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5101940-machina2Smashing Pumpkins –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 Internet, 2000

 

 

반쪽짜리 혁명

2000년 5월,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전제군주 빌리 코건(Billy Corgan)은 ‘브리트니 스피어즈(Britney Spears)와 싸우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라는 듣기에 따라 공감할 수도, 또 조소를 던질 수도 있는 아리송한 변명을 뒤로하고 밴드의 활동에 마침표를 찍기로 마음을 굳혔다. 해체 소식을 듣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진’식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팬들은, 그나마 정식 해체 이전에 발표될 한 장의 앨범에 대한 언급을 통해 다소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앨범 발매를 둘러싸고 벌어진 소속사 버진(Virgin) 레코드와의 갈등, 결국 빌리 코건은 이 앨범을 다섯 장의 바이닐(vinyl; 이후 ‘비닐’)로 만들어(EP 세 장, 전작(full-length) 두 장, 밴드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디로는 EP 모음집인 디스크1과 LP 모음집 디스크2로 발매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개인적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사태를 매듭지었고, 우리는 그들이 비닐에서 뽑아낸 열악한 음질의 새 앨범을 온라인을 통해 듣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음이 지금까지의 과정이다.

사상 최초의 온라인만을 통한 음반배포,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2000; 이하 [Machina II])에 쏟아지는 초점은 음반의 유통 과정에 대다수 몰려 있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확실히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는 소속 뮤지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대다수 메이저 음반사에 대해, 뮤지션이 자신의 창작물을 가지고 대항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아마 오랜 기간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뮤지션과 소속사 간의 권력관계 내에서만 논의될 문제이며, 우리는 실제 이들의 음악적인 결과물에 대한 비평이 (적어도 국내에서는) 전무한 것이었음을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이는 앞으로도 진행될지 모를 온라인을 통한 음반배포를, 대안이 아닌 하나의 이벤트 정도로 평가절하 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Machina II]는 전작 [Machina/The Machines Of God](2000, 이하 [Machina]) 작업 중 앨범에서 누락된 곡들과 이전의 미발표 곡들, 그리고 앨범 발매 후 작업된 곡들을 모아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Pisces Iscariot](1994)과 같은 종류의 또 다른 미발표곡 컴필레이션 앨범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이 레코드는 [Machina]에서 다 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추스른, 전작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앨범이다. 빌리 코건이 인터뷰에서 ‘[Machina II]를 통해 [Machina]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하지만 [Machina]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더욱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은 것은 단지 필자의 이해력 부족 때문이었을까?). [Machina] 발매 8개월만에 등장한 이 앨범은 일단 25개라는 수록곡 수부터 청자를 압도한다. 그리고 이런 숨막히는 감상은 디스크 1의 첫 곡 “Slow Dawn”의 블루스 사운드를 통해 더욱 증폭된다.

분명 신실한 곡의 분위기는 스매싱 펌킨스의 그것이다. 하지만 곡의 후반부, 소란스런 기타 솔로 위에 얹히는 빌리 코건의 외침 ‘slow dawn~’은 마치 펄 잼(Pearl Jam)의 곡을 듣는 듯한 착각을 유발시킬 만큼 루츠(roots)적이다. 이후에도 스매싱 펌킨스의 블루스 사운드는 “Vanity”와 “Satur9″까지 이어진다. 물론 이들의 주특기라 할 다층적이면서도 스트레이트한 로큰롤이 없는 것은 아니다. “Glass [Alternate Mix]”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커버) “Soul Power”, “Cash Car Star [Version 1]”, “Lucky 13″등의 하드록이 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특히 동일한 스타일의 “Cherub Rock”이나 “Zero”를 떠올린다면). 게다가 너무나 급작스럽다. 과연 누가 스매싱 펌킨스의 디스코그래피 상에서 [Machina II]가 위치하는 지점을 무리 없이 유추해 낼 수 있을까.

물론 [Machina II]의 음악적 소스들이 [Machina]에 이미 있었음은 알고 있다. “The Crying Trees Of Mercury”가 그랬고 “Blue Skies Bring Tears”가 그랬다. 그밖에, 부분적으로 [Machina]의 다른 곡에서도 이런 복고 지향적이고 한없이 엉키는 기타 사운드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Machina]에서 상기 두 곡이 상당한 이질감과 함께 (사운드의 그 대단한 야심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청취를 어느 정도는 방해하는 곡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러한 변화에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디스크1의 감상을 마치고 디스크 2를 재생시키면 깨닫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장은 이 음반을 설명하기 위한 (극단적인) 보충자료 정도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 트랙 “Glass”는 디스크 1과 비교했을 때, 훨씬 간결한 편곡을 통해 앨범 내에서의 역할에 좀 더 비중을 실어 줬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는 “Cash Car Star”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곡 “Dross”와의 연결도 훌륭하고 편곡도 좀 더 곡 자체의 이미지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E.P. 수록곡 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Real Love”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스매싱 펌킨스와 [Machina II]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스매싱 펌킨스의 조화를 통해 매우 만족스런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질주감 넘치는 기타 사운드 위로 내지르는 빌리 코건의 보컬은 좀처럼 거부하기 힘든 감상을 제공한다. 네 곡 연달아 뚜드려 댄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이어지는 제임스 이하(James Iha)의 “Go”는 여지껏 그가 들려주던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여유로움과 차분함의 미덕을 발휘하는 곡이다.

[Adore](1998) 시기부터 심심치 않게 라이브를 통해 알려져 왔던 “Let Me Give The World To You”는 이전의 조용하고 어쿠스틱 질감 넘치는 사운드를 과감하게 벗고, 단아하면서도 경쾌한 록큰롤 팝송으로 탄생했다. 멜로디도 ‘아, 스매싱 펌킨스구나’하고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고, 소박한 사운드도 전의 야심으로 뭉친 사운드에 지쳐있던 귀를 감싸 안는 안도감을 제공한다. “Innosense”와 “Home”은 약간은 의외인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고, “Blue Skies [Version Electrique]”의 다시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아직 이들이 충분히 ‘로킹(rocking)’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커다란 드럼 비트와 함께 시작되는 “White Spyder”는 다시 한번 예전의 흥분을 재현하며, 뒤틀리고 차가우면서도 무척이나 차분한 사운드의 “In My Body”로 이어진다. 7분이 넘는 긴 시간을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 만으로 채운 편곡도 훌륭하고 역시나 플러드(Flood)의 입김이 강하게 느껴지는 프로듀싱 역시 매우 고급스러운 질감의 것이다.

E.P.의 수록곡과는 연주 면에서 완전히 다른 곡인 “If There Is A God”은 사운드의 공간감을 잘 살려내고 있으며, 이어지는 신디사이저 연주곡 “Le Deux Machina”는 같은 멜로디를 장조와 단조를 오가며 연주하는, 앨범의 요약판이라고 할 만한 신비로우면서도 불편한 느낌의 곡이다. 마지막 곡 “Atom Bomb”에 대해선 할 말이 별로 없다. 산뜻하게 통통거리는 사운드로 앨범의 끝을 세련되게 마무리한다는 정도가 적당한 해설일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그럼 디스크 1은 볼품없고 디스크 2는 훌륭하다는 얘기인가’라고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정확한 대답은 하기 힘들다. 파격적인 사운드의 변화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인가, 아니면 안전한 노선의 곡들을 더 좋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장 모두 높게 봐 줄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는 두 장 중 어느 하나도 ‘훌륭하다’는 수식을 붙이기에는 부족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무려 다섯 장의 비닐(혹은 더블 시디)로 제작된 앨범이긴 하지만, 이 모두가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이라는 한 장의 앨범으로 발매된 것이 아닌가. 더블 앨범을 각각 한 장 씩 나눠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된 일이다.

그리고 한가지 불만을 덧붙이자면 사운드의 심각한 손상을 들어야겠다. 어느 곡 하나도 완벽한 감상은 불가능하며, 모든 곡이 상당히 변형된 음질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은 대단한 감점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빌리 코건이 분명 손상되지 않은 음원들을 갖고 있을테지만, 그 음원들이 공개되기 전에는 이 손상된 음원들만이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가 되어줄 뿐이다. “Glass [Alternate Mix]”의 사운드가 사실은 너무나 훌륭하게 뽑아진 복잡함일 수도 있고 히스 음이 없는 “Let Me Give The World To You”의 단촐한 사운드는 의외로 싱거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추측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이를 근거로 어떤 결론을 제시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빌리 코건이 진정으로 새로운 유통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의 계획은 반쪽짜리 이상의 성공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그의 반쪽짜리 앨범과 더불어).

[Machina II]는 분명 흥미로운 앨범이다. 그것은 비단 음원의 유통방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음악감상에 있어 그 유통과정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란 말인가) 사운드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 상당히 흥미로울 — 빌리 코건의 ‘포스트 펌킨스(post-pumpkins)’ 시대에 대한 (어렴풋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분명 빌리 코건의 재능이 모두 소진한 것은 아니며, 이 앨범의 새로운 모색들을 통해 그가 나름의 훌륭한 앨범들을 만들어 내리란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훌륭한 앨범이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은 아니다. 20030205 | 김태서 uralalah@paran.com

5/10

수록곡
-Disc1-
CR-01
1. Slow Dawn
2. Vanity
3. Satur9
4. Glass [Alternate Version] CR-02
1. Soul Power (James Brown Cover)
2. Cash Car Star [Version 1] 3. Lucky 13
4. Speed Kills [But Beauty Lives Forever] CR-03
1. If There Is A God [Piano And Voice] 2. Try [Version 1] 3. Heavy Metal Machine [Version 1 Alternate Mix]

-Disc2-
CR-04
1. Glass
2. Cash Car Star
3. Dross
4. Real Love
5. Go
6. Let Me Give The World To You
7. Innosense
8. Home
9. Blue Skies [Version Electrique] 10. White Spyder
11. In My Body
12. If There Is A God
13. Le Duex Machina
14. Atom Bomb

관련 글
Smashing Pumpkins [Gish]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Siamese Dream]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Pisces Iscariot]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The Aeroplane Flies High] 리뷰 – vol.5/no.4 [20030216]
James Iha [Let It Come Down]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Adore]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2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1 – vol.2/no.6 [20000316]
Smashing Pumpkins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Greatest Hit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Earphoria] 리뷰 – vol.5/no.4 [20030216]
Zwan [Mary, Star Of The Sea] 리뷰 – vol.5/no.4 [20030216]

관련 영상

“Cash Car Star” Live

관련 사이트
스매싱 펌킨스의 전세계 팬사이트를 연결하는 허브 사이트
http://www.starla.org
스매싱 펌킨스 메시지 보드
http://smashingpumpk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