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5104739-11-earSmashing Pumpkins – Earphoria – EMI/Virgin, 2002

 

 

짧지만 좋았던 시기의 스냅사진

[Earphoria](2002)는 1994년 발매된 밴드의 라이브 비디오 [Vieuphoria]의 프로모션용 사운드트랙으로 만들어진 음반이다(8년 전 음반이 왜 하필 이제서야 상업용으로 발매되는지에 대해서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라이브 음반이라고 해도 특정 공연의 음원을 담은 것이 아니며, 각 공연 트랙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에 신경을 쓴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100% 라이브 음반인 것도 아니다. 첫 트랙 “Sinfony”와 “Bugg Superstar”(제임스 이하(James Iha)의 애완견에 관한 노래라고 함), “Pulseczar”, “French Movie Theme”, “Why Am I So Tired”는 스튜디오 음원을 담고 있다. 15분이 넘는 방대한 블루스 연주곡 “Why Am I So Tired”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3분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소품’ 형식의 곡이지만, “Bugg Superstar”에서 느낄 수 있는 뉴웨이브적인 제임스 이하의 감각은 주의를 기울여볼 만도 하다(사실 주의를 기울이기보단 웃음을 유발하는 쪽이겠지만).

라이브 트랙들의 경우,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악명높은 스튜디오 오버더빙을 생각했을 때, 음반에서 들을 수 있던 중첩된 기타 사운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이 점은 항상 빌리 코건(Billy Corgan)이 [Siamese Dream](1993)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이기도 하다 – “우리는 이 앨범에서, 라이브를 하게 될 때의 효과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Earphoria]의 라이브 트랙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사운드의 빈약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공연들이 1993년과 1994년에 대부분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다.

스매싱 펌킨스는 10여년에 이르는 활동과 그에 따른 커다란 성공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의 ‘전성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은 시절을 누린 적이 없다. 흔히 이들 최고의 시기라 부르는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1995) 기간에도 밴드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매싱 펌킨스가 유일하게 ‘전성기’라 할 만한 시기가 있기는 하다. [Siamese Dream](1993)이 본격적인 인기몰이를 하던 (그리고 후속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의 작업에 착수하기 이전인) 1993년에서 1994년까지가 바로 그 기간인데, [Earphoria]는 바로 그러한 시기의 스냅사진들을 모아놓은 사진첩 같은 음반이다.

수록된 대다수의 라이브 트랙들은 원곡의 파워를 훨씬 상회하는 (물론 “Today”같은 예외도 있지만, 이 곡에서도 느껴지는 정서는 훨씬 안정되고 긍정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다) 힘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일례로 “Silverfuck”은 13분이 넘는 방대한 길이로 연주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듯 활기차게 진행된다(게다가 후반부의 ‘오바’라 할만한 “Over The Rainbow” 멜로디의 갑작스러운 삽입 역시, 치기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밴드의 자신감 충만했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Cherub Rock”과 “Mayonaise”는 일렉트릭 사운드 대신 어쿠스틱 사운드를 갈아입음으로써, 훨씬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소란스런 노이즈를 배제한 두 곡이 실제로는 좋은 멜로디의 ‘팝송’임을 확인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이는 밴드만의 독자적인 개성이라기보다 오히려 스매싱 펌킨스와 여타의 동시대 메인스트림 밴드들을 이어주는, 1990년대 소위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주된 공통점이기도 했다).

물론 [Earphoria]가 더 이상 새로운 음원을 만들어낼 수 없는 스매싱 펌킨스의 마지막 한 방울 단물까지 빨아먹으려는 음반사의 상술에 다름 아님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1994년 공개되었던 프로모션 앨범과 수록곡 상의 어떠한 차이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음반의 대단히 치명적인 결점이다(이미 인터넷에 퍼질대로 퍼진 음반을 뭣하러 돈 들여 찍어냈는지도 의문이지만). 하지만 비단 스매싱 펌킨스의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음반을 통해 들려오는 ‘거물’로 성장하기 직전의 아직은 어리숙하지만 패기 넘치던, 그리고 조금은 과잉된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던 이 시카고 출신 ‘젊은’ 밴드의 유일하게 좋았던 시절의 공연 모음집이란 사실은, 음반사의 상술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조금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0030210 | 김태서 uralalah@paran.com

6/10

수록곡
1. Sinfony
2. Quiet – Live In Atlanta, 1993
3. Disarm – Llve On English TV, 1993
4. Cherub Rock (Acoustic) – Live On MTV Europe, 1993
5. Today – Live In Chicago, 1993
6. Bugg Superstar
7. I Am One – Live In Barcelona, 1993
8. Pulseczar
9. Soma – Live In London, 1994
10. Slunk – Live On Japanese TV, 1992
11. French Movie Theme
12. Geek U.S.A. – Live On German TV, 1993
13. Mayonaise (Acoustic) – Live Everywhere, 1988 – 1994
14. Silverfuck – Live In London, 1994
15. Why Am I So 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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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Mayonaise” (Acoustic)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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