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6034517-0506review_oursong1배리어스 아티스트 – 우리 노래 전시회 I – 동아기획/서라벌(SRB 0142), 1984

 

 

빨주노초파남보 우린 모두 무지개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이름을 얼핏 들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들국화의 팬이거나 혹은 1980년대 동아기획 출신 음악인들에 친숙했을 공산이 높다. 그리고 음반의 수록곡들을 살펴보면 좀더 많은 이들의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에 삽입되어 익숙해진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은 차치하더라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비둘기에게” 같은 곡들은 들국화나 시인과촌장 같은 이들을 잘 모르더라도 한번쯤 라디오에서 들어보았을 법한 곡들이다.

향후 들국화를 결성하게 되는 최성원이 프로듀싱한 [우리 노래 전시회 1](1984)은 ‘옴니버스’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유사한 감성을 가진 곡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일정 정도 공유한 음악적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데, 그러한 근거를 위에 언급한 동아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음반을 동아기획의 산물로 보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지만(최초의 기획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가 라는 부분 등등), 향후 1991년까지 네 번에 걸쳐 발매된 [우리 노래 전시회] 시리즈에 참여한 음악인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판 내부에서 흔히 ‘언더그라운드 가수들’로 지칭된 일련의 흐름과 쉽게 등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을 묶을 수 있는 특징들 중 하나가 유려한 팝적 감각이다. 이는 미8군 무대 출신 음악인들 혹은 산울림과 송골매를 위시한 캠퍼스 밴드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 중심축으로서 음반의 프로듀서이자 대다수의 곡을 쓴 최성원이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인데, 그는 음악감독의 측면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관계에서도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했음이 자명해 보인다. 이는 따로또같이의 2집 앨범(1984)에 세션으로 참여한 사실이나, 당시에 한차례 결성되었다가 잠정적으로 해체되었던 들국화의 전인권이 이 음반에 참여하고 있는 사실, 혹은 (이후의 일이지만) 들국화 1집에 어떤날의 이병우가 작곡한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수록되었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세션에 있어서도 어떤날의 이병우, 조동익을 위시하여 따로또같이의 2집 세션맨으로 참여한 조원익이 베이스를, 양병집이 기획한 밴드 동서남북의 김광민이 키보드를 맡고 있는데, 이들이 향후 했던 작업들을 떠올린다면 이 음반과 관련된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음반의 수록곡 중 이후에 들국화가 불러서 유명해진 “매일 그대와”는 1980년에 최성원이 이영재, 이승희 등과 함께 낸 앨범에 이미 담겨 있던 곡이다. 나른한 어쿠스틱 기타와 신서사이저가 이끌어 나가는 편곡은 최성원이 처음 녹음한 버전보다는 들국화 1집의 그것과 유사한 반면 아직은 완결되지 않은 편곡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전인권이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 또한 결정적인 편곡은 들국화의 1집 앨범 쪽으로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게 사실이다(물론 들국화의 곡을 먼저 들은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 또한 “매일 그대와”에서 보컬을 맡은 강인원의 목소리 역시 그 자체로 썩 나쁘지는 않지만, 같은 여성적인 톤을 지닌 최성원의 보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소 밋밋하게 들려오는 것도 곡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제발” 같은 경우는 이 앨범에서 보컬을 맡은 최성원의 목소리와 들국화의 2집에 실린 전인권의 보컬로 녹음된 버전을 대비시키는 재미를 준다. 피아노 반주에 곁들여진 최성원의 감미로운 보컬은 전인권의 울부짖는 듯한 압도적 창법과 기타 연주와는 사뭇 다른 감성을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독특한 존재가치를 갖게 된다. 이를 들국화 1집에서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가진 강렬한 록 음악의 필링이 이 음반의 버전에서 그다지 잘 살지 못한 것과 연결 지을 수 있을까(물론 제작환경의 열악함에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이외에도 이광조가 부른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후 들국화 2집에도 수록)이나, 박주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귀를 휘감아오는 “그댄 왠지 달라요” 같은 곡들에서 최성원의 유려한 팝적 감각은 빛을 발한다.

최성원의 곡들 이외에도 양병집의 “이 세상 사람이”, 어떤날의 “너무 아쉬워하지마” 등을 쓴 조동익과 “비둘기에게”의 하덕규(시인과 촌장)의 존재 또한 돋보인다. 1986년에 발표된 어떤날의 데뷔앨범에 재수록되는 “너무 아쉬워하지마”는 ‘어떤날’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최초의 곡이며 “비둘기에게” 또한 “가시나무”의 종교적 색채가 짙어지기 이전의 시인과촌장의 스타일(“고양이”, “진달래”와 같은 곡들을 예로 들면 적당할까….)을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곡들은 단순한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이미 각각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색채를 충분히 구현한 것들이며, 그들 역시 들국화와 함께 198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계를 더욱 풍성하게 한 이름들이라는 점에서 이 음반은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올 뮤직 가이드(AMG)의 ‘Tones’란처럼 이 음반에 ‘깔끔함’, ‘세련됨’, ‘나른함’ 같은 형용사들을 붙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러한 유사한 톤의 음악들이 나올 수 있는 배경으로서 최성원 이외에 양병집의 존재를 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물론 그의 음악 자체보다는, 그가 기획한 동서남북의 음반 같은 경우에서 드러나는 ‘뽕’을 제거한 세련된 팝 음악이라는 특징이 여기에서 본격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혹은 블루스를 비롯한 ‘진득한’ 감성과는 거리가 먼 세련된 고급스러움이 은근슬쩍 드러나는 아트 록적 성향(“이 세상 사람이”)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일까. 20030309 | 김성균 niuuy@unitel.co.kr

8/10

* 사족 : “그댄 왠지 달라요”를 부른 박주연은 이후에도 세 장의 솔로앨범을 발표한 바 있으며, 작곡가 하광훈과 함께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윤상의 “이별의 그늘” 등을 만든 작사가로 더 잘 알려진 바 있다.

수록곡
Side A
1.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 이광조
2. 그것만이 내 세상 – 전인권
3. 비둘기에게 – 시인과촌장
4. 너무 아쉬워하지마 – 어떤날
Side B
1. 매일 그대와 – 강인원
2. 제발 – 최성원
3. 그댄 왠지 달라요 – 박주연
4. 이 세상 사람이 – 양병집
5. 손모아 마음모아(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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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http://cafe.daum.net/march
들국화 팬 사이트
http://my.dreamwiz.com/aproman
http://www.hangj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