림을 갖는 뭉툭한 드럼, 반짝거리는 신서사이저, 거의 아무런 기교없이 움직이는 선율과 ‘신실한’ 느낌의 보컬, 절정부의 혼성 화음과 같은 사운드의 특징들 말이다. 이후 동아기획, 그리고 더 이후 하나기획의 음악에서 좀 더 ‘진보’된 형태로 개화하게 될, 포크와 록의 절충적인 형태를 제시했다는 점 또한 이 음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록’의 요소들이 다소 ‘돌출적으로’ 들리고 ‘포크’와 발라드 스타일이 음반의 색깔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설사 이영재가 연주하는 “그대 미움처럼” 후반부의 일렉트릭 기타와 “별조차 잠든 하늘에”에서 길게 울리는 ‘블루지’한 솔로가 인상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완성된 종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곧 등장할 들국화를 위해 아껴두는 것이 나을 듯하다. 물론 사후적 평가일 뿐이다. 팀의 형태가 말 그대로 ‘따로또같이’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나긋나긋한 발라드 스타일이 주조를 이루는 것은 음반 제작시 나동민과 이주원보다는 강인원이 부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추측일 뿐이다).

음반은 전체적으로 강인원, 나동민, 이주원의 색깔이 구분되는 가운데(각각의 곡은 자신들이 직접 노래했다) 각각의 개성에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와 투명한 편곡이라는 이중의 고삐를 물린다. 전반부를 담당한 강인원은 어쿠스틱 기타의 명료한 진행이 돋보이는 “그대 미움처럼”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숙한 소녀의 심금을 울리면서도 그것을 우울하지 않게 포장하는 능력을 선보인다. 반면 “하우가”와 “별조차 잠든 하늘엔”,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를 담당한 이주원의 정서는 상대적으로 어둡다. 반음계 진행으로 시종하는 “하우가”는 당시 대학생들에게 유행하던 ‘운동권 가요’와는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피안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며, “별조차 잠든 하늘에” 또한 당시 ‘대학생 특유의’ 낭만성에 기초한 어두운 서정을 상승하는 듯한 코드 진행과 점층적인 구성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반면 “조용히 들어요”로 대표되는 나동민의 스타일은 들뜨지도, 격하지도 않은 정중동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 음반은 그 자체로서 평가받기보다는 ‘1985년의 돌파’를 예비하고 예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당사자들에게 이는 불운한 일이다. 그렇지만 따로또같이라는 이름이 어차피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만남, 만남을 전제로 하는 헤어짐을 의미하는 이름이라면 이들은 자신의 소임을 충분히 다한 셈이다. 이 음반에서 무언가 부족한 것을 보았다면 그게 뒤에 해소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무언가 부족한 채 화석처럼 남아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20030319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P.S. 에필로그
자신의 기억에 과도한 감정을 불어넣을 이유는 없다. 이를테면 곧 시작될 만화영화를 기다리면서 마루와 안방 사이를 굴러다니던 어린 시절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때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철지난 포크 음악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은 실은 무감(無感)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다른 곳에서는 “그대 미움처럼”의 기타 코드를 잡으면서 ‘고수’와 ‘하수’를 나누던 고등학생·대학생들이 있었으며, 그들에게 따로또같이의 두 번째 음반은 그들이 손에 쥐었던 모래 중 특히나 선명하게 반짝였을 것이다.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간 뒤, 그들은 손을 털고 어른이 되거나, 기타를 부수고 거리로 나갔다.

그래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남기고자 한다. 이 음반은 나 같은 나이대의 사람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실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그것은 무감한 어느 날의 기억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돌이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인 것과도, 좀 더 정확히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도 같은 것이다.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음반 자체가 ‘당대적’이기 때문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비장미를 되새겨 볼 때, “커텐을 젖히면”을 비롯한 몇몇 곡의 통속성은 당대의 감수성에 순응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건 아마도 이 감수성이 계속 재생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응은 또한 불안에 대한 반응이기도 한 바, 오늘날의 귀로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이 음반의 곡들에는 어떤 창백한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 불안의 근원이 ‘암흑기’였던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한국 음악계의 직접적인 상황인지, 혹은 그 이상의 두려움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는 논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음반의 당대성에 관한 나름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놓는 것으로 끝내야 할 듯하다. 즉, 이 음반 자체의 당대적 성격을 논할 수 있을 만큼 이 음반이 나왔던 당대에 관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럼으로써 음반의 당대적 성격은 당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족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분명 음반의 탓만은 아니나, 우리의 책임이라고 하기에 소비자로서의 우리가 진 무관심이라는 죄는 너무 가볍다. 이 아이러니는 들국화의 ‘돌파’로 해결되었던 것일까?

수록곡
Side A
1. 그대 미움처럼
2. 첫사랑
3. 커텐을 젖히면
4. 이대로가 좋아요
5. 하우가
Side B
1. 별조차 잠든 하늘엔
2. 조용히 들어요
3. 잠 못 이루는 이밤을
4. 너와 내가 함께
5. 언젠가 그날
6. 손모아 마음모아(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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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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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팬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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