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03125347-datsunsDatsuns – The Datsuns – V2/Rock, 2002

 

 

내가 ‘아저씨’임을 느끼게 해주는 음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 스트록스(The Strokes), 하이브스(The Hives), 바인스(The Vines, 그런데 이 밴드가 ‘네오 거라지 록커’로 분류되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등은 한데 뭉뚱그려 ‘거라지 록 리바이벌(Garage Rock Revival)’의 간판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네오 거라지 록이라는 ‘전체 집합’ 안엔 대략 세 개의 ‘부분 집합’이 존재하고 있다. 이 밴드들의 음악적 뿌리가 각각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에 따른 구분이다. 첫번째 부류는 미 남부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여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밴드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선봉장으로 하는 디트로이트 지역 밴드들 대부분과 임모탈 리 카운티 킬러스(The Immortal Lee County Killers)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번째는 뉴욕 중심 펑크 록의 정신적/형식적 계승자들. 스트록스와 하이브스가 대표적이며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가 그 맥을 따른다. 세번째는 1970년대 풍미한 정통 하드 록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밴드들. 헬라콥터스(The Hellacopters), 플레밍 사이드번즈(The Flaming Sideburns), 본 본디스(The Von Bondies), 로즈 오브 앨터먼트(The Lords Of Altamont) 등이 대표적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4인조 밴드 댓선스(The Datsuns)는 세번째 부류, 즉 ‘하드 록 파’에 속하는 밴드다. 물론 밴드 이름 만으로는 뉴욕 펑크의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싶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레이먼즈(Ramones)처럼, 멤버들의 라스트 네임을 ‘댓선’으로 통일시켰다), 이들의 연주는 1970년대의 정통 하드 록 그 자체다. 사실 하드 록이라는 음악 양식은 별다른 ‘분석’이 필요 없는 분야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하이 톤의 보컬”, “활화산 같은 기타 플레이”, “전기 톱 돌아가는 듯한 베이스”, “천둥번개처럼 무자비하게 내려꽂는 드럼” 등 몇가지 공식 같은 직유법 중심의 상투구로 웬만큼 설명될 수 있다. 댓선스의 첫번째 음반 [The Datsuns]에 담긴 트랙들 또한 그러하다. 악곡이나 연주 자체에 대한 침착한 분석보다는, ‘비교와 대조’라는 상호 텍스트성의 마음가짐만 부풀어오르게 된다. 즉 이들의 음악은 ‘참신함’과는 거리가 퍽 멀다. 특히 돌프 디 댓선(Dolf de Datsun)의 히스테릭하게 떨리는 하이 톤 보컬은 본 본디스의 제이슨 스톨스테이머(Jason Stollsteimer)와 정말 똑같다. 그런데 댓선스가 본 본디스보다 한참 앞서 결성되었음을 볼 때, 이들의 ‘판박이 보컬’은 그냥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보컬 스타일이 동일한 장르에서 나타난 건 아무래도 묘하다.

음반 전체는 댓선스가 깊게 영향받은 선배 밴드들의 소중한 유산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영향력은 리프에서, 연주에서, 박자에서 속속들이 드러난다. 첫 곡 “Sittin’ Pretty”는 유라이어 힙(Uriah Heep)이나 씬 리지(Thin Lizzy) 스타일의 드라이빙감 넘치는 연주가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 “MF From Hell” 또한 밀어붙이는 리프의 반복 연주로 시작해, 복잡한 연주나 편곡 상의 기교 없이 단순명쾌하게 하드 록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Lady”는 앞서 두 곡과는 다소 구분되게, (비록 육중한 리프지만) 펑키(여기서는 ‘funky’와 ‘punky’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한 리듬과 다함께 따라부르기 쉬운 또렷한 후렴구가 두드러진다. “Harmonic Generator”는 티 렉스(T. Rex)의 “Get It On (Bang A Gong)”이 프리(Free)의 “All Right Now”를 만난 듯한 노래다. “What Would I Know” 또한 지지 탑(ZZ Top)의 “Tush”와 씬 리지의 “The Boys Are Back In Town”이 얼른 떠오른다. “At Your Touch”의 섬세한 해먼드 올갠 연주는 ‘록 키보드의 전성기’였던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음반이 전개될수록 농도 짙어지는 ‘데자 뷔(déjà vu)’ 현상에 당혹감이 가중되기 시작한다면, 이렇다 할 ‘상호 텍스트성’이 없는 “Fink For The Man”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을 만 하다. 그런데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기청감(旣聽感) 만은 끈질기게 머리를 맴돈다. “이거야말로 클리셰의 절묘한 총집합이 아닌가!”하는 결론이 드는 것도 바로 이때다. 음반의 대표곡으로 떠오른 “In Love” 또한 기청감의 도가니다. ‘히트곡’답게, 작정하고 집어넣은 뚜렷한 상업적 포인트(기억하기 쉽고 인상적인 멜로디의 반복 및 점층적 고조)도 상당히 두드러진다. “You Build Me Up (To Bring Me Down)”은 음반 전체로서는 특이하게도 스투지스(The Stooges)의 영향이 섞인 듯 하나, 스투지스처럼 ‘막 나간다’기보다는 세련되게 다듬어진(즉 치밀하게 계산된) 분위기가 다분한 트랙이다. 마지막 곡 “Freeze Sucker”는 화려하면서도 격렬한 인트로로 시작하여 본 스코트(Bon Scott) 시절 AC/DC 스타일의, 육중하나 날렵한 부기 록으로 전개되는 노래다.

비틀스(The Beatles)와 너바나(Nirvana)를 솜씨좋게 엮어낸 바인스의 대성공을 정점으로, ‘클리셰’는 요즘 록 음악 창작론의 대세가 된 듯 하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가 큼지막하게 써먹은 이후, 주류 록계의 유행어 비슷하게 된 “Rock Is Back!”이라는 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back’이라는 단어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 아닌가. 이 문장이 강하게 암시하듯,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고, ‘어떻게 버무려내는가’가 록 음악 생활의 절대 요건이 된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음악을 ‘발명’해내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영미 록 음악 최전성기를 지금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요즘 나온 록 음반을 들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드는 기청감(“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의 파노라마는 영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곤혹감에는 내가 록 음악의 전성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접했던 ‘아저씨 세대’라는 기본 전제가 담겨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머리 흔들기 좋아하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걸친 요즘 록 음악의 주요 수혜자들은, 댓선스 같은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대단한 록이 있다니!”라는 놀라움에 온몸이 부르르 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재즈나 클래식처럼, 이젠 록도 ‘창의성’보다는 ‘해석력(내지는 조합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된 단계로 들어선 것일까? 이대로 가면 베테랑 록 뮤지션이 월간 [객석]의 표지를 장식할 날도 머지않은 듯 싶다. 그런데 이런 ‘아저씨다운’ 회의감에 빠지게 하는 뮤지션들이 거의 예외 없이 ‘오세아니아’ 지역 출신이라는 건 정말 기묘하다. 영화 쪽은 전혀 그렇지 않던데? 20030225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5/10

수록곡
1. Sittin’ Pretty
2. MF From Hell
3. Lady
4. Harmonic Generator
5. What Would I Know
6. At Your Touch
7. Fink For The Man
8. In Love
9. You Build Me Up (To Bring Me Down)
10.Freeze Su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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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Datsuns 공식 사이트
www.thedatsu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