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hiti 80 | Wallpaper For The Soul (2002)

Tahiti 80 – Wallpaper For The Soul – Atmospheriques Records/Ales(수입), 2002

아저씨, 소녀를 만나다

어느 겨울날, 서른 즈음 아저씨는 스물 남짓 소녀를 만났다. 그리고 소녀는 아저씨에게 ‘러브러브’한 기분이 드는 음악이라며 타히티 80(Tahiti 80)을 건네주었다. 며칠 후 아저씨는 소녀에게 음악이 살랑거린다고 했단다. 살랑거리며 ‘러브러브’한 음악. 둘은 서로의 표현에 ‘푸훗’ 웃었다.

이른 봄날, 어느덧 서로의 기억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소녀는 타히티 80을 들으면 마음이 살랑거리고 아저씨는 ‘러브러브’해진다. 아마도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은 서로를 동경했었나보다. 비록 그것이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었을지라도, 진정으로 서로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자아의 똬리를 틀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이 음악을 통하여 그들의 추억을 짐작할 수 있다.

속삭이듯 나지막하게 스멀거리는 첫 곡 “Wallpaper For The Soul”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다. 마치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를 예언하듯,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불안감으로. 한편에는 소녀의 우울함이 메트로놈처럼 루프되어 틱톡거리고 그 아래로 아저씨의 그리움이 현악의 물결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첫 만남은 언제나 싱그러워라. 봄눈 녹이듯 불어오는 “1,000 Times”의 상쾌한 바람은 “하나가 되기 위해 천 번은 더 노력하겠다고(To bring us back together as one I will try another 1,000 times)” 다짐하도록 만드나니. 한없이 사랑스러운 소녀는 “The Other Side”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면에 드러내고 아저씨는 이를 보듬는다. 이는 세대간의 연결일까, 상충인가, 조화런가. 잠시 일렉트로니카와 현악기의 융합이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소녀의 분위기에 맞추려하는 아저씨의 노력이 절절하다. 그 마음이 보이는가, 소녀.

그러니 손을 내밀어 “괜찮아 질 거라고(It’s gonna be alright)”한들 다가오는 결말은 “Happy End”를 가장한 헤어짐이다. 여기에는 고즈넉함과 아련함으로, 이미 소녀의 자리는 비워져있고 “한번의 손짓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길 바라는(Hoping everything will go away with a wave of the hand)” 아저씨의 소심함만 홀로 서있다. 자신은 변했다고 믿었지만 예전과 다름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은 서로를 힘들게 할 뿐이라, 짐짓 소녀를 위하는 마음이라 하여도 결국 본인을 더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 이로서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한 아저씨는 소녀를 ‘한번’ 만나는데 족하는 것인가. 하여 나머지는 감정의 잉여물들. 고스란히 과거가 현재처럼 재현되어 천 번 노력하던 마음은 “Soul Deep”으로, 소녀의 환영(幻影)은 “The Train”과 “Don’t Look Below”에서 다시 등장하고 한번의 손짓은 “Open Book”에서 반추된다. 그렇지만, 아저씨. 그럴수록 당신의 관계는 밋밋하게, 길게 늘어질 뿐이라는 걸 모르나.

그러므로 [Wallpaper For The Soul]에는 불안한 동반이 숨겨져 있다.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서, 믿음이 아닌 착각이 순간을 영원처럼 최면시키려 한다. 소녀의 그림자만 남겨진 빈집을 두드리는 아저씨는 이를 위약(僞藥)으로 구메구메 삼키니, 거짓임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던지고 싶을 때, 사랑이 우리를 갈라놓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지금도 어디선가 소녀가 없는 빈집에서 ‘영혼을 위한 벽지’를 바르리라. 20030309 | 신주희 tydtyd@freechal.com

6/10

관련 사이트
타히티 80 공식 사이트
http://www.tahiti8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