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sive Attack v. Mad Professor – No Protection – Gyroscope, 1995 Brace yourself, here comes the sonic mutant! 우리말의 한자어 용례에 따르면 ‘무방비'(無防備)가 가장 가까울 번역일 듯한 앨범 제목이지만, 사실 표지에는 ‘무방위'(無防衛)로 표기되어 있다. 읽기에는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그 어감을 통해 의미는 선명해지는데, 전투, 군사행동 등과 결부된 무방비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외계로부터 침략해온 각종 괴물들에 대항해 손에서 광선과 불을 뿜으며 결투를 벌이는 매시브 어택 3인조와, 그 배경에 파괴된 도시의 빌딩들 너머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분노한 거인 매드 프로페서의 모습을 담은 표지 만화는 제목에 관한 다른 어떤 식의 오해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Protection”에서 트레이시 쏜이 부른 가사를 ‘사랑하는 연인에게 닥쳐오는 세파의 충격을 몸으로 막아내겠다’는 낭만적인 ‘보호’의 의미로 해석했다면, 여기서는 아예 그런 기대를 접는 편이 나을 거라는 말이다. 최근들어 부쩍 영국 ‘토종’ 힙합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눈에 띄긴 하지만, 아직껏 힙합은 영국에서 미제 수입 문화의 딱지를 완전히 떼어 낸 것 같지 않다. 반면 자메이카 이민 공동체라는 튼튼한 기반을 갖고 있는 레게 문화는 일찍이 영국 땅에 토착화가 이루어져서, 어떤 면에서는 본토 자메이카를 능가하는 수준에 올랐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매시브 어택에 국한시켜 보더라도 힙합을 비롯한 미국 흑인 음악에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자메이칸 사운드의 영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음악을 차라리 트립-덥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지만, ‘덥’ 앞에 굳이 ‘트립’이란 말을 갖다 붙이는 게 다소 우습기도 해서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어쨌든 덥의 일급 연금술사에게 자신들의 2집을 통째로 갖다 맡긴 결과로 나온 이 음반은 매시브 어택이 자메이카 음악 전통에 바치는 최상의 경례일 것이다. 그리하여 믹싱 콘솔 앞에 자리잡은 매드 프로페서는 엔지니어 특유의 치밀함으로 매시브 어택의 음악을 한 트랙 한 트랙씩 해체구성(deconstruction)한다. 그렇게 해서 변형되는 것은 음악만이 아니라 곡 제목들도 마찬가지인데, 친절하게 괄호 안에 원곡의 이름을 밝혀주지 않았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곡의 리믹스인가를 파악하는 데도 꽤 노력과 집중이 필요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타이틀 트랙 “Protection”은, 우연하게도 2003년 한반도의 상황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나라를 지배하는 방사선”(“Radiation Ruling The Nation”)이라는 오싹한 제목으로 탈바꿈한다. 도입부의 부드럽고 경쾌한 건반 터치가 잔뜩 걸린 딜레이로 말미암아 이지러지면서, 매드 프로페서의 도발은 극도로 증폭된 베이스의 울림으로 시작된다. 이내 분명해지는 건 베이스 서브우퍼(subwoofer) 없이 덥을 들으려면 볼륨을 낮춰 음악의 효과를 반감시키던가, 아니면 스피커에 손상이 오는 걸 감수해야 하리란 것이다. 덥이란 게 원래 야외에서 춤추러 온 군중들을 위해 초대형 PA 스피커로 틀어댄 음악이란 걸 상기한다면, 왜 이렇게 베이스와 드럼의 사운드가 압도적이어야 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렇듯 리듬에 철저하게 강조점이 주어진 반면, 원곡에서 매끄럽게 선율을 이끌었던 트레이시 쏜의 목소리는 음절, 더 나아가 음소 단위로 나눠져 징한 에코를 타고 바스러지듯 산포된다. 베이스와 드럼이 이끄는 브레이크비트의 반복 위에 신디사이저 시퀀스의 미세한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3분여 쯤 지난 어디선가 붕붕거리는 베이스는 차갑게 팅팅대는 트라이앵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가, 종내는 드럼을 비롯해 타악기들조차 다 빠져버린 채 전자음향만이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Karmacoma”의 덥 버전인 두 번째 트랙 “Bumper Ball Dub”은 레게에 전형적인 당김음 걸린 백비트를 기본으로 하지만, 매드 프로페서의 잘 계산된 에코/리버브 효과는 메트로놈으로도 측정하기 힘든 이상야릇한 엇박자 리듬을 끌어낸다. 즉 원래의 비트 위에 미세한 시차를 두고 동일한 비트를 약간 빗나가게 겹침으로써, 말하자면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는 듯한 리듬 패턴을 만들어낸 것이다. 원곡의 주술적 음향은 좌우를 번갈아 가며 이리 저리 던져넣어지는 리듬 파편들과 난데없이 치고 빠지는 전기 기타의 스트로크로 보강되고, 속된 말로 ‘XXX 널 뛰듯’ 오르락내리락하는 볼륨은 믹싱 콘솔 위에 빼곡이 들어찬 스위치와 놉을 휘젓고 다니는 ‘미친 과학자’로서 매드 프로페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위의 두 트랙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앨범을 통틀어 ‘제대로 된 노래’다운 구조를 갖춘 곡은 하나도 없다. “Trinity Dub (Three)”이나 “Moving Dub (Better Things)”에서는 보컬 트랙이 그래도 덜 해체되어 노래 비슷하게 들리는 대목이 있지만, 그것도 두 마디 이상을 넘어가는 법이 거의 없다. 따라서 각 곡에 응집력을 부여하는 것은 선율이 아니라 리듬이다. “Cool Monsoon (Weather Storm)”에서는 크레이그 암스트롱(Craig Armstrong)의 피아노가 잠시나마 제정신을 유지한 채 멜로디 라인 비슷한 걸 간헐적으로 이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왼쪽 오른쪽에서 분열적으로 들려오는 정신산란한 타악기 음은 그조차도 곧 혼돈 속으로 묻어버리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리듬 악기지만 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베이스의 위치는 독보적인 것이 되는데, 한 예로 제임스 브라운의 “Never Can Say Goodbye”에서 샘플을 따온 “Moving Dub (Better Things)”의 인상적인 베이스 라인은 별다른 가공을 거치지 않은 채 스산함을 실어 나른다. 이처럼 음울하고 위협적인(menacing) 베이스 라인은 레게-덥을 규정하는 또 다른 특징인데, 후반부의 곡들인 “I Spy (Spying Glass)”나 “Backward Sucking (Heat Miser)”의 음험한 분위기는 상당부분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율과 화성 중심의 대중음악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덥은 마치 괴물처럼 다가올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친근한 요소들은 모두 해체되어 리듬의 부속품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음고(音高), 음색, 강약 등등 모두 리듬을 분화하고 차별화하는 데 이용된다. 이런 측면에 별 관심이 없다면 덥은 그야말로 정신나간 스튜디오 엔지니어의 소일거리 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것도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닌 것이, 실제로 덥은 댄스홀용 음악에서 ‘실험실’용 하드코어 음악으로 차츰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 말-21세기 초 등장한 수많은 전자음악의 혁신적 하위장르들은 대개 덥으로부터 크고 작은 빚을 지고 있다. 정글에서 드럼 앤 베이스, 나아가 ‘드릴 앤 베이스’로 이어지는 흐름도 그렇고, 날로 막강해지는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다소 과장을 덧붙이면) 나노세컨드 단위로 비트를 분할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글리치/랩탑 테크노 또한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시브 어택의 다른 앨범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 음반도 즐기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이끌어낸 [Blue Lines]와 [Mezzanine]의 참신함과 혁신적인 면모에 비해 [Protection]이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다고 느낀다면, 이 ‘무방비’ 상황에 몸을 한번 던져 봄직도 하다. 매시브 어택에 막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2001년에 나온 [Protection/No Protection]의 합본이 그들의 사운드와 더불어 덥의 음악적 가치를 향유하는 데 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요컨대 ‘방어하는 법’을 알고 난 다음 무방비 전선에 뛰어들라는 이야기다. 20030223 | 김필호 antoedipe@hanmail.net 9/10 수록곡 1. Radiation Ruling The Nation (Protection) 2. Bumper Ball Dub (Karmacoma) 3. Trinity Dub (Three) 4. Cool Monsoon (Weather Storm) 5. Eternal Feedback (Sly) 6. Moving Dub (Better Things) 7. I Spy (Spying Glass) 8. Backward Sucking (Heat Miser) 관련글 Massive Attack [Blue Lines] 리뷰 – vol.5/no.5 [20030301] Massive Attack [Protection] 리뷰 – vol.5/no.5 [20030301] Massive Attack [No Protection] 리뷰 – vol.5/no.5 [20030301] Massive Attack [Mezzanine] 리뷰 – vol.5/no.5 [20030301] Massive Attack [100th Window] 리뷰 – vol.5/no.5 [20030301] 트립합 뮤지션 다이제스트 – vol.3/no.13 [20010701] 주마간산으로 트립합 훓어보기 – vol.3/no.13 [20010701] 관련 사이트 밴드 공식 사이트 http://www.massiveattack.co.uk 100th Window 홍보 사이트 http://www.100thwindow.com 밴드 팬 사이트 http://www.massiveatta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