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15121051-leebyungwoo이병우 – 흡수 – musikdorf, 2003

 

 

노블레스한 자신감

그것은 눈물이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기쁨일수도 있겠고 회상에 의한 아련함일지도 모를 일이다. 답답한 것은 도통 무엇을 표현하는지 짐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이는 모든 것을 지녔었지만 천천히 모든 것이 그이를 버렸기’때문일까. 마치 보르헤스가 사랑했다던 엘비라 데 알베아르처럼.

어찌되었건 근 8년만의 정규앨범이거니와 기타만으로 연주된 ‘순수’ 기타솔로음반인 이병우의 [흡수]는 전작들과는 비교되길 거부하는 듯하다. 그것은 외형적으로 60여분의 분량에 오직 창작곡만으로 채워져 있고 내적으로는 사자후를 토하듯 거침없는 속주 기타리스트의 면모가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날렵한 손놀림은 한 손으로 멜로디와 반주를 연주하지만 두 대의 기타가 협연하는 듯 하며 클래식 기타에서 듣게되는 초퍼(chopper)는 ‘소리’로서 받아들여지는 청각의 즐거움이 앞선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이를테면 첫 곡 “달려Ⅰ”은 숨고르기도 하기 전에 달리는 격이랄까. 마음 가다듬고 시작버튼을 누르는 순간, 부산하게 이리저리 뛰노는 음들의 향연을 마주하는 당황스러움이란.

물론 전작들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데, 단지 그 차이란 “어머니”와 “달려”의 구조에 기인한다. 귀를 기울이면 그제서야 멜로디도 있고 반주도 있으며 호흡도 있듯 감성과 지성과 이성이 숨어있는 “어머니”나 “마지막 인사”에 비하여 “달려” 연작은 어지러울 만큼 각각의 요소가 앞으로 튀어나와 현란한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예전의 소리들이 그림자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면 이번 음반은 의기충천에 분기탱천하여 갈고 닦은 내공을 과시하는 듯하다. 아마도 계룡산에서 30년 수도한 도사가 하산하면 이런 모습일까. 이는 과유불급과도 같이, 막강한 기교가 오히려 마음으로서 다가서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때론 음들이 파편적으로 떠다니거나 여운을 남기지 못하기도 하니, 여백의 부족함이란 그만큼 감상자의 쉴 틈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리라.

이러한 낯선 분위기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전작 [혼자 갖는 차시간을 위하여]와 같은 궤도를 운행하지만 이와 달리 풍요로운 느낌이란 소문난 잔치에 초대되어 홀로 소외당한 기분과도 같다. 연회자가 슬며시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각기 다른 손님들에게 분주히 돌아다니며 재빨리 다양한 화제를 먼저 꺼내는 듯이, 중구난방스럽기도 한 대접이 마음과 엇갈리면서 소용돌이친다. 모두를 ‘흡수’하려는 욕심이 불러온 것일지도. 따라서 크게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중심을 잡으면서 지성적으로 상태의 격함을 조절하여 건조하게 진행된다면, 담백하거나 혹은 고급기타교본의 표본이라 하겠다. 허나 그럴수록 “인연”이나 “방”같은 연주는 초대받지 않은 보헤미안의 소곡으로 전락하는 격이다.

그리하여 상류층 여인 엘비라 데 알베아르가 몰락한 후에도 보르헤스는 매년 12월 31일마다 그이를 찾았던 것처럼, 그이에게 바라는 것은 귀족의 우아함도, 풍요로운 성찬이나 재산도 아닌 그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설혹 이런 표현이 못마땅하더라도 보르헤스가 지닌 콤플렉스까지 가겠는가. 20030309 | 이주신 youhadbeenredsometime@hotmail.com

4/10

수록곡
1. 달려Ⅰ
2. 어머니
3. 달려Ⅱ
4. 꿈과 스케이트
5. 달려Ⅲ
6. 인연
7. 춤추는 물개
8. 방
9. 전사의 춤
10. 새벽 세시
11. 마지막 인사
12. 흡수

관련 사이트
이병우 [혼자 갖는 茶 시간을 위하여] 리뷰 – vol.3/no.8 [20010416]
이병우 [야간 비행] 리뷰 – vol.3/no.8 [200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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