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 Da Painkiller – Fat Dog Entertainment, 2003 대중의 편견 속에서 살아남기 한국의 대중음악 씬은 십 년이 넘게 발라드와 댄스 음악으로 정확히 양분되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의 가장 큰 맹점 중 하나가 두 장르에 속한다고 말하기 힘든 뮤지션들이 편의를 위해 두 장르 중 좀 더 가까운 쪽으로 인식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R&B는 발라드의 한 장르로 인식되고, 힙합 음악은 기존의 댄스 음악들과 동일선상에서 이해가 된다. 장르라는 것이 평론가들이 평론하기 좋게 만든 것 뿐이라고 가치폄하할 수도 있지만, 대중에게 이런 식으로 인식이 되면 그 편견을 벗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이현우의 경우 리믹스 앨범으로 대성공을 거둔 데뷔곡 “꿈”의 댄스 가수의 이미지부터 몇 년 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샘플링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챠트를 석권했던 “헤어진 다음 날”의 발라드 가수로서의 이미지까지 갖고 있는 특이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몇 년간은 “수요예술무대”를 김광민과 함께 진행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얻게된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까지 갖고 있으니 상당히 다층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현우의 음반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지보다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초기 앨범들의 경우 김홍순과의 공동 작업으로 힙합을 비롯한 흑인 음악을 시도했으며, 이 후에는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 김영진과 문차일드(김민기, 신윤철, 김도균 등은 세션 형식으로 참여)라는 록밴드를 만들어 보컬을 맡기도 했다. 물론 록 매니아들의 관심을 모았던 문차일드 프로젝트는 소속사와의 불화로 제대로 발매조차 하지 못하고 앨범을 접는 비운을 겪은바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이후 발표한 솔로앨범에 실린 “헤어진 다음 날”은 비발디의 “사계”중 “겨울”을 샘플링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사실 “헤어진 다음 날”이 실린 [Freewill My Heart](1997)를 들어보면 힙합이나 테크노풍의 다양한 장르를 들을 수 있지만 당시 머릿곡에 열광했던 이들은 그 이외의 음악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이 때의 앨범구성은(듣기 좋은 발라드와 다양한 장르의 여타 곡들) 이후 발표된 두 장의 솔로 앨범에도 똑같이 적용되었지만, 머릿곡이 “헤어진 다음 날”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 까닭에 큰 주목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번 새 앨범 [Da Painkiller](2003)는 직전에 발표된 앨범 [Freestory Remix 1991 >>>2001](2001)의 연장선에 있는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인디음악계에서 주목받는 테크노 뮤지션 프랙탈(Fractal)과 손잡고 발표했던 [Freestory…](2001) 앨범은 이현우의 히트곡들을 리믹스해서 발표한 베스트격의 앨범이다. 프랙탈과 손잡으면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그루브가 한층 강조된 사운드의 변화이다. 이러한 사운드 상의 변화를 토대로 이전에 이현우가 해오던 발라드, 락, 힙합등 여러 장르에서 좀 더 다양하고 예전과는 다른 표현이 가능해 졌다는 점에서 둘의 만남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Freestyle…] 앨범이 특별한 기획의 앨범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부담이 없었다면, 새로운 정규 앨범에 프랙탈에게 앨범에 수록된 14곡 중에서 11곡의 편곡을 맡기며 공동 프로듀싱을 맡긴 것은 분명히 새로운 음악을 위한 시도였다. 프랙탈의 입장에서는 보컬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본인의 솔로 앨범과 비교해 이현우라는 지명도 있는 보컬을 만나 조금 더 편안하게 작업을 했다는 면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타이틀 곡 “Stay”는 “When I Dream”을 샘플링 한 곡이다. 이전 앨범의 타이틀이 그랬듯이 익숙한 어법의 발라드로 무난한 곡이긴 한데, 예전 “Good Night”이라는 곡이 “헤어진 다음 날”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던 사실이 떠올리면 타이틀 곡으로써 아쉬운 부분이 있다. “중독”의 경우 이현우가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다고 밝힌 곡으로 “Stay”가 예전의 음악과 비교될 수 있는 익숙한 곡이라면 “중독”은 프랙탈과 함께 만든 새로운 이현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현우의 느낌과 잘 맞아 떨어지는 곡이다. 프랙탈의 프로그래밍이 주가 된 버전과 어쿠스틱 버전이 함께 실려서 두 아티스트의 색깔을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프랙탈이 작곡까지 맡은 “Come On”, “Danger”같은 곡들은 프랙탈이 지향하는 댄스 음악이다. 예전 이현우의 음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로 두 뮤지션의 궁합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Mask”는 가장 흥미있게 들었던 곡으로 예전에 해외에서 유명 록 밴드와 테크노 뮤지션들이 만들었던 [Spawn] OST와 같은 음반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프랙탈과의 작업이 발라드 가수 이현우의 팬들에게 조금 낯설게 들린다면, 프랙탈이 참여하지 않은 “Far away”,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등의 후반부에 실린 곡이 오히려 마음에 들 것이다. “Far away”가 밴드의 연주를 바탕으로 한 “후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면, 드라마에도 삽입되었던 “지금 내게 필요한 건”은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이현우의 목소리를 전면에 세우며, 14명의 스트링 연주자로 멜로디를 강조한 재즈풍의 곡이다. 이번 앨범은 사실 프랙탈과의 작업으로 지난 몇 장의 앨범에 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한 앨범이다. [Freewill My Heart](1997) 이후의 앨범들이 좀 더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을 해왔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변화를 택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팬들과 함께 새로운 팬들 확보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래서 이 변화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030125 | 이성식 landtmann@empal.com 6/10 수록곡 1. I Need A Pain Killer 2. Stay(Un-Skool Edit) 3. 중독 4. 사랑은 죽었다 5. Come On 6. Danger 7. Mask 8. 슈-퍼 히어로 9. Far Away 10. 지금 내게 필요한 건 11. Just Another Day 12. Stay(Ol` Skool Edit) 13. 중독(Acoustic Mix) 14. Feel Your Pain 관련 사이트 Fat Dog Entertainment(소속사) 공식 싸이트 http://www.fatdog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