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4064001-0504review_yunsuil윤수일과 솜사탕 – 윤수일과 솜사탕 – 힛트(LA 004), 1977

 

 

1980년대 스타 가수의 데뷔작, 혹은 1할의 성공

1976년 장충체육관에서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가 열렸다. 1976년이라면, 불과 5-6년 전 경연대회가 그룹 사운드 붐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때와 달리, 연이은 장발단속(스트레이트?)과 1975년 대마초 파동(피니쉬 블로우?)으로 그룹 사운드 씬이 급격히 와해되던 시기이다. 따라서 이 경연대회가 우후죽순 아류행사들이 꼬리를 잇던 시절과는 퍽 다른 분위기에서, 이를테면 초조한 기대 속에 준비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행히도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경연대회로는)’오랜만에’ 그리고 (그런 것치고는, 어쩌면 그 때문에)’성황리에’ 열린 경연대회라는 기억을 남긴 걸 보면.

이 경연대회에 가장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 인물이 윤수일이다. 윤수일은 이후 10여 년간 “아파트(A.P.T.)”,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정상급 인기 가수로 군림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바로 경연대회 입상과 그 부상에 다름 아닐 데뷔 음반 녹음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만은 않겠어요](1977)는 윤수일의 가요계 공식 데뷔작이다. 물론 이 음반은 6인조 그룹 ‘윤수일과 솜사탕’의 음반이지만, 음반 커버의 타이포그래피가 설파하듯 윤수일의 솔로 음반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신인의 음반은 어떤 반응을 얻었을까. 타이틀 곡 “사랑만은 않겠어요”는 1978년 MBC 최고 인기가요상을 수상할 만큼 빅 히트를 기록하였고, 윤수일은 1978년 KBS와 TBC의 신인 남자가수상, MBC와 TBC의 10대/7대 가수상을 안았다. 이와 같은 성공의 배후에는 앞서 경연대회를 주최하고 이 음반을 제작한 안타 프로덕션이 있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는 그룹 사운드 씬에서 ‘한 음악’하던 인물들(안치행, 김기표, 이태현)이 만든 이 신생 음반기획사의 성공이 단지 ‘단타'(“오동잎”(최헌)의 대박)로 끝나지 않고 ‘연속안타’로 이어질 것임을 증명하는 곡이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성공, 나아가 1970년대 후반 이후 안타 프로덕션의 성공은 양적인 의미 이상이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더불어, 트로트 선율과 록 스타일의 사운드를 결합한 이른바 ‘트로트 고고'(트로트에 고고리듬을 접목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란 트렌드를 가요계에 몰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들어보자. 짧고 구성진 동일한 동기를 섹서폰과 전기 기타가 반복하는 전주가 귀를 잡아끈 후, 전형적인 트로트 멜로디의 노래가 ‘버스-코러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코러스에서 한 차례 절정을 맞은 이후, 버스 부분의 노래 멜로디가 색서폰의 구성진 간주 형태로 반복되고 나면, 코러스 부분이 윤수일의 노래로 반복되며 다시 절정이 반복된다. 다시 전주 부분이 후주로 반복되면서 페이드아웃 된다. ‘전주→버스→코러스→간주(버스’)→코러스→후주(=전주)’로 이어지는 익숙한 구성이다.

이런 익숙한 구성과 관습적인 트로트 선율이 빅 히트로 이어진 것은 어떤 요소 때문일까.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단번에 귀와 입에 달라붙는 선율의 탁월함을 제외한다면, 사운드에 있다. ‘트로트 고고’라고 할 때 ‘고고’에 해당될 리듬과 사운드 말이다. 색서폰 연주는 기존의 ‘악단 반주’의 느낌 이상이 아니고 윤수일의 창법 역시 트로트 문법에 충실하지만, 여기에 서정적인 선율과는 달리 리드미컬한 템포와 그루브(특히 1, 3박을 강조하는 베이스 기타), 그리고 이를 적절히 수식하는 전기 기타 연주를 결합한 것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것이었다. 자칫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트로트 고고가 대중적 공감을 얻으며 히트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룹의 사운드와 트로트 선율’이란 신구(新舊) 감성의 결합(혹은 온고이지신)에 있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작사·작곡가가 안치행이란 사실은 이 곡의 팔할을 설명해준다(영 사운드의 리더 출신인 그는 그룹 생활을 그만둔 후 안타 프로덕션의 대표이자 작곡가 생활에 전념하였다. 트로트와 젊은 감성을 결합하는데 비상한 재능을 발휘한 그는 “오동잎”, “앵두”, “연안부두”, “아 바람이여”, “울면서 후회하네”, “연상의 여인” 등의 히트곡들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사랑만은 않겠어요” 같은 트로트 고고 스타일의 곡으로만 채워져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워낙 인상이 강해서 그렇지 “사랑만은 않겠어요”는 음악 스타일, 하다못해 작사·작곡자로 보아도 오히려 예외적인 곡이다. 나머지 곡들은 모두 장경수 작사, 함정필 작곡이다. 함정필? 펄벅재단 출신의 혼혈아들로 구성되어 신중현의 지도하에 1970년대 초중반 활약한 그룹 사운드 골든 그레입스를 기억한다면, 음반 수록곡의 대부분을 작곡한 인물이 함중아와 함께 골든 그레입스를 이끌던 함정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수일이 골든 그레입스의 기타리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는 사실까지 안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그렇다면 윤수일과 함께 이 음반의 주인공을 이루고 있는 ‘솜사탕’이 골든 그레입스의 후신이란 추론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당시 함중아는 양키스라는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윤수일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76년도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우리가 1등 했는데 그 덕분에 안타음반에 가수로 등록이 됐다. 그 이후에는 내 의지와는 별개로, 기획실에서 장사가 되는 쪽으로만 분위기를 몰고 갔다. “사랑만은 않겠어요” 같은 트로트 풍의 노래들도 그때 나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트로트 풍이 아닌 곡들, 앞서 ‘우리’라고 말한 그룹(이 음반에 윤수일과 솜사탕으로 나오는)의 곡들은 어떤 음악들일까. 당시 기준으로 말하자면 ‘젊은 그룹 사운드 음악’이다. 템포로 나누자면 빠른 곡과 느린 곡이 반반씩,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엉뚱하고 짓궂은 연인을 노래한 “청개구리 마음”(같은 색서폰 연주라도 “사랑만은 않겠어요”와는 감성이 매우 다르다)이나 두근거리는 사랑의 감정을 일명 시카고 사운드 풍으로 풀어낸 “설레이는 마음”은 발랄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기다리는 마음”과 “해 저무는 언덕” 같은 곡은 이들이 젊은 감각을 가진 동시에 선배 그룹 사운드의 음악적 자양분을 잘 흡수했음을 보여준다. “꿈이었나봐” 같은 발라드는 당시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곡이라고 해도 감쪽같이 속을 정도다.

그러니까 이 음반은 9할의 ‘그룹 사운드’와 1할의 ‘트로트 고고’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1할은 대박이 터졌고, 9할은 묻혀졌다. 윤수일은 그 1할에 따라 이후 몇 장의 솔로 앨범을 더 내고 “갈대”, “추억”, “나나” 등을 히트시켰다.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성공만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은 역전되었다. 9할의 전통을 되살려 윤수일밴드란 이름의 그룹을 조직하여 더 강렬한 사운드로 승부한 후부터이다. 백밴드를 대동하고 나와 검은 선글라스에 가죽옷 차림으로 건들거리며 “아파트”,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등을 부르던 전성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윤수일에 대한 이미지로는 후자가 지배적일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윤수일의 공식 가수 경력을 맹아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20030510 |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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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청개구리 마음
2. 꿈이였나봐
3. 사랑만은 않겠어요
4. 사랑으로 노래하리라
5. 언제 오려나

Side B
1. 설레이는 마음
2. 그대 떠나던 길
3. 기다리는 마음
4. 해저무는 언덕
5. 우리는 대한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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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컬티즌] 윤수일, 당당한 뮤지션의 쓸쓸한 컴백
http://www.cultizen.co.kr/front/myimp.htm?My_code=6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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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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