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shing Pumpkins – Pisces Iscariot – Virgin, 1994 변신을 준비하는 자기확신의 잉여물 흔하면서도 근거가 불명확한 것이 별자리에 관한 얘기이지만 어느 지면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물고기자리(Pisces)인 사람들의 특징은 신성한 면과 불순한 면이 공존하며, 바다와 같은 포용력과,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날의 평야처럼 직감적이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한 영육(靈肉)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녔다”. 또 경제적 이해타산과 거리가 멀고 예술적 기질이 풍부하다는 말도 덧붙어 있다. 쇼팽(Frederic Chopin)과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과 리즈 테일러(Liz Taylor),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빌리 코건(Billy Corgan)이 물고기좌라니 제법 증거는 있는 듯하다. 스매싱 펌킨스의 1994년도 앨범 [물고기자리 배반자(Pisces Iscariot)]는 그런 앨범이다. 사랑과 보살핌을 호소하는 제스처 뒤로 사악한 조소를 흘리고 있는, 풍랑처럼 격정적이면서도 봄의 평원처럼 고요한…… 음악적으로 보자면, 겹겹이 포개어진 파괴적인 소음의 레이어(layer)와 유약하고 감상적인 멜로디가 공존하는 상호배반적인 긴장은 이들의 앨범에 걸쳐 일관된 작법이라 할 수 있다. [Pisces Iscariot]은 B사이드 곡과 커버곡이 뒤섞인 편집 음반으로서 정규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챠트 3위까지 올랐으며 앨범 판매고에서도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등 의외로 각광 받은 앨범이다. 한편, 몇 가지 측면에서 너바나(Nirvana)의 [Incesticide](1992)와 유사한 외양을 지닌 앨범이다. 표면적으로는 밴드의 최고작이 발표된 이듬해(혹은 양대 앨범 사이)에 출시된 점이 그러하며, 내용적으로는 가장 왕성한 창작기에 쓰여져 정규 앨범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수작들을 모아놓은 영양가 측면이 닮았다. 그러나 [Incesticide]가 음악적 순수와 모태로의 회귀를 시도하는 다소 절박한 자기부정의 표출이었다면, [Pisces Iscariot]은 풍성한 음악적 자산에 대한 야심찬 자기확신의 잉여물로 보인다. 즉 [Siamese Dream]의 성공 이후 흥행성을 갖춘 얼터너티브 록 밴드라는 삐딱한 시선에 그저 태연하게 ‘우리의 음악은 이렇게 차고도 넘치지’라고 조소하는 듯하다. 수록곡을 들어보면, 다종다기한 장르와 스타일이 펌킨스의 방식으로 관통되어 있어 정규 앨범보다 자유분방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저 팬 서비스 차원의 무난한 편집 음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14곡의 수록곡들은 어쿠스틱 기타와 차분한 보컬이 호흡하는 연성(軟性)의 발라드에서 가학적인 퍼즈톤(fuzz tone)이 지배하는 강성(强性)의 헤비 록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여기에 싸이키델릭한 무드와 재즈식 터치로 탄성(彈性)을 부여한다. “Soothe”와 같은 어쿠스틱 기타 소품에서 들려오는 빌리의 여린 목소리는 ‘우아한 폭력성’의 이면에 도사린 ‘사랑을 애원하는’ 유약한 내면을 드러낸다. 유일하게 제임스 이하(James Iha)가 곡을 쓴(전해듣기로는 2000년 내한공연에서 직접 솔로로 연주하여 열광적인 환호를 끌어냈다고 하는) 발라드 넘버 “Blew Away” 역시 부드러운 결을 간직한 아름다운 팝송이다. 그러나 나른한 몽상은 이내 깨어지고 마는데, 연속되는 트랙들은 ‘언제 내가 상처를 고백하고 사랑을 호소했는가’라는 듯 육두문자를 섞어 거칠게 절규한다. “Pissant”와 “Hello Kitty Kat”은 드라이빙감 넘치는 헤비 리프가 난사되는 곡으로서 “Zero”, “Bodies” 등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앨범에서 선보일 파괴적인 트랙들의 전조라 할만 하다. 마지막으로, 앨범의 백미인 “Starla”는 약간의 환각성을 함유한 곡인데 점증적인 상승구조를 보이다가 특유의 퍼즈톤이 작렬되면서 중층의 노이즈를 덧입히는 방식을 따른다. 숨을 고르는 부분에서 들려오는 지미 챔벌린(Jimmy Chamberlin)의 퍼커션 연주와 왜미 바로 짓뭉개 듯 극단적인 왜곡을 가하는 제임스의 후주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한편,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두 곡의 커버곡을 감상할 때이다. 먼저 “Landslide”는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1975년 동명 타이틀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크리스틴 맥비(Christine McVie)의 가녀린 바이브레이션이 빌리의 다소 냉소적인 목소리로 바뀌었을 뿐 원곡의 서정을 재현하는 사랑스런 포크송을 들려준다. 전설의 밴드 애니멀즈(The Animals)의 싸이키델릭 록 넘버인 “Girl Named Sandoz”는 원곡의 쵸킹 비브라토 주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면서 이들의 음악적 뿌리가 1960년대 초기 록에 닿아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의미 있는 곡이다. 스매싱 펌킨스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스타일리스트들이자 계속해서 자기변신의 행보를 보인 밴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적어도 이 앨범 이후로 미뤄둘 만한 것이다.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에서부터 차츰 윤곽을 드러내는 물고기 성좌의 배반에 앞서 밴드의 음악적 뿌리와 사운드의 정수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Pisces Iscariot]은 가치 있는 작품이다. 20030209 | 장육 evol62@hanmail.net 7/10 수록곡 1. Soothe 2. Frail and Bedazzled 3. Plume 4. Whir 5. Blew Away 6. Pissant 7. Hello Kitty Kat 8. Obscured 9. Landslide 10. Starla 11. Blue 12. Girl Named Sandoz 13. La Dolly Vita 14. Spaced 관련 글 Smashing Pumpkins [Gish]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Siamese Dream]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Pisces Iscariot]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The Aeroplane Flies High] 리뷰 – vol.5/no.4 [20030216] James Iha [Let It Come Down]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Adore]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2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1 – vol.2/no.6 [20000316] Smashing Pumpkins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Greatest Hit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Earphoria] 리뷰 – vol.5/no.4 [20030216] Zwan [Mary, Star Of The Sea] 리뷰 – vol.5/no.4 [20030216] 관련 영상 “Blew Away” Live 관련 사이트 스매싱 펌킨스의 전세계 팬사이트를 연결하는 허브 사이트 http://www.starla.org 스매싱 펌킨스 메시지 보드 http://smashingpumpk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