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shing Pumpkins – Adore – EMI/Virgin, 1998 표면의 깊이 스매싱 펌킨스는 종종 빌리 코건과 지미 챔벌린이었다. 챔벌린이 해고된 뒤 나왔던 이 음반에서 펌킨스는 빌리 코건이다. 눈밭을 헤매는 것처럼 푹푹 주저앉는 “Ava Adore”의 디지틀 다운비트는 그 등식에 마침표를 찍는다. 기타는 세션처럼 연주하며, 베이스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하지만 코러스까지 도맡아 한 코건의 목소리는 펌킨스의 그 어느 음반보다도 또렷하게 들린다. 비슷한 배경에서 제작된 R.E.M.의 [Up]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여전히 밴드의 음반이다. 그래서 록 밴드의 음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Adore]가 실패작이라는 말에 반박하긴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 음반에서 펌킨스-코건이 내세운 것은 드림 팝의 아우라를 덧씌운 고즈넉한 발라드와 일렉트로니카이다. 모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스타일과 장르이다. 1990년대의 대표적인 아레나 록(arena rock) 밴드이며 사이키델릭과 사바스의 적자이자 아트 록의 서자인 록 밴드의 이러한 방향 선회는 결과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팬들은 당황했고 평자들은 침묵으로 평가를 대신했다. 음반 발매 당시 일렉트로니카는 ‘대세’였으므로, ‘시류에 영합한 엉성한 외도’라는 당시의 평가에 만족할 수 없다면 음반의 사운드가 어떠한지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반은 중세풍 갑옷을 입은 스페이스 카우보이같은 사운드를 선보인다. 이는 첨단의 음향을 의도적으로 옛스럽게 치장했다는 말도, 혹은 중층적으로 배치한 사운드를 여백이 많은 것처럼 들리게 조율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몇몇 곡들(“Ava Adore”, “Appels + Oranjes”, “Pug”)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디페시 모드(Depeche Mode)같은 신경질적인 전자음을 들려주는데, 금간 소리굽쇠 같은 비트와 날카로운 기타 톤으로 인더스트리얼을 재해석한 “Pug”는 신스 팝과 유로 댄스팝의 비트를 교묘하게 배치한 “Appels + Oranjes” 와 더불어 음반에서 가장 특징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사운드의 집중력은 묘하게 흐트러져 있으며, 청자의 공명을 유도하는 대신 첨단과 복고 사이의 어딘가에서 헐벗은 채 떠돌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Once Upon A Time”처럼 어쿠스틱 악기음이 주가 된 곡들도 뭔가가 비어 보인다. 방금 이삿짐을 갖다놓은 방처럼, 비었다기엔 짐이 많고 찼다기엔 아직 부족한 소리들이다. 믹서기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현악 세션이 곡을 채울 듯 말 듯 움직이는 “Tear”는 미리 녹음한 음을 싸구려 녹음기로 재생하는 것에 맞춰 스튜디오에서 혼자 부른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코건은 이 음반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라 말했지만 여러 모로 볼 때 새롭다기보다는 독특한 소리들이라 부르는 게 옳을 것 같다. 게다가 기껏 개척한 일렉트로니카의 영토에 깃발만 꽂고 말았다는 사실(이 음반의 싱글 리믹스는 두 종밖에 없다) 또한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하기에 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dore]가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당시 이러저러한 개인사들(이혼, 모친과의 사별, 다시 한 번 붕괴 직전에 이른 밴드의 상황)의 영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채 나온 음반의 인공적인 우수(憂愁) 때문일 것이고, 나름대로 이 음반을 빌리 코건 버전의 [Blood On The Tracks]라고 불러 볼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배경 탓일 것이다. 낮은 파장의 노이즈를 배경으로 깊고 어두운 물 속에서 올라온 하얀 손이 연주하는 듯한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인 “To Sheila”를 비롯하여 제목 그대로 하강하는 듯한 기타 리프를 선보이는 “Daphne Descends”의 로킹(rocking)한 사운드에도, 업비트의 “Perfect”에도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그것은 창가로 스며든 햇빛 속에서 춤추고 있는 먼지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 느끼는, 짧고 강렬하지만 쉬이 잊혀지는, 상념과 통찰력의 어떤 경계에 서 있는 순간의 감정과 비슷하다. 사소하고 표면적임에도 듣는 이에게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제공하는 순간 말이다. 그러나 음반이 자기가 표현하고 있는 감정에 지나치게 취한 듯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바꿔 말해, 너무 길다. 철컹거리는 뭉툭한 전자음과 평온한 자장가가 순간적으로 교차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Behold! The Night Mare”는 특별한 절정이 없는 이 음반의 절정일텐데, 음반은 거기서 지루하리 만치 천천히 사라지면서 긴 작별인사를 한다. 좋은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탓이다. 그러나 그 점이 CD로 뻗었던 손을 거두게 할 정도는 아니다. 20030202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To Sheila 2. Ava Adore 3. Perfect 4. Daphne Descends 5. Once Upon A Time 6. Tear 7. Crestfallen 8. Appels + Oranjes 9. Pug 10. The Tale Of Dusty And Pistol Pete 11. Annie-Dog 12. Shame 13. Behold! The Night Mare 14. For Martha 15. Blank Page 16. 17 관련 글 Smashing Pumpkins [Gish]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Siamese Dream]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Pisces Iscariot]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The Aeroplane Flies High] 리뷰 – vol.5/no.4 [20030216] James Iha [Let It Come Down]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Adore]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2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1 – vol.2/no.6 [20000316] Smashing Pumpkins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Greatest Hit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Earphoria] 리뷰 – vol.5/no.4 [20030216] Zwan [Mary, Star Of The Sea] 리뷰 – vol.5/no.4 [20030216] 관련 영상 “Ava Adore” 관련 사이트 스매싱 펌킨스의 전세계 팬사이트를 연결하는 허브 사이트 http://www.starla.org 스매싱 펌킨스 메시지 보드 http://smashingpumpk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