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and Cake – One Bedroom – Thrill Jockey/Pastel(수입), 2003 지성주의 침실 경음악? 1980년대 이후 록 음악은 혁신과 퇴행이 교차되면서 끊임없이 잡종과 복제품을 만들어 내는 복잡한 진화과정을 겪고 있다. 비치 보이스(Beach Boys)가 노이즈를 뒤집어쓰고 나타나기도 하며, 서던 블루스(southern blues)가 하드코어 펑크를 만나 고초를 당하기도 한다. 과거와 미래가 통시적으로 교잡하는 록 음악의 역동적인 오염의 과정 속에서 쓰릴 쟈키(Thrill Jockey) 레이블에 속한 시카고(Chicago) 포스트록(post-rock) 밴드들은 관습화된 록 음악의 작법과 기성의 스타일을 백지상태로 놓은 채 탐구적인 사운드 꼴라쥬(collage) 작업에 집중해 왔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역사와 장르론을 다루고 있는 [입 닥치고 춤이나 춰]에서는 시카고 포스트록의 일반적 특징으로 악기사용의 탈관습화, 노래 형식의 거부, 장르간 크로스오버, 스튜디오 작업 중심의 실험주의 등 4가지를 꼽았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이 뿌리 없이 형성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운드 패턴과 멜로디 라인을 여럿으로 쪼개어 중층으로 배치하고 여기에 전자음향이나 타악기, 스트링 연주를 효과음처럼 삽입하는 계산적이고 기술적인 사운드 메이킹은 가스트르 델 솔(Gastr del Sol), 슬린트(Slint)와 같은 루이즈빌(Louisville) 매쓰 록(Math Rock)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실제로 토오터스(Tortoise)의 창립 멤버였던 번디 케이 브라운(Bundy K. Brown)과 드러머 존 맥킨타이어(John McEntire)는 가스트르 델 솔 출신이며, 데이비드 파조(David Pajo)는 슬린트에서 기타를 쳤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앰비언트와 1980년대 토크 토크(Talk Talk)와 같은 뉴 웨이브 밴드도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와 합주실에 국한된 미시적 조망을 좀 더 확장해보면, 시카고 씬의 융성은 뉴욕 씬에 못지 않게 풍부한 음악적 토양, 즉 수많은 전문 뮤지션들과 팬층이 형성하고 있는 폭 넓은 네트워크와 전통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실제로 시카고 포스트-록 씬의 뮤지션들은 여러 밴드를 오고가며 보완적이 관계를 맺고 있는데, 토오터스만 해도 멤버 각자가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고 신진 밴드들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마치 씬 전체의 허브 집단처럼 보여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팔리지 않을 음악을 꾸준히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예산 제작을 가능케 하는 상부상조의 네트워크와 팬들의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역시 토오터스의 드러머이자 음향실험가 존 맥킨타이어가 참여하고 있는 시 앤 케이크(The Sea and Cake)는 재즈 크로스오버에 집착하고 있지만 비교적 대중성을 간직한 밴드로 평가되어 왔다. 이들의 음악은 장엄한 스케일의 대곡도 아니고 기기묘묘한 전자음이나 극단화된 기타 노이즈가 간섭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포스트록이니 실험주의니 하는 용어들과 무관해 보일 뿐만 아니라 차라리 라운지(lounge) 풍의 나긋나긋한 소프트 록에 가깝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을 집중해 들어보면 이들의 화성과 연주기법이 꽤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즈 화성에 기초해 섬세하게 계산된 변칙음조와 역시 모호하기만 한 샘 프레캅(Sam Prekop)의 보컬 음정은 그리 녹녹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들의 동명 타이틀 데뷔작은 본격적인 퓨전 재즈(fusion jazz)라 불러도 무방한 앨범이었으며, 전작인 [Oui](2000)는 시 앤 케이크 사운드의 집대성이자 크로스오버 포스트록을 정의한 앨범이라는 찬사와 이전 작품들과의 차별성이 전혀 없는 고집불통의 지루한 팝 음악이라는 악평이 공존했던 앨범이었다. 한편, 신작 [One Bedroom]은 이전 작품들보다 평이하면서도 스타일상의 변화가 감지되는 앨범이다. 첫 곡인 “Four Corners”나 “Interiors”의 후반부는 크라우트록(Krautrock)의 질주감이 살짝 묻어나고 있지만, 그처럼 기계적이고 공격적이지는 않다. 또 “Shoulder Length”의 훵키한 리듬파트와 포크 발라드 같은 “Try Nothing”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전작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스타일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개별곡들의 차별성과 경계가 모호하여 지루한 느낌을 떨치기는 어렵다. 다만, 마지막 곡인 “Sound & Vision”에 이르면 살짝 미소를 머금는 것이 가능할 듯 하다. “Sound & Vision”은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Low](1977)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으로서 다소 느끼한 보컬 음색과 상큼한 기타 연주의 조합이 매력적이었던 원곡에 비해 기타음을 최소화하고 신디사이저 연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들어도 휘파람을 저절로 불게 만드는 선율감은 그대로 살아 있으며, 앞의 곡들의 지루함을 견디던 청자는 비로소 다소의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토오터스와 시 앤 케이크가 데뷔 앨범을 발표한 1994년은 1990년대 초의 시대적 코드이자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았던 그런지 록이 쇠락한 해이다. 우연히 성립된 대립항이며, 비교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의 담론에 가깝지만, 머리로 음악을 하는 것 같은 이들의 탐구적인 지향은 복고풍의 단순한 펑크록을 답습했던 그런지 록에 대한 반대급부로 비쳐졌다. 얼터너티브의 적자였던 그런지 록이 내장으로부터 파열되는 본능적인 음악이었다면, 시카고 포스트-록은 뇌 속을 파고드는 이성적인 음악인 것이다. 그런데, 양자의 공존과 교차가 록 음악의 비연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의 태도는 공히 기성 록 음악에 대한 혁신의 시도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토오터스의 창시자중 하나인 더글라스 맥콤스(Douglas McCombs)는 한 인터뷰에서 “토오터스는 펑크 록 밴드이다. 이는 쓰리 코드(three chords)를 쓰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펑크 록의 DIY 정신과 비타협적인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일 조금은 타협적으로 보이는 시 앤 케이크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면 “우리는 포스트록도 펑크 록도 아닌 침실에서 들을만한 재즈풍 경음악이나 열심히 만들 것이다”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내가 언제까지 이들의 음악을 가까이 할지는 장담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20020311 | 장육 EVOL62@hanmail.net 6/10 사족 : 본작을 포함해 이들의 정규 앨범 6장은 모두 1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계산적으로 보인다. 수록곡 1. Four Corners 2. Left Side Clouded 3. Hotel Tell 4. Le Baron 5. Shoulder Length 6. One Bedroom 7. Interiors 8. Mr. F 9. Try Nothing 10. Sound & Vision 관련 글 Tortoise [Standards] 리뷰 – [weiv] vol.3/no.6 [20010316] 관련 사이트 The Sea and Cake의 공식 사이트 http://www.theseaandcake.com Thrill Jockey 레이블의 밴드 페이지 http://www.thrilljockey.com/bandpage.html?artistnum=31&PopeIISess=017883b1ba6cccb9a1d73ec3a1ec82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