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shing Pumpkins – Machina/ The Machines Of God – EMI/Virgin, 2000 기계 神이 남기고 간 마지막 유산 2000년 새해를 기억하는가?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자 마치 지난 20세기의 모든 것이 청산과 극복의 대상이 된 것처럼, 마치 역사에 결정적 단절이라도 있는 것인 양 언론과 저명인사들은 떠들어댔다. 그러나 우리는(용서하시라!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이 그러했으리라는 뜻이다) 그날도 늦잠에서 깨어 밥 몇 술을 우겨넣고 CCR 따위나 흥얼거리며 지루한 휴일을 죽였다. 변한 것은 없었다. 거리에 널린 쓰레기처럼 공허한 말들만이 늘어났을 뿐.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4인방이 모여 녹음한 마지막 정규 앨범, [Machina/ The Machines of God](이하, [Machina]로 표기)은 바로 그해 2월에 출시되었다. 멤버들 사이의 내분, 해체설 등 당시의 상황을 둘러싸고 회자되었던 얘기들을 다시 꺼낼 필요는 없겠다. 다만 지미 챔벌린(Jimmy Chamberlin)의 복귀와 함께 팬들과 평단의 기대치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충성스런 팬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전작 [Adore]가 다소 뜬금없고 맥빠진 난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빌리는 2집 [Siamese Dream]이나 3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의 형식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결국 앨범은 전작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헤비한 훅을 끼워 넣는 어중간한 절충작이 되어 버렸다. 해체 선언 이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미 [Machina]를 마지막 작업으로 생각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시도보다는 지금까지 제안된 것들을 수습하고 정리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혹자는 첫 곡 “The Everlasting Gaze”를 필두로 앨범의 전반부에 포진된 트랙들을 통해 스매싱 펌킨스가 [Adore] 앨범 이전의 사운드 데시벨을 되찾았다고 환영했지만, 관습적인 헤비 메탈의 영향이 농후할 뿐 오히려 에너지는 소진된 듯 들린다. 기타는 예전과 같이 파괴적인 퍼즈톤의 노이즈보다는 공명감이 실려 찰랑거리는 결을 유지한다. “Stand Inside Your Love”나 “The Sacred And Profane”에서 들려오는 기타음은 거친 질감보다는 차갑게 정돈된 느낌이며, 빌리의 보컬도 한층 부드러워져 있다.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금속성 리프를 연상케 하는 “Heavy Metal Machine”은 앨범 내에서는 필살 트랙의 지위를 부여받지만 예전에 들려주었던 매력적인 멜로디와 사운드 테러에 비하면 지루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곡이다. 오히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앨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섬세한 트랙들인데, 먼저 “Glass And The Ghost Children”은 기타 피드백이 조성하는 사이키델리아와 냉소적으로 읊조리는 빌리의 목소리가 데뷔작 [Gish]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곡이다. 이어지는 “Wound”와 “With Every Light”는 이들이 팝적인 선율감을 보유한 감각적인 밴드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곡들이며, “Blue Skies Bring Tears”는 먼길을 걸어온 후의 나른한 피로감과 같이 차분히 진행되다가 곡의 말미에 귀를 할퀴고 가는 증폭된 노이즈가 심상치 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유약한 독재자인 빌리 코건이 음악산업과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동시대의 그런지 록 밴드들보다는 전략적이고 영리했다. 그래서인지 빌리의 발언은 이유 없이 울분만 쏟아내는 촌동네 밴드들과 달리 신중하고 지성적이었다. 본의 아니게 그런지 혁명에 무임승차한 후발주자로 비춰지긴 했으나, 크리드(Creed) 따위들이 그런지의 남은 단물을 빨아먹으며 챠트를 오르내리던 때에 얼터너티브 록을 자기 방식대로 끝까지 책임진 경영자는 빌리 코건이었다. 그리고 밴드의 결말은 ‘불꽃처럼 산화하는’ 것도 아닌, ‘스멀스멀 사라지는’ 것도 아닌, 끝까지 할 말을 다 토해놓은 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작별을 고하는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물론 해체 이후에 나온 앨범들은 사실 개운치 않은 사족이자 중언부언인 것 같아 아쉬운 감이 있지만, 음반산업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스타 밴드가 갑자기 해체를 선언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면 자연스런 해소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청산과 용도폐기의 대상이 될 과거의 유산들 가운데 이들의 이름이 있다. 그러나 스매싱 펌킨스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강고한 아성이 무너지며 잊혀져 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자기복제와 변신을 통해 거듭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역사에는 결정적 단절이란 없는 법이다. 20030213 | 장육 evol62@hanmail.net 6/10 사족 : 리뷰 대상이 된 음반은 영국에서는 LP로, 일본에서는 CD로 출시된 앨범으로 보너스 트랙인 “Speed Kills”가 담겨 있고 일부 수록곡 순서가 바뀌었음. 수록곡 1. The Everlasting Gaze 2. Raindrops + Sunshowers 3. Stand Inside Your Love 4. I Of The Mourning 5. The Sacred And Profane 6. Try, Try, Try 7. Heavy Metal Machine 8. This Time 9. The Imploding Voice 10. Glass And The Ghost Children 11. Wound 12. The Crying Tree Of Mercury 13. Speed Kills 14. Age Of Innocence 15. With Every Light 16. Blue Skies Bring Tears 관련 글 Smashing Pumpkins [Gish]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Siamese Dream]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Pisces Iscariot]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The Aeroplane Flies High] 리뷰 – vol.5/no.4 [20030216] James Iha [Let It Come Down]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Adore]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2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1 – vol.2/no.6 [20000316] Smashing Pumpkins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Greatest Hit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Earphoria] 리뷰 – vol.5/no.4 [20030216] Zwan [Mary, Star Of The Sea] 리뷰 – vol.5/no.4 [20030216] 관련 영상 “The Everlasting Gaze” 관련 사이트 스매싱 펌킨스의 전세계 팬사이트를 연결하는 허브 사이트 http://www.starla.org 스매싱 펌킨스 메시지 보드 http://smashingpumpk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