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을 ‘즈려밟는’ 음악팬들이라면 누구나 공연에 대한 원대한 꿈을 품는다. 평생을 꿈꿔왔던 밴드 혹은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게 그것이다. 현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핫한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 또한 외국 유람에 있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역사적 사명에 가까운 욕심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밴드의 ‘전설적인’ 공연을 내가 목격하는 것. 음악사에 있어 아주 중요하게 기억될 어떤 순간의 그 자리에 내가 존재하는 것. 그 욕심을 채워보겠다며 심각한 표정으로 공연 리스트를 살핀다. 이왕 밟은 외국 땅, 빚을 내서라도 꼭 봐야 하는 공연이 있지 않겠는가. 설령 없다 해도,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술자리 화제로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 공연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리라! 외국에 나갔다가 내한을 절대 안 할 것 같은 유명 밴드의 공연을 (‘운명’처럼 시간이 맞은 관계로) 봤다는 무용담 하나쯤은 품어줘야 이 세계의 고수인 것이다. 미국하고도 뉴욕에 도착했을 무렵, 매의 눈으로 매주 공연 리스트를 살피던 나도 이런 헛된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산 오리지널 티셔츠를 목이 늘어날 때까지 입어주리라. ‘오리지널’에 대한 허세를 채우기 위해 주식 종목을 꼼꼼히 살피는 개미투자자의 자세로 매일매일 공연 정보를 뒤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공연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가 50개는 기본으로 찍힐 배팅이 필요했다. 언젠가 그 밴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내가 그때 공연을 봤는데’라며 무심한 척 자랑질을 할 만한 공연이어야 했다. 옷 사 입고 술 먹는 돈 아껴서 공연을 보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다. 공연욕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했다. 돈이 생기면 밥이 우선이었다. 나의 욕망은 이다지도 지조가 없었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뉴욕 부쉬윅 공연 ⓒ NPR Music 몇 개의 투자성 공연은 있었다. 대외적으로 자랑질을 할 만한 롤링스톤즈 50주년의 화려한 공연도 봤고, 양키즈 구장에서 에미넴과 제이지가 인맥 자랑하는 힙합 한마당도 즐겼으며, 작은 교회당에서 경험한 얀 티에르상의 공연을 보곤 감동에 쩔었다. (에헴!) 이렇듯 내용도 훌륭하면서 으스댈 수 있는, 마트의 ‘원 플러스 원’ 상품 같은 공연을 찾아다니지만 돈은 늘 부족하고 (이전 칼럼에서도 강조했듯) 예매 경쟁은 힘겹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이런 허세스런 팬들의 열망을 알게 된 음반사들이 ‘전설이 될 법한’ 공연을 기획하고 희대의 쇼인 양 몰아가며 마케팅을 하는 추세다. 몇십 달러에 자신의 허세까지 만족시키고자 하는 음악팬들은 호구나 다름없다. 음반사와 매체들이 ‘올해 최고의 앨범’인 듯 분위기를 띄우면, 판단력이 약해진 우리는 부나방처럼 달려들어 예매전선에 나선다. 그 예 중 하나가 작년 아케이드 파이어의 [Reflektor] 발매 기념 깜짝 공연이었다. [The Suburbs]로 그래미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Who is the arcade fire?(whoisarcadefire.tumblr.com)’라는 텀블러 사이트가 생길 정도로 미국 일반 대중들에겐 ‘듣보잡’ 밴드에 가까웠으나, 메이저 음반사가 본격적인 프로모션에 나서자 상황은 역전됐다. ‘공연을 끝내주게 잘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거대 록밴드’ 정도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이들은, 음악을 좀 듣는다면 꼭 알고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뉴욕의 신화인 LCD 사운드시스템의 제임스 머피가 [Reflektor]의 프로듀싱을 맡았으니, 이미 뉴욕에선 게임 끝. 밴드는 앨범이 공개되기도 전에 홍보의 일환으로 소호의 작은 라이브 술집에서 게릴라 무료 공연을 하며 뉴욕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 공연이 또 공중파 TV에서 방영되는 바람에 ‘전설의 공연을 반드시 목격해야만 하는’ 팬들의 역사적 사명감은 더더욱 불타올랐다. 그 열망 때문인지 아니면 쿨한 홍보의 일환인지, 며칠 뒤 아케이드 파이어는 조만간 브루클린에서 또 깜짝 공연을 갖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발표를 했고, 다음 날 그 장소는 윌리엄스버그보다 훨씬 힙한 동네인 부쉬윅으로 정해졌다. 브루클린에서 깜짝쇼라니, 어머, 이건 사야 해!!! ‘Who The Fuck Is Arcade Fire?’ 티셔츠 ⓒ whoisarcadefire.tumblr.com 다음 날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창을 두 개 띄워놓고 마우스 클릭을 수없이 반복하며 예매전을 치른 끝에 나는 한 장의 티켓을 건졌다. 전문 공연장도 아닌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임을 감안하면 비싼 가격이었으나, 역사적 순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투자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장 혹은 코스튬으로 제한하는 드레스 코드도 뭔가 있어 보였다. 한없이 부족한 옷장을 뒤지며 그나마 ‘정장’에 가깝게 차려입고 부쉬윅으로 향했다. 힙하다지만 아직은 개발이 덜 되어 거대한 창고 건물들만 몰려 있는 을씨년스러운 거리에 난데없이 칵테일 드레스와 할로윈 코스튬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브레이킹 배드>의 작업복 코스튬 행렬을 보며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한 날이기도 했다. 제임스 머피의 소개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케이드 파이어의 공연이 시작됐으나,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 치여 제대로 공연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맥주를 사는 줄까지 이리저리 뒤엉켜 혼란을 가중시켰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열심히 신곡을 연주했지만 빈약한 사운드로는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감흥을 느낀다 한들 팔 한 번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내부는 찜통이었다. 하이힐을 신고 서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양복을 입고 온 남자들은 참다못해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렀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건만 춤을 출 수 없다니, 누가 이런 바보 같은 드레스 코드 아이디어를 내놓은 거지? (그렇잖아도 노엘 갤러거를 비롯해 여러 음악팬들이 아케이드 파이어 [Reflektor] 앨범 발매 공연의 엄한 드레스 코드를 열심히 씹어대고 있었다.) 역사적 순간이든 뭐든 상관없이 빨리 이 공연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윈 버틀러가 관중들 사이를 아주 약간 헤집고 다닌 걸 제외하곤 별다른 이벤트도 없었다. “록밴드라면 이런 라이브 공연을 해야 하는 거야!”라는 식의 자화자찬 멘트를 위해 관중을 들러리로 부른 듯했다. 한국에선 볼 수도 없는 아케이드 파이어 공연이 그럴 리가 없다고, 내가 배가 불렀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싶겠지만, 천하의 아케이드 파이어도 급조된 이상한 공연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도한 기대는 과도한 실망을 낳았다. 그날 공연보다는 나중에 앨범을 통해 들은 음악이 100배는 훌륭했다. 이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역사적 사명 따위는 벗어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뮤지션도 취향도 천차만별인 이 시대에 다수가 우러러볼 만한 전설의 공연이 존재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게 공연을 보는 듯한 뉴욕 관중들과 함께라면, 음, 여기선 절대로 전설적인 공연을 경험할 수 없을 거란 섣부른 생각도 든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던 지난 12월, 아케이드 파이어가 2014년 8월 뉴욕 투어 예매 소식을 알려왔다. 당장 내일 술자리도 예측할 수 없는데 8월이 웬 말이냐고 어이없어하는 것도 잠깐, 이미 내 손은 예매 창을 오픈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전설의 공연이 되지 않을까 하며. 다시 한 번, 나의 욕망은 이다지도 지조가 없다. | 홍수경 janis.hong@gmail.com note. 10년 동안 잡지 기자로 살던 홍수경의 마지막 직장은 [무비위크]였다. 90년대 초중반, 헤비메탈의 성은(聖恩)을 듬뿍 받은 인천과 모던록의 돌풍이 불던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청춘을 다 보낸 열혈 음악 키드였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어쩌다 보니 뉴욕에 살고 있다. 외고는 언제나 환영! 개인 블로그(69)는 여기! http://sixty-nin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