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06014635-ProtectionMassive Attack – Protection – EMI/Virgin, 1994

 

 

트립합에서 트립팝으로: 두 갈래 길이 난 어두운 정원

(비록 당시에는 많이 못팔았지만) 매시브 어택의 [Blue Lines]는 순식간에 마스터피스가 되었다(아니면, 마스터피스이기 때문에 많이 못팔았는지도). 그들은 서두르지 않은 채 천천히 작업을 진행했고, 첫 음반이 나온 지 3년 만에 두 번째 음반 [Protection]을 발매했다. 갖가지 소리와 비트를 조합/배치하는 솜씨는 정교해졌고 사운드의 질감도 부드러워졌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작에 비해 침울해지고 나른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팝적인 멜로디가 전면에 부상했다. 변화는 무엇보다 게스트 보컬에서 드러나는데, 전작에서 소울 디바인 샤라 넬슨(Shara Nelson)을 기용했던 그들은 이 음반에서 백인 포크-일렉트로니카 듀오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의 트레이시 쏜(Tracey Thorn)을 초청했다. 물론 또다른 흑인 디바 니콜렛(Nicolette)의 목소리 또한 황홀했으나, 음반을 열어젖히는 필살 트랙 “Protection”은 그녀의 ‘소울’로도 역부족이었다.

“Protection”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은 비트도, 멜로디도, 보컬도 아닌 볼륨, 즉 소리의 크기이다. 건조한 다운비트, 깨작거리는 와와 기타, 유연하게 물결치는 이펙트, 영롱한 피아노, 쏜의 허무한 목소리, 기본적인 재료는 이것이다. 7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보컬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볼륨의 조정에 따라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라벨(Maurice Ravel)의 “Bolero”가 미묘하게 변하는 관악기들의 음색 차이를 이용하여 곡을 끌고 나간 바로 그 수법이 볼륨의 높낮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 곡에 다시 응용된다. 청자는 각 부분에 주어진 볼륨의 크기 변화를 음미하며 곡을 따라가고, 어느새 빗소리와 함께 곡은 끝난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이며, 아울러 매혹적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감상(感傷)이 청자를 잠식한다.

그 뒤를 잇는 “Karmacoma”는 트리키(Tricky)와 3D가 육중한 레게 비트에 맞춰 불길한 음조의 랩을 주고받는 가운데 묘한 느낌의 키보드 소리가 중동풍의 음률을 타고 구멍난 깃발처럼 휘날린다. 곡 자체의 소리는 ‘이국적’이란 말이 가장 적절해 보이나, 무심한 듯 날카롭게, 피리 소리를 따라 항아리에서 올라온 코브라라도 되는 양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트리키의 랩은 이 곡에 이국적 느낌과는 다른 냉혹한 분위기를 둘러친다. 초반부의 이 두 곡만으로도 음반은 그들의 명성이 헛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역으로, 첫 두 곡의 압도적인 표현력 때문에 나머지 곡들의 빛이 가려지는 감 또한 없잖아 있다.

나머지 곡들은 매시브 어택의 음악이 초기에 선보였던 랩/소울/힙합/레게라는 ‘흑인’ 음악에서 팝 성향의 ‘백인’ 음악으로 서서히 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세 번째 음반 [Mezzanine]에서 록을 전면에 수용함으로써 뚜렷해지게 된다. 어쩌면 머쉬룸의 탈퇴도 이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다가오다 물러서는 ‘three!’라는 외침이 니콜렛의 풍성한 목소리와 섞여드는 “Three”, 뉴에이지 풍의 피아노가 또박또박 울리는 “Weather Storm”과 “Heat Miser”,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주단처럼 매끄럽게 상승하는 현의 음색이 인상적인 “Sly” 등은 모두 백인 팝과 흑인음악 사이에서 움직이는 매시브 어택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곡들이다.

[Protection]은, 각 음반의 완성도가 출중했던 매시브 어택의 다른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난한 축에 속하며, 또한 일관된 면을 유지했던 그들의 다른 작업물과 비교해도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사이키델릭에 대한 브리스톨의 화답’이라고 누군가 말한 “Light My Fire”의 리메이크 라이브 버전은, 매시브 어택의 음악이 그 자체로 순수한 (심지어는 그들이 차용한 힙합까지도) ‘브리스톨산’임을 거듭 선언하는 것이나, 선언의 제목은 굵되 각론이 취약하다는 (즉, 다른 곡이 그 선언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사후적이고 심심한 (더하여, 처음 음반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배반하듯 냉정한) 평가와는 다른 면에서 [Protection]이 이후의 트립합 추종자들에게 남긴 가장 큰 의미 중 하나는, 같은 해에 나온 포티스헤드의 [Dummy]와 더불어 트립합(Trip-hop)이 트립팝(Trip-pop)으로 변형(되어 잘 팔리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시해 준 데 있을 것이다. 우울하면서도 허우적대지 않는, 고품질의 팝 음악. 그러나 동시에 프로그래밍한 다운비트와 흐느적거리는 여성 보컬, 그럴듯한 샘플을 입힌 때깔 좋은 신서사이저 효과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라는 꿈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준 것 또한 이 음반의 영향일지 모른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은 그들이 [Protection]에서 배우지 못했거나, 혹은 알면서도 무시한 사실일 것이다. 어두운 길을 걷기란 어려운 법이다. 2003022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Protection
2. Karmacoma
3. Three
4. Weather Storm
5. Spying Glass
6. Better Things
7. Eurochild
8. Sly
9. Heat Miser
10. Light My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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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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