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shing Pumpkins – Gish – Caroline, 1991 얼터너티브가 도달한 또 다른 영토 1.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반에 대해 ‘다시’ 얘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무언가 새로운 어떤 것을 제시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과연 이러한 진술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작업이 뻔한 결과로 치닫지 않으려면 결국 ‘현재적인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이 과연 쉽게 획득될 수 있는 문제일까.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데뷔 음반 [Gish]를 앞에 두고 마딱뜨리는 막연함 혹은 무기력. 2. 1988년 10월 시카고의 클럽 메트로(Metro, 2000년 11월에 밴드는 이곳에서 ‘마지막’ 공연을 열기도 했다)에서 50여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한 첫 공연을 기점으로 스매싱 펌킨스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 혁신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던 시애틀의 서브 팝(Sub Pop) 레이블과 교류를 하며 너바나(Nirvana)와 같은 소속 밴드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스매싱 펌킨스는 당시 시애틀을 근거지로 하던 얼터너티브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하드록/사이키델릭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였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스매싱 펌킨스는 이른바 ‘시애틀 밴드’로 함께 취급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데뷔 음반 [Gish]가 서브 팝이 아닌 버진(Virgin) 레코드의 마이너 레이블인 캐롤라인(Caroline) 레코드에서 발매된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스매싱 펌킨스의 (말하자면) 불운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Gish]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부치 빅(Butch Vig)이 프로듀싱한 너바나의 [Nevermind]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결과적으로 1990년대의 문을 열어제쳤기 때문이다. 덕분에 [Gish]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음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주목은 받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Nevermind]의 엄청난 성공에 의한 ‘상대적인 박탈감’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결과로 인해 [Gish]를 정의하는 건조하고 두터운 질감의 기타 리프와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지글거리는 기타 톤 아래 묻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3. [Gish]는 너바나로 상징되던 얼터너티브 씬의 그런지(grunge)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하고 있는 음반이다. 이 음반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분명히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사운드, 광의의 영국 하드록/헤비메탈 사운드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사이키델릭 록이었다. 베이스가 유난히 강조되어 강한 드라이브감을 선보이는 “I Am One”과 “Bury Me”, 겹겹이 층을 쌓으며 녹음된 기타 리프(후에 이것은 스매싱 펌킨스 사운드의 특징으로 일컬어진다)가 무겁고 두터운 질감을 형성하는 “Siva”와 “Tristessa”가 전자에 속한다면, 인도풍의 전기기타 연주에 맞춰 빌리 코건(Billy Corgan)의 나른한 듯 섬세한 목소리가 느리게 진행되다가 퍼즈 톤의 강렬한 기타 연주로 마무리되어 몽환적인 사운드의 풍경을 펼치는 “Rhinoceros”와 전기 기타 연주가 느리게 흐르는 강물을 연상시키는 “Crush”, “Suffer” 등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음반을 마무리하는 트랙은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기의 사용으로 도드라진 멜로디에 여성 베이시스트 다아시(D’Arcy)의 건조한 음성이 차분하게 겹쳐지는 “Daydream”인데, 이 곡은 매우 짧은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들의 음반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팝적 감수성을 유추하게 해주는 곡이다. 2. 사실 [Gish]는 스매싱 펌킨스의 사운드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음반은 아니다. 이들이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본격적인 주목을 받으며 이후 얼터너티브 씬의 맹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근거는 199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음반 [Siamese Dream]에 있기 때문이다. 스매싱 펌킨스라는 밴드의 출발선을 의미하고 있을 뿐인 [Gish]는, 그러나 1990년대의 시대 정신(이른바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창조의 역설)이 지글거리는 기타 톤으로만 분출될 수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냉소와 독설과 자학으로써 ‘신경 꺼’라는 모토를 외치던 1990년대의 밴드들이 대부분 기타 줄을 반음 낮게 튜닝하고 앰프 볼륨을 극단적으로 올리고 있을 때, 스매싱 펌킨스는 [Gish]를 통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스타일, 이를테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블랙 사바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지미 핸드릭스의 사운드를 새롭게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음반에 대해 “그 당시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일을 매력적으로 수행한 음반”이라는 혹자의 평가는 정당하다. 1. 따라서 스매싱 펌킨스의 데뷔 음반 [Gish]에 부여할 수 있는 지위란, 그런지 사운드가 아닌 또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고자했던 1990년대 ‘광의의’ 얼터너티브 운동의 어떤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Gish]는, 말하자면 불운하게도 늦어버린 연애 편지처럼 보인다. 물론 이런 결론이 전적으로 이 음반을 지금 ‘다시’ 얘기하는 이유나 옛 음반의 ‘현재적 의미’로 치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1-2-3-2-1처럼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라 해도 종국에 도달하는 지점은 처음 출발한 바로 그 곳과는 조금 다른 지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기대다. 어떤 기대? 음반과 청자, 필자와 독자, 세대와 세대 사이의 소통이 그런 과정 중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20020214 | 차우진 lazicat@empal.com 9/10 수록곡 1. I Am One 2. Siva 3. Rhinoceros 4. Bury Me 5. Crush 6. Suffer 7. Snail 8. Tristessa 9. Window Paine 10. Daydream 관련 글 Smashing Pumpkins [Gish]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Siamese Dream]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Pisces Iscariot]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The Aeroplane Flies High] 리뷰 – vol.5/no.4 [20030216] James Iha [Let It Come Down]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Adore]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2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Machina/ The Machines Of God] 리뷰 1 – vol.2/no.6 [20000316] Smashing Pumpkins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Greatest Hits] 리뷰 – vol.5/no.4 [20030216] Smashing Pumpkins [Earphoria] 리뷰 – vol.5/no.4 [20030216] Zwan [Mary, Star Of The Sea] 리뷰 – vol.5/no.4 [20030216] 관련 영상 “Siva” 관련 사이트 스매싱 펌킨스의 전세계 팬사이트를 연결하는 허브 사이트 http://www.starla.org 스매싱 펌킨스 메시지 보드 http://smashingpumpk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