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an – rec.extern – Thrill Jockey, 2002 ‘길들여진’ 디스토피아 1998년 개봉했던 영화 [Crash]는 기계문명에 감정이 종속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육체와 금속의 결합을 통해 우리가 인간 대 기계로 대치시켜왔던 양분 구도를 허물고 공업문명이 점차 인간을 지배하면서 인간이 물신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점차 성관계에서 대체되는 것은 육체 대신 금속이며, 이 ‘금속’과 몸의 충돌이 발산하는 섹슈얼리티는 새로운 이디엄으로 변화하기 위한 죽음의 힘으로 치환된다. 충돌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의미화한다면, 그 형식은 포스트 록이라는 갈래로 등장할 것이다. 이를테면 포스트 록은 과거의 록의 유산들(육체)을 끌어 모아, 그것을 파열시켜 전자 음악적 접근(금속)에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에 미래상을 소환하기 위한 투쟁이며, 전투에 앞장설 전사로서 오스트리아 출신 록 밴드인 라디안(Radian)은 뛰어난 포스트 록커들이다. 라디안은 1996년에 비엔나에서 베이시스트 존 노먼(John Norman), 드러머 마틴 브랜들메이어(Martin Brandlmayr), 신시사이저 연주자 스테판 네미쓰(Stefan Nemeth)가 모여 결성되었고, 1998년에는 셀프타이틀 EP를 발표하며, 그 출범을 알렸다. 2000년에는 첫 정규 음반인 [TG 11]을 발매하였는데, 이 음반부터 그들의 형식은 ‘양식(樣式)’에 가까워진다. 이 음반에서 본격화되는 이들의 형태는 억제된 리듬을 기반으로 소음으로 뭉뚱그릴 수 밖에 없는 기괴한 소리들과, 드론 앤 베이스(drone’n’Bass)나 드럼 앤 베이스(drum’n’Bass) 기법을 통해 응용되는 음의 파편들을 병치시킨 다음, 이것을 바탕으로 고요하면서도 강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음악이었다. [TG 11]을 통해 발현된 라디안의 음악은 당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차용한 기법은 색다르지 않았지만, 그것을 응용하는 방식은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라브랫포드(Labradford)같이 드론 앤 베이스를 사용하더라도, 두터운 질감을 강조하기보다는 얇고 날카로운 날을 드러냈으며, 써드 아이 파운데이션(Third Eye Foundation)처럼 록에 드럼 앤 베이스를 도입하였더라도 드럼 비트에서 박진감을 제거한 다음 극세(極細) 단위로 나뉘는 글리치 비트처럼 파편화시켰던 것이다. 또한 열거한 음악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다층적인 음의 텍스처도 절제되었고, 이를 통해 라디안의 음악이 주는 심상은 음으로 구현하는 불온한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결국 이 음반이 자아낸 ‘날것’의 디스토피아가 주는 충격은 흥미로운 사건을 야기했다. [TG 11]을 듣고 시카고 포스트 록의 메카인 스릴 자키(Thrill Jockey) 레이블이 라디안에게 이들의 소마 스튜디오(Soma Studios)에서 ‘거장’ 존 맥킨타이어(John McEntire)와 함께 녹음을 시작해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청에 응했고, 우리가 지금부터 살펴볼 음반인 [rec.extern]이 그 결과물이다. [rec.extern]은 존 맥킨타이어를 프로듀서로 하여 제작되었고, 음반을 들어보면 그의 영향 때문인지 급진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음반을 시작하면 “Nahfeld”와 “Bioadapter”에선 강박적인 불온함은 여전하지만 음의 파편들은 상대적으로 IDM에서 응용되는 정형화된 비트의 분열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Jet”는 두 메이크 세이 띵끄(Do Make Say Think)를 연상시키는 전범화된 포스트 록의 한 형태를 선보인다. 또한 “Kilvo”와 “Unje”, “=Elot”는 무료하게 진행되는 앰비언트 곡이다. 그래서 음반은 [TG 11]과 비교하자면, 정형화된 음악같이 들린다. 라디안이 [TG 11]에서 소음과 간명한 텍스처 사이사이 넣어두었던 행간으로써의 적요와 무정형을 견지하는 소음의 돌출이 주었던 생생함 대신 고착화된 불온만이 [rec.extern]엔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진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TG 11]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헤겔이 변증법으로 말한 바와 같이 한 사물이 발전 과정에서 스스로의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다시 이 모순을 지양하면서 보다 높고 새로운 것에 이르게 된다는 논리에 따르면, 영화 [Crash]가 지옥 끝까지 달려가 디스토피아의 반대 꼭지점인 유토피아를 잉태한 것이었다면, 라디안은 너무도 쉽게 음악에서 ‘날것’을 포기해버린다. 유계(幽界)의 길목에서 현세(現世)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음반으로 라디안이 록의 새로운 미래상을 포기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외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음반을 들을 때,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길들여진’ 여우와 같이 편안하지만 활력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30226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7/10 수록곡 1. Nahfeld 2. Jet 3. Kilvo 4. Bioadapter 5. Unje 6. Etage 3/Flur 7. Ulan 8. =Elot 관련 글 록에서 일렉트로니카로 : Intro – vol.5/no.05 [20030301] The Postal Service [Give Up] 리뷰 – vol.5/no.05 [20030301] Out Hud [S.T.R.E.E.T D.A.D] – vol.5/no.05 [20030301] Radian [Rec.Extern] – vol.5/no.05 [20030301] Midwest Product [Specifics] – vol.5/no.05 [20030301] Lali Puna [Scary World Theory] – vol.5/no.05 [20030301] Add N to (X) [Loud Like Nature] – vol.5/no.05 [20030301] Notwist [Neon Golden] – vol.5/no.1 [20030101] Enon [High Society] 리뷰 – vol.5/no.06 [20030316] Xiu Xiu [A Promise] 리뷰 – vol.5/no.06 [20030316] Icu [Chotto Matte A Moment!] 리뷰 – vol.5/no.06 [20030316] Meg Lee Chin [Piece And Love] 리뷰 – vol.5/no.06 [20030316] Mitchell Akiyama [Temporary Music] 리뷰 – vol.5/no.06 [20030316] Cornelius [Point] 리뷰 – vol.5/no.06 [20030316] 관련 사이트 Radian 공식 사이트 http://www.radian.at Thrill Jockey 레이블에서 제공하는 Radian 페이지 http://www.thrilljockey.com/bandpage.html?artistnum=45&PopeIISess=8fd7b76e64e0008271061454a14d84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