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stal Service – Give Up – Sub Pop, 2003 버린 것은 잡음이요, 얻은 것은 선율이라 워싱턴 주 시애틀이 미국 인디 록/팝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건 물론 1990년대 초 ‘그런지 폭발’ 덕분이지만, 세기말-세기초에 이르면 그들의 시대는 이미 거한지 오래고, 그 횃불은 인디 팝 밴드 데쓰 캡 포 큐티(Death Cab For Cutie)와 그 프론트맨인 벤 기버드(Ben Gibbard)에게로 넘어간다. ‘시애틀의 대표주자’란 간판이 지닌 무게는 상당하겠지만, 현재까지의 전적을 고려하면 기버드(와 협력자들)의 재능은 그런 주위의 기대 및 압력을 잘 다뤄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타임 쿼터백(All-Time Quarterback)이란 이름으로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던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버드의 음악은 ‘훌륭한 멜로디’를 지향해 왔고, 바로 그것이 그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서 그의 음반들에서 스미쓰(The Smiths)나 매그네틱 필즈(The Magnetic Fields)의 커버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며,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1980년대 신쓰팝의 영향 또한 마찬가지다. 하기야 그의 애어른 같은 목소리로 전혀 다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게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아메리칸 글리치/랩탑 테크노의 대가 디엔텔(Dntel: 본명은 Jimmy Tamborello)의 두 번째 LP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대부분의 예상은 기버드가 그저 멜로디 라인과 목소리를 빌려 주면 그걸 갖고 탬보렐로가 제멋대로 장난을 쳤겠거니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결과는 예상과 좀 달라서, 기버드 외에도 슬린트(Slint)의 브라이언 맥매언(Brian McMahan),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 특집을 통해 [weiv]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미아 도이 토드 등 인디계의 기라성같은 보컬리스트들을 등장시킨 디엔텔의 [Life Full Of Possibility](2001)는 클릭 앤 컷(click & cut) 방법론을 특징지어온 추상적이고 차가운 사운드를 좀더 듣기에 까다롭지 않은 방향으로 접근시킨 수작으로 환영받았다. 수록곡 중 이후 리믹스 EP로도 재발매된 기버드와의 공동작 “(This Is) The Dream Of Evan And Chan”은 마치 맑은 물에 가루약을 풀어놓은 듯 번지는 뿌우연 잡음으로 시작된다. 이 확산작용은 은밀히 침투하는 신디사이저의 희미한 멜로디를 촉매로 해서 차차 침전하고 응결되면서, 뒤따라 등장하는 드럼 비트와 기버드가 뽑아 올리는 유려한 선율을 여과한다. 기버드는 손님으로서 갖고 온 바 특기를 맘껏 뽐냈고, 탬보렐로도 그런 대로 주인장의 체면을 차린 셈이다. 그래서 이들이 후속으로 공동 LP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런 화학반응의 지속이 어떤 최종 산물로 귀결될 지 자못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연장된 공동 프로젝트의 이름을 ‘포스탈 서비스’로 지은 건 이들이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한 게 아니라 기버드는 시애틀에서, 탬보렐로는 LA에서 각자 작업한 것을 우편을 통해 주고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이름은 두 가지 의미에서 징후적이다. 첫째, ‘디지털 정보고속도로’의 시대에 구식의 통신 수단을 이용했다는 점, 그것도 다름아닌 랩탑 테크노 아티스트가! 둘째,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총기난동사고를 일으킨 미국의 몇몇 우체국 직원들 덕에 ‘going postal = (총을 갖고) 미쳐 날뛰다’이라는 신조어마저 생겨났다는 점. 그래서 데쓰 캡이나 디엔텔의 작업에서 들을 수 없었던 뭔가 화끈하고 황당한 게 나오려니 하는 기대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해석과 기대는 절반쯤 들어맞았다고 해야겠다. 아마도 우체국에 더 자주 간 건 기버드 쪽이라기보다는 탬보렐로인 것 같은데, 전자음향 테크놀로지 면에서 이 음반은 나쁘게 말해 퇴행적이고, 좋게 봐주면 복고적이다. 뿅뿅거리는 ‘쌍팔년도’ 신디사이저 음은 기버드의 가볍고 달콤한 멜로디와 궁합이 아주 잘 맞지만, 탬보렐로가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디지털 샘플링 사운드 요술(예컨대 글리치 특유의 정전기 틱틱거리는 잡음 따위)은 대개 한 걸음 뒷전으로 물러서 있다.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많은 경우 그의 정교한 사운드 배치는 기버드의 물리치기 힘든 훅을 살려야 할 데서 잘 살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Such Great Heights”는 말 그대로 음반의 정점에 위치한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Recycled Air”의 보컬과 기타에 감칠맛을 더하는 비트의 세분도 귀를 즐겁게 해준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정말로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색다른 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엄격히 말하자면 이름 따위에 혹해 미신적인 기대를 부풀린 나같은 사람의 책임이지 이들의 탓은 아니다. 아무래도 이 음반은 탬보렐로의 손길보다는 기버드의 입김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굳이 편을 가르자면 전자음악 팬들보다는 인디 팝 팬들에게 더 환영받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복고풍 신디사이저에다, 매그네틱 필즈의 클로디아 곤슨(Claudia Gonson)을 연상시키는 젠 우드(Jen Wood)의 여성 보컬이 들어간 “Nothing Better” 같은 곡을 더하면 이 음반은 기버드가 스테핀 메릿(Stephin Merritt)에게 헌정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런 시도를 통해 좀더 다양한 팬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한다면 탬보렐로 또한 행복할 것이다. 비록 그걸 위해 하이테크 잡음을 잠시 포기한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맨 마지막에 가까스로 끼여 있는 “Natural Anthem”을 들어보면, 오랜 버릇에서 손을 떼는 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20030308 | 김필호 antoedipe@hanmail.net 8/10 수록곡 1. The District Sleeps Alone Tonight 2. Such Great Heights 3. Sleeping In 4. Nothing Better 5. Recycled Air 6. Clark Gable 7. We Will Become Silhouettes 8. This Place Is a Prison 9. Brand New Colony 10. Natural Anthem 관련 글 록에서 일렉트로니카로 : Intro – vol.5/no.05 [20030301] The Postal Service [Give Up] 리뷰 – vol.5/no.05 [20030301] Out Hud [S.T.R.E.E.T D.A.D] – vol.5/no.05 [20030301] Radian [Rec.Extern] – vol.5/no.05 [20030301] Midwest Product [Specifics] – vol.5/no.05 [20030301] Lali Puna [Scary World Theory] – vol.5/no.05 [20030301] Add N to (X) [Loud Like Nature] – vol.5/no.05 [20030301] Notwist [Neon Golden] – vol.5/no.1 [20030101] Enon [High Society] 리뷰 – vol.5/no.06 [20030316] Xiu Xiu [A Promise] 리뷰 – vol.5/no.06 [20030316] Icu [Chotto Matte A Moment!] 리뷰 – vol.5/no.06 [20030316] Meg Lee Chin [Piece And Love] 리뷰 – vol.5/no.06 [20030316] Mitchell Akiyama [Temporary Music] 리뷰 – vol.5/no.06 [20030316] Cornelius [Point] 리뷰 – vol.5/no.06 [20030316] 관련 사이트 포스탈 서비스 사이트 (Sub Pop Records) http://www.subpop.com/scripts/main/bands_page.php?id=412 데쓰 캡 포 큐티 공식 사이트 (Barsuk Records) http://www.barsuk.com/web.cgi?dcfc&dcfc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